여느 때처럼 비가 오는 날, 타야할 지하철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생각할 겨를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무빙 워크에서 내달린 지 몇 걸음이 채 되지 않아 우당탕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미끄러우니 뛰지 마시오'라는 경고판을 뻔히 보고서도 그깟 10분 더 기다리는 게 무서워 내달린 내 탓이었다. 통증은 점점 심해져서 그 날 밤은 목과 허리까지 교통사고라도 난 듯 아파서 등에 핫팩을 가득 붙이고 잠에 들었다.
며칠은 아파서 끙끙댔지만 쉽게 병원을 가지는 못했다. 한국이었다면 당장에 정형외과든 한의원이든 갔겠지만, 원하는 치료를 받지 못할 걸 알고 있었기에 그냥 포기했다. 주말 약속도 취소하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찜질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더니 사흘 정도 지나 통증은 줄었다. 이 정도로 가라앉은 걸 보면 골절이나 신경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거라 생각하며 내 몸을 정성스레 돌봤다.
처음부터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낸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온갖 잔병과 부상을 달고 살던 나는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독일에 오고나서 첫 겨울, 옆 도시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려던 중 기차역에서 쓰러진 적이 있다. 늘 겪던 생리통이었고, 그 날은 유독 심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고, 공중 화장실에서 몇 번의 구토를 하다가, 화장실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겨우 힘을 내서 화장실 밖에 있는 남편에게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하고 숨을 돌리고 역 안 벤치에서 쉬는데 전화를 마친 남편이 ‘구급차는 올 수가 없대. 택시타고 응급실로 가자'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몇 달에 한 번은 생리통이 심해지면 구토, 어지럼증, 복통이 한 번에 몰려오면서 길가에서도 쓰러기도 했다.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길바닥에 드러눕고는 못 일어나서 한참을 반 주저앉은 상태로 있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괜찮아지던 생리통이었지만, 가끔 멈추지 않는 구토까지 동반되면 구급차를 부르기도 했다. 119를 부르면 5분도 안 되어 도착하는 구급차를 타고, 가는 내내 구토를 하며, 응급실에서는 수액과 진통제를 맞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찢어질 듯 배는 아프고 구토가 지속되다보면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빠르게 조치를 해주는 의료진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안심이 된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시리게 추운 12월에, 중앙역에서 걷지도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환자의 신고에도 구급차를 보낼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남편의 부축을 받아 겨우 택시를 잡아 탔지만, ‘차 좀 세워주세요!’를 외치며 결국 내려서 몇 번의 구토를 하고서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두 발로 걸어들어온 나를 의아하게 보며 접수처 직원도, 의사도 도대체 왜 응급실에 왔냐고 재차 물었다. 증상을 설명하고 너무 아파서 왔다고 해도 여전히 그들의 의아한 표정에 오히려 움츠러 들었다. 다행히 대기 환자가 없었던 덕분에 바로 검사를 하고, 진통제를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 독일에서 응급실은 의식이 없고, 생명이 위급한 상태가 아니면 우선순위에서 밀려 이용이 어렵다고 한다. 운이 좋게 대기가 거의 없는 병원에 간 덕분에 나는 의사를 만날 수 있었지만, 응급실은 도착한 순서가 아니라 위중한 순서로 이용하는 곳이었고, 구급차도 의식이 있는 환자에게는 순서가 돌아오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어지간해서는 다음날까지 기다려서 가까운 병원을 가야하고, 죽진 않을 병인 걸 안다면, 아파도 그냥 앓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동네 병원을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독일은 모든 병원이 예약제로 운영이 되고, 예약을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보통은 일주일에서 한 달 뒤로 예약이 가능하며, 지역에 따라서는 2-3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운동하다 허리를 삐끗한 남편도 물리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을 예약한 적이 있었는데, 첫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날이 2주 후였다. 그나마도 온찜질과 가벼운 수기 마사지로 끝나고, 그 다음 치료는 3주를 더 기다려야 했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겹치는 바람에 병원이 장기 휴진이었기 때문이다. 의사의 처방대로라면 10번의 물리치료를 13주에 걸쳐서 받아야 했고, 3주차쯤 되자 이미 다 나아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어서 사실상 쓸모없는 치료가 되어버렸다.
어지간한 통증은 집에서 쉬고 관리하면 3-4주면 사라지기 때문에 느리고 느린 병원의 일정을 맞추는 게 무의미했다. 게다가 예약을 위한 절차, 보험처리에 드는 행정 절차의 수고로움을 고려하면 정말 큰 사고가 아닌 경우에야 굳이 병원을 찾진 않게 된다. 허리가 욱씬거려올 때면 한의원 가서 찜질이라도 하고 싶다고 투덜대면서도, 그럭저럭 회복이 되고 아직까지 큰 일은 없던 걸 보면 유난스런 나조차도 어떻게든 적응을 하는 것 같아 새삼 놀랍다.
한편 이런 분위기에서 ‘무제한 병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인가 싶다. 매일 저녁 수업을 듣던 어학원에서 선생님이 열흘 째 안 나온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흘, 그러다 하루 더, 언제가 될지 모르게 선생님의 부재는 길어졌다. 겨우 8주 과정인데 2주가 흘렀고, 매일 다른 선생님이 보충 수업을 해주시긴 했지만 교대로 들어오시다보니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학원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선생님이 아프셔서 어쩔 수 없으며, 빠진 수업은 다시 보충해주겠다는 답변 뿐이었다. 환불도 어렵고, 원할 경우 다른 반으로 갈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서 이웃에게 털어놓자, ‘우리 아이는 학교 선생님들이 자주 안 나와서 매일 휴강인지 아닌지 핸드폰으로 확인하고 가요'라는 말도 들었다.
몸이 아프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당장 병원의 도움을 받거나, 스스로 휴식하거나. 꽤 많은 경우 충분히 쉬면 낫는다. 한국에서 직장에 다닐 때는 회복할 때까지 쉴 수 없어서 빠른 치료를 받고 빠르게 복귀하는 쪽을 택했다. 모든 병원은 신속했고, 치료 효과도 빨랐고, 내가 아프다고 남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어서였다. 반면 독일은 법적으로 병가 일수에 제한이 없어서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쉴 수 있다. 병원을 이용하기가 어려워서 병가가 충분한 건지, 병가가 충분하니 병원에서 치료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기도 하다.
독일의 방식은 답답하고, 느리고, 누군가 아프면 업무 공백이 얼마나 길어질 지 알 수 없다. 반면 한국의 방식은 환자의 고통을 빠르게 줄여주지만, 나의 아픔으로 인해 업무 공백이 길어지는 것은 용납받기 어려운 분위기다. 잔병 치레가 많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속하게 치료해 줄 병원이 백번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프면 나을 때까지 충분히 쉬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몸이 아플 때면 당장 병원에 갈 수 있고, 매일 한의원에 갈 수 있고, 빠르게 통증을 줄일 수 있는 한국이 늘 그립다.
*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글쓴이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프리랜서로 일하며, 독일어를 배우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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