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되고 싶은 너에게

줄넘기를 잘하는 화가가 되고 싶어요 1- 구경희

예술 교육기

2024.03.05 | 조회 1.1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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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라고 여긴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40년 이상을 지속해야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면 참으로 낭패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부모가 되어 가장 크게 고민했던 문제는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돕는 것이었다. 비밀을 고백하자면 나도 여느 부모처럼 아이가 사는데 지장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직업을 가지기를 바랐다. 말하자면 의사나 약사가 되기를 원했었다. 언제나 뜻대로 되는 법이 없는 것이 인생이다. 아이는 우여곡절을 거치며 예술가의 길을 가게 되었고 이 글은 그 흔적을 기록한 글이다. 예술 교육을 시키고 있거나 앞으로 계획 중인 많은 부모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중국어를 배우는 자화상
중국어를 배우는 자화상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는 처음부터 화가가 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첫돌이 막 지났을 무렵, 손가락에 힘이 없을 때조차도 색연필 또는 크레파스를 손에 말아 쥐고 삐뚤빼뚤한 선을 그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낙서였으나, 누구나 그렇듯 우리 애가 천재인가 하는 믿음이 생길 정도로 그림의 형태나 색채는 다채로웠다. 필기구가 보이는 대로 선을 긋고 색칠을 하길래, 아이가 네 살 무렵엔 온 방을 흰 도화지로 도배를 했다. 집안이 커다란 스케치북이 되었다.

당시 남편은 중단했던 학업을 다시 시작했다. 우리 집 경제 사정은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릴 때 처음으로 체득한 색채감각이나, 음감은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동의했고,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파버 카스텔 색연필이나 신한 전문가 물감, 두툼한 스케치북 등을 열심히 사다 날랐다. 손바닥과 발바닥에 물감을 바르고 종이에 찍는 놀이도 자주 했기에 물감 양도 상당히 들었다. 최초의 추상 작품을 그린 작가로 유명한 칸딘스키의 말에 따르면 색채는 심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화구가 아무리 비싸도 심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이를 예술가로 키울 계획은 전혀 없었다. 집안이 난장판이 되도록 그림놀이를 하고 품질 높은 그림 재료들을 사들인 것은 그저 색감을 익히고 예술적 소양을 갖추기를 바랐던 것뿐이었다. 이런 나의 속마음과는 다르게 아이는 날로 그림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아이의 고모는 아이 그림을 보더니 얘가 이 그림을 그렸다고? 아휴, 아기가 어떻게 옆모습을 이렇게 그리니? 색은 또 어떻고? 말도 안 돼.” 이 말을 듣고 기분 나빴다기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서는 것 아닐까 하는 큰 불안감에 휩싸였던 기억이 난다.

고모가 믿지 못했던 그림- 네 살 때 그림 
고모가 믿지 못했던 그림- 네 살 때 그림 

아이는 유치원을 다니지 못했다. 내가 과외나 학원 일을 하러 다니느라 아이는 저녁까지 머무를 수 있는 어린이집을 삼 년간 다녔었다. 영어 유치원은 고사하고 일반 유치원도 다니지 못하고 시끄럽고 정신없는 어린이집에서 저녁까지 남아있던 아이에게 무척 미안했다. 대신 함께 있을 때는 몸과 마음을 다해 집중해서 놀아 주곤 했었는데 여전히 미술놀이가 우리의 최고 놀이였다. 찰흙 놀이, 동화책 내용 그리기, 기름과 물로 마블링 뜨기, 콜라주로 꾸미기 등 잡지나 책에서 읽은 미술 활동을 집에서 끊임없이 했었다. 아이의 그림 솜씨나 집중력은 날이 갈수록 대단해져서 보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하곤 했다. 가난한 부모로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슬쩍 겁이 나곤 했다.

휴일마다 미술 전시도 보러 다녔다. 어린이 인형극 같은 공연보다 미술 전시를 훨씬 자주 가곤 했었다. 나는 미대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그림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라 무슨 전시가 좋은 지도 몰라서 아이를 걸리거나 안고서 무작정 인사동이나 삼청동 등을 돌아다니곤 했다. 아이가 여섯 살 때쯤 어느 일요일이었다. 인사동 길을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 당시 한겨레 그림판으로 이름을 날리던 박재동 화백이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분을 아는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숙였던 머리를 드는 순간 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알고 부끄러웠지만 그 분은 아이에게 몇 살이니?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아이는 또박또박 말했다. 줄넘기를 잘하는 화가가 되고 싶어요.“

결혼식을 보고 그린 그림- 여섯 살 때 그림
결혼식을 보고 그린 그림- 여섯 살 때 그림

시간은 흘러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예술 중학교 입시를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 할 때가 되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예술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그때부터 입시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도저히 아이를 예술가로 키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술학원 비용도 댈 자신이 없었고 혹시나 예술 중학교에 지원한다면 그 학비를 어떻게 지원할지 앞이 캄캄했다. 입학을 한다고 해도 부잣집 아이들만 간다는 학교를 어떻게 다닐까 걱정도 되었다. 아이는 다니던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다른 친구들이 예술중학교 입시를 시작했기 때문에 입시 준비를 하지 않는 아이의 입장이 애매해졌기 때문이었다. 집에서도 아이는 매일, 정말 매일 무엇인가를 그렸다. 그만둔 미술 학원 원장 선생님은 아이가 꼭 예술중학교를 가야 한다며 날마다 전화를 했다. 점점 진로 문제가 고민이 되었고 아이는 6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예술중학교 문제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때도 경제사정은 좋아지지 않았지만 나는 엄청난 사고를 쳤다. 얼마간의 현금이 들어 있던 통장을 털어서 한 달 반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예술 중학교를 갈지 말지를 정하기 전에 세상의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고 싶었다. 나의 계획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길을 어떻게 찾아 다닐지, 잠은 어디서 잘 것인지, 소매치기를 만나면 어떻게 할 지 등 걱정을 했다. 그때는 로밍 비용이 무척 비싸서 핸드폰을 가지고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지금 같은 스마트폰은 아예 없던 시절이다. 가장 기막혀 한 사람은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이었다. 돌아오면 5월인데 그때는 입시준비에 너무 늦다고 했다. 열세 살 아이에게 늦을 일이 뭐가 있을까? 나는 말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이탈리아 로마를 시작으로 영국 런던까지 거의 오십 일 동안 아이를 데리고 긴 유럽 여행을 했다.

우리는 봄이 완연한 오월에 서울로 돌아왔다. 통장은 텅텅 비었지만 서른일곱의 나와 열세 살의 아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용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고흐 등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보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온 아이는 예술중학교 입시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후 시월에 있을 입시를 위해 5개월 동안 미술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문제는 화실 비용이었다. 화실은 타임이라는 단위로 레슨비를 받는다. 타임4시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당시의 한 타임 레슨비는 4만 원이었다. 언뜻 얼마 안 하는 것 같지만 입시를 할 때는 토요일, 일요일은 세 타임씩 수업을 하는 등 워낙 타임 수가 많아서 200만 원은 기본이었다. 개인 레슨까지 하면 500만 원이 넘어가기도 했다. 이 레슨비는 2007, 서울 기준이다.

수업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나는 미술 학원으로 찾아가서 우리 경제 사정은 레슨비로 100만 원 정도만 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부끄럽지는 않았다. 100만 원이라도 내가 벌어서 지원해 줄 수 있다는 상황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아쉬운 소리를 하면 도와주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미술 학원 원장선생님은 양해를 해주었고 100만 원에 맞춰 새 시간표를 주었다. 미술 학원을 가지 않는 날은 아이는 나와 함께 영어와 수학을 공부하고 책을 읽었다.

당시에 아이는 개를 너무 키우고 싶어 해서 <세상의 모든 개>라는 책을 읽으며 하루에도 몇 장씩 개를 그렸었다. 그때 아이는 세상의 개들의 이름과 특징들도 줄줄 외우곤 했는데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려고 그랬는지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지원했던 예술중학교 입시 주제로 <> 나온 것이다. 한 번도 동물 주제가 나온 적이 없었는데 그때가 처음이었다. 실기시험을 마치고 울고 나오는 학생들도 있어서 마음을 졸이며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무리의 학생들이 교문을 나온 한참 후에야 아이는 엄마! 개를 그리라잖아!”라며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이렇게 다른 입시생에 비해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연습량인 적었던 아이는 입시 준비 5개월만에 예술중학교 학생이 되었다.

아이는 이렇게 줄넘기를 잘하는 화가의 삶에 한 발을 들였다. 나는 미술에 관해서는 피카소정도만 아는 문외한이었고 가난했고, 그리고 젊었다.

-2편에 계속 됩니다-

 

 

 

글쓴이- 구경희 

미술대학입시 전문 컨설턴트이다. 인생 이야기를 즐겨 읽다가 글쓰기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키우며 자신까지 해방된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한때 바위타기를 꿈꾸었다. 요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cesil1004

 

코너명소개:  예술가가 되고 싶은 너에게 

우리나라에서 예술 교육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미리 그 싹을 없애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폭력적으로 들렸었다. 수학을 잘하거나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특별하게 머리를 잘 매만지는 것처럼 예술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를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예술학교들에 진학시킨 방법과 그 학교들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또 집에서는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 솔직하게 써 보고 싶다. 모두가 궁금해 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예술교육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다. 이 글이 예술가를 꿈꾸는 많은 꿈나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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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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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콩

    0
    8 months 전

    입시를 결정하기전에 아이와 유럽으로 먼저 떠났다는 글귀에 제 가슴이 뜨거워지네요. 전공과 입시라는 대문앞에서 아이의 마음을 확인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깊고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어린아이도 후에 어떠한 것을 하고 싶어할 때 마음이 움직이는 일을 가까이했으면 좋겠네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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