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딸의 예원학교(이하 예중) 생활이 시작되었다. 덕수궁 뒤에 있는 아름다운 정동 교회에서 입학식을 했다. 입학식은 특별했다. 학교 오케스트라의 우아한 연주와 고풍스러운 정동 교회의 품위 덕분에 그동안 입시 뒷바라지했던 수고로움을 몇 배로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감동쟁이인 나는 눈물 콧물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중에서는 미술, 음악,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실기 수업은 각 전공별로 실기실에서 레슨을 받는다. 한 학년이 100명 남짓이라 3학년이 되면 거의 한 번씩은 같은 반을 하기 때문에 졸업할 즈음에는 다들 친구가 된다.
지금도 딸은 예중 생활을 그리워한다. 음악과 친구들의 즉흥 연주를 듣고 무용과 친구들의 공연도 보곤 하던 시절이 참 좋았다고 추억 한다. 작은 학교 마당에 라일락 향이 가득하던 저녁 무렵, 누군가 피아노를 연주를 시작했고 교실에 있던 모든 친구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연주를 들었던 날을 여러 번 얘기하기도 했다. 그 날을 함께 했던 친구들 중에는 세계적인 클라리넷 연주가가 된 친구도 있고 피아니스트가 된 친구도 있다.
예원학교에는 ‘예무제’라는 행사가 있다. ‘예무제’는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과 학생들이 피아노나 바이올린 공연을 하고 다른 전공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관람하는 행사이다. 나는 2008년에 ‘예무제’를 갔다가 어느 통통하고 귀여운 학생의 뛰어난 피아노 연주에 깜짝 놀랐었다. 어린 나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섬세한 연주에 무척 감동을 받았는데 그 학생이 바로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 최초 한국인 우승자였던 조성진이었다.
1학년 미술 전공 레슨은 월요일과 수요일이었다. 1학년과 2학년은 일주일에 두 번씩 학과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한 후 3시간 정도의 방과 후 레슨을 받았다. 레슨은 크게 전공과 소묘로 이루어졌고, 전공은 다시 동양화, 서양화, 디자인, 도예 등으로 세부적으로 나누어졌다. 세 달에 한 번씩 세부전공을 번갈아 가며 레슨을 받고 소묘는 공통 수업이었다. 매 학기 끝 무렵마다 소묘, 전공, 인체 또는 매체 등의 실기 시험이 있었다.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어서인지 중학생이었지만 학생들은 학과 시험보다 실기 시험 때 훨씬 더 긴장을 했고 결과에도 민감했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예중 입시 준비 기간이 짧았고 이른바 유명 화실 출신이 아닌 딸에게 실기 성적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실기 시험 결과가 나온 날 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 (소근 거리며) 엄마, 나 소묘 일등 했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어.”
지금 생각해 보면 비법은 ‘그리는’ 습관 덕분이었던 것 같다. 딸은 아기 때부터 어디에서나, 언제나 '그리고' 있었는데 자발적인 ‘계속 그리기’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그린다는 학생들 틈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던 것 같다. 딸은 그 이후에도 인체 수업이나 전공 등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곤 했다. 한눈에도 세련되고 멋쟁이였던 친구 엄마들은 딸이 어느 화실을 다니는지, 어느 학과 학원을 다니는지 궁금해했다. 솔직하게 다 말해 주었지만 알고 보면 별 것이 없어서 실망들을 했다. 딸은 화실을 다니지 않았다. 학교 시간표에도 미술 수업이 있었고, 일주일에 두 번 별도로 보충 레슨이 있으니 굳이 화실을 다닌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수업과 레슨 시간에 집중하고 ‘그리기’ 자체를 즐겨 했다.
친구들이 화실을 가는 시간에 영어와 수학을 깊이 공부했다. 학교 내신 진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심화 수준을 공부했다. 당시에 나는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딸은 집에서 영어를 공부했고 수학 심화 공부를 위해 집 앞에 있던 작은 학원에 다녔다. 나는 집에서 가깝고, 소규모이며, 원장이 직접 가르치는 학원을 선호했다. 마지막으로 딸은 일주일에 한 번 국어 수능 기초를 공부했었다. 다들 왜 국어를 공부하냐고 했었지만 우리는 다 계획이 있었다. 이때 공부한 국어는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고 나중에 수능 준비를 할 때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예중 학생 뿐만 아니라 많은 중학생들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만을 목표로 공부를 한다. 이런 식의 단순한 학습을 한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그야말로 현타가 온다. 얕은 학습에 익숙해져서 어려운 내용을 깊이있게 공부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많이 보아 왔기에 딸에게는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원만 다니게 하고 공부를 할 때는 짧은 시간이라도 원리를 이해하는데 집중 하도록 했다. 동시에 고등부 공부도 함께 준비했는데 수학은 대략 6개월 분량을 선행했고 국어공부를 위해 여러 텍스트와 수능 지문 등을 읽게 했다. 내신만 하는 학원이나 화실을 다니지 않았기에 딸은 다른 친구들보다 시간이 많았고 덕분에 한국의 중학생 치고는 취미 생활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있었다.
딸의 취미생활은 취미 수준을 넘어갔다. 블라이스 인형이나 구체 관절인형 같은 인형과 피규어를 수집했다. 열 두 살 정도 때부터 이베이(eBay)를 통해 거래를 하며 하나씩 모아갔다. ‘예쁜 사물’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딸은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각종 인형에 대해 이론적으로 공부도 했다. 처음에는 대략 삼, 사만 원짜리 작은 중고인형을 구입해서 얼굴을 지우고 다시 새롭게 메이크 업을 해서 비싸게 되파는 방법으로 점점 수집 개수를 늘여갔다.
당시 스물다섯 평의 작은 아파트는 눈이 얼굴 반만큼이나 큰 인형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마음에 드는 인형을 찾기 위해 거의 하루 종일 이베이(eBay)를 끼고 살았는데 엄마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무턱대고 말리기에는 딸의 인형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컸다. 인형과 피규어 수집은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수많은 희귀 인형들은 지금도 이사 박스 안에 포장 된 채 우리 집 작은 방을 채우고 있으며 현재 아티스트인 딸의 작품 세계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예술 고등학교 입시 준비가 시작되었다. 학교에서는 월, 수, 금 방과 후 레슨을 시작했고 딸의 친구들은 주말에도 화실을 가는 등 빈틈없는 ‘입시생’ 생활에 돌입했다. 딸은 학교 방과 후 실기 레슨에만 집중했다. 경험과 실력 면에서 최고인 선생님들이 가르치기에 걱정 하지 않았다. 학과 학원은 집 앞에 있던 수학 심화 학원만 주 2회를 다녔다. 딸은 화실을 다니지 않고 여러 학원을 다니지도 않아서 다른 친구들에비해 제법 많은 시간 여유가 있었는데 여느 아이들처럼 딸아이도 핸드폰에 집착했다. 이베이(eBay)와 유튜브(youtube)에 시간을 많이 썼다. 부모로서 걱정이 되어 갈등도 있었지만 말릴 수 있는 아이도 아니었다. 가끔은 오히려 내가 설득되었는데 예술가로 성장하려면 여러 방면에 관심을 가지며 안목을 키우고 취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입시는 입시였다. 예중에서의 실기성적이 좋았지만 입시라는 것은 100% 장담할 수 없었다. 가끔은 상위권 학생이 불합격되는 사례도 있었기에 슬며시 걱정을 하는 때도 있었다. 예고 입시는 중학교 내신, 소묘, 수채화 평가로 이루어졌는데 딸아이는 다행히 합격을 했고 평창동에 있는 서울예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입시를 치르느라 가 본 서울예고는 집에서 멀고 멀었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것은 지하철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하철을 두 번 타고 버스를 한 번 더 타야 등교가 가능했는데 그렇게 매일 학교를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또 한 번 모험을 감행해야 했다.
-3편에 계속 됩니다-
글쓴이-구경희
미술대학입시 전문 컨설턴트이다. 인생 이야기를 즐겨 읽다가 글쓰기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키우며 자신까지 해방된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한때 바위타기를 꿈꾸었다. 요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cesil1004
코너명소개: 예술가가 되고 싶은 너에게
우리나라에서 예술 교육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미리 그 싹을 없애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폭력적으로 들렸었다. 수학을 잘하거나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특별하게 머리를 잘 매만지는 것처럼 예술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를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예술학교들에 진학시킨 방법과 그 학교들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또 집에서는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 솔직하게 써 보고 싶다. 모두가 궁금해 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예술교육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다. 이 글이 예술가를 꿈꾸는 많은 꿈나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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