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일상다반사

이별은 언제나 힘들고 고된 일이다_아일랜드 일상다반사_도윤

인천공항 1터미널의 3번 출국장 앞이다.

2024.08.23 | 조회 1.13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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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인천공항 1 터미널의 3번 출국장 앞이다.

출처: wishgram
출처: wishgram

지난 며칠간 아일랜드로 돌아갈 짐을 다시 싸면서 짐의 무게 23kg을 맞추는 일만큼 어려웠던 것은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면 풀어놓았던 내 마음을 다시 싸는 일이었다.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는 수도권에 사는 동생네에 머물면서 그야말로 동생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마지막 1주일을 꽉꽉 채워 보내며 떠날 준비를 잘하고 있었다.

그러다 출국하기 며칠 전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출국 전날 차를 가지고 동생네로 가서 다음 날 인천공항까지 짐을 실어다 주시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빠가 최근 들어 장시간 운전을 하시기에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공항에 데려다주시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실 때 야간 운전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빠께 그냥 공항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몇 번이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런 이유들로 아빠의 단단한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출국 전날 나는 가족들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하지만 감사와 사랑의 말을 전하려던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편지에는 결국 미안함과 죄송함만을 가득 담아 봉투에 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모두들 잠든 고요한 밤에 내가 훌쩍거리는 소리 때문에 가족들이 행여나 잠에서 깰까봐 베개에 고개를 묻고 숨죽이며 한참동안 어깨를 들썩였다. 


출국 당일 아침은 마치 가족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모두들 바삐 움직인다. 삶은 고구마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동생은 아침부터 에어 프라이어에 고구마를 굽고, 엄마는 식구들 아침을 챙기면서 마지막으로 짐을 챙기느라 방안에 있는 나의 이름을 부르며 밥을 먹으러 나오라고 하신다. “도윤아. 밥 먹어라.” 아일랜드에 살면서 때때로 울적한 마음이 들 때면 창가를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곤 하는데, 어느 순간 엄마가 밥 먹으라고 내 이름을 부르시던 그 목소리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땐 엄마가 도윤아. 힘내라.” 하시는 것 같아 마치 엄마 밥을 먹고 배가 가득 부르는 것처럼 내 허기진 마음이 순간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OGQ GRAFOLIO_봄타_최고의 셰프
OGQ GRAFOLIO_봄타_최고의 셰프

이제 채비가 다 되어서 집을 나섰다.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면서 그동안 못다한 말들을 나누는 때가 되니 비로소 이제 정말 한국을 떠나 아일랜드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깨달아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해 카운터에서 짐을 부친 뒤 시계를 들여다보며 출국까지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확인하는 순간부터 내 심장이 조금씩 더 빨리 뛰는 것처럼 느껴졌고, 불안함과 슬픔이 내 어깨를 감싸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출국장 앞에 섰다.

엄마는 늘 웃으며 나를 보내신다. 가서 잘 살라는 말씀과 함께. 조카의 예쁜 웃음과 편지로 내 손과 마음이 채워지면, 동생과 껴안으며 다시 한번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아빠는 계속해서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어찌된 일인지 나를 잘 쳐다보지도 못하셨다. 아빠에게 한발 다가가 아빠를 꼭 껴안으니 그제서야 또 오라는 말씀 한 마디를 겨우 꺼내셨다.

출국장 앞에서 다시 가족들과 헤어지는 일을 지난 10년 동안 수 없이 반복했지만, 이별하는 일은 여전히 너무나 힘들고 고되고 또 슬픈 일이다.


아일랜드 집으로 돌아와서 애써 쌌던 짐을 풀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 커다란 가방 3개 그리고 작은 가방 3개 가득, 한국의 마트에서 산 물건들 그리고 가족들이 준 선물로 가득하다. 나는 그 가방 옆에 앉아서 한참 동안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물건들이 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이고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물건들이 없었지만, 저것들을 담아 오는 대신 엄마 김치를 딱 한 포기만이라도 가지고 올 걸 하는 후회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산 배추에 스페인산 마늘, 중국산 생강에 칠레산고추에 아일랜드산 쪽파를 준비해 두고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으신 고춧가루에 아시아 상점에서 구입한 한국산 젓갈을 넣어 이래저래 김치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10년 가까이하고 있지만, 그냥 흉내만 낸 어설픈 맛의 김치일 뿐이다. 그래도 한국에 다녀와서 라면에 김치 맛을 알아버린 아이에게 엄마가 김치를 만들었는데, 좀 먹어볼래?”하고 물으면 눈을 반짝이며 !” 하고 대답하고, 맛있다며 연신 칭찬을 해 준다. 아이는 분명히 한국에서 먹었던 맛있는 김치와 비교가 될 텐데도 엄마 마음을 생각하며 고맙게도 정말이지 맛있게 라면과 함께 김치를 먹었다.

한국을 방문할 때는 늘 설렘으로 시작했다가 한국을 떠나올 때쯤 이면 그 마음이 슬픔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다 14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또다시 그 마음은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리움은 다시 한국을 방문할 때까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내 안에 머무르면서 아일랜드에서의 일상 안에서 늘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게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은 즐겁고 또 재미있지만 늘 조금씩 서글프고 또 늘 조금은 어딘가 허전한 편이다.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아일랜드 사람 아빠와 한국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한 명과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서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입니다.

도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만난 아일랜드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올 해로 10년째 아일랜드에서 타향살이를 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 : http://brunch.co.kr/@regina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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