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끊게 만드는 매혹적인 음율, 세이렌의 노래

우리가 "또" 잘못 알고 있었던 신화 속 인물

2022.12.06 | 조회 6.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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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잊혀진 여성들 마흔일곱 번째 뉴스레터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이지만 너무나 납작하게만 소비되어 온 그리스신화 속 존재, 세이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바다에서 항해하는 선원들을 ‘세이렌의 노래’로 매혹하여 목숨을 잃게 만든다는 공포스러운 괴물이었습니다. 동시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이를 의미하고요.

‘휘감는 자’라는 어원을 가진 세이렌은 지금까지도 많은 영화와 음악 등으로 재탄생되고 있죠. 그리스 신화 속 또 하나의 “악녀”들, 과연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지금 시작해볼게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세이렌 © in the collection of the British Museum, London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세이렌 © in the collection of the British Museum, London

세이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 아름다운 얼굴과 긴 꼬리를 가진 인어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유럽 인어의 원형으로 여겨지며, 우리가 아는 유명한 동화 ‘인어공주’ 역시 세이렌을 모티프로 하고 있으니까요. 기원전 7세기의 예술 작품들이나 기원전 3세기의 글에서 그들은 반인반수지만, 인어가 아닌 신체의 일부는 여성이고 일부는 독수리의 모습을 띄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일반적으로는 여성의 얼굴과 새의 깃털,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큰 새로 묘사되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세이렌은 얼굴 뿐 아닌 여성의 상체와 새의 다리가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종종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도 표현되었습니다.

세이렌은 섬에 사는 바다의 님프(Nymph)로, 사실 한 명은 아닙니다. 강의 신과 비극의 여신(Mousa, 무사이, 뮤즈)인 멜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세 명의 자매*죠. 바다에서 남자 선원들을 유혹하는 님프로 묘사되다보니, 점점 그들의 외형은 ‘매혹적인’ 모습으로 변형되어 갔습니다.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투사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된 것이죠. 특히 중세 이후 여성성이 강조되면서 여성의 상체와 물고기의 꼬리가 합쳐진 인어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그들은 반인반조의 모습일 때나, 반인반어의 모습일 때나 여전히 신비로운 노랫소리로 남선원들을 유혹한다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바다의 괴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인어의 모습으로 표현되면서 노랫소리로 잠들게 한 다음 잡아먹거나 물에 빠뜨려 죽이는, 팜프파탈의 이미지가 굳어지게 되죠.

*신화에 따라 네 명의 자매가 되기도 합니다.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 Musée de l'hôtel Sandelin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 Musée de l'hôtel Sandelin

세이렌이 신화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일화는 오디세우스와의 만남입니다. 이전 뉴스레터인 키르케 편에서 잠시 언급 된 것처럼, 오디세우스는 최초의 마녀 키르케에게 조언을 얻게 되었는데 그 조언이 바로 세이렌이 사는 섬을 지나면서도 세이렌에게 죽지 않는 방법이었죠. 그 방법은 세이렌의 섬을 지나기 전, 밀랍으로 선원들의 귀를 틀어막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에게는 세이렌의 노래가 궁금하다면, 돛대에 자신의 몸을 밧줄로 꽁꽁 묶고 들어보라고 제안했죠. 궁금함을 못이긴 그남은 돛대에 몸을 매달기로 하고, 자신이 아무리 풀어달라 애원해도 선원들에게 그 섬을 지날 때까지는 밧줄을 풀면 안된다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남은 키르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세이렌의 섬을 지나가게 되죠. 남자는 의연히 돛대에 묶여있지는 않았습니다. 절규에 가깝게 애원하며 풀어달라고 소리쳤죠. 그리고 그 배를 위협적이게 부르고 있는 세이렌들이 있었습니다.

이 일화는 이렇게 끝맺는 듯 보였습니다. 남성사회에는 승리를 의미하는 일화죠. 하지만 우리는 세이렌의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존심이 강한 님프인 세이렌들이 유혹에 성공하지 못한 데에 모욕감을 느껴 단체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신이라고도 불리는 님프가 인간 남자들을 유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니, 다시 한 번 ‘남성사회 공고히 하기’가 얼마나 은은하고도 지속적으로 그리스 신화 속에 자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Les Sirènes © musée Gustave Moreau, Paris
Les Sirènes © musée Gustave Moreau, Paris

세이렌은 메두사처럼 여성에 대한 남성의 혐오와 공포를 의미합니다. 세이렌은 남성을 위협하기에 가부장제를 위협하고, 이는 여성의 ‘목소리’에 관한 공포로도 해석됩니다. 그러한 세이렌을 인간이 이겨내 결국 그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그리면서, 목소리 내는 여성에게 벌이 내려질 것이라는 메세지를 주입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이렌을 원형으로 하는 인어공주 이야기를 보면, 사랑 때문에 자신의 가장 큰 힘이었던 목소리를 스스로 희생하는 여성으로 퇴보하죠*. 기원전부터 여성들은 직접적인 사회적 압박을 포함해 설화와 신화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도 꾸준히 입막음 당해온 것입니다. 침묵은 미덕이라는 시답잖은 설교와 함께 말입니다.

*참고 : 페미니스트 인어 가족이 육지로 나왔을 때

앞서 이야기했듯 세이렌은 님프입니다. 님프는 정령 또는 여신으로, 산이나 강, 숲이나 골짜기 등 자연물에 머물며 그것들을 수호하죠. 그렇기에 세이렌도 바다 또는 강가의 섬에 머물면서 인간으로부터 자연물을 지키려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요. 단순히 남자 선원들이 유혹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의 능력에 무력감을 느낀다는 것은, 남성들의 자아 비대증과도 다시 한 번 연결되는 지점으로 보입니다.

 

지옥의 나무에 있는 하피들 © Pantheon Books edition of Divine Comedy
지옥의 나무에 있는 하피들 © Pantheon Books edition of Divine Comedy

세이렌과 함께 언급되는 괴물로 하피가 있습니다. 하피 또한 여성으로 묘사되죠. 하피도 반인반수이며, 인간과 새의 모습을 띕니다. 다만, 세이렌은 아름답다고 주로 묘사되나, 하피는 흉측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세이렌은 섹슈얼함이 강조 된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고, 하피는 얼굴만 인간 여성이며 이외의 신체는 새로 묘사되는 것 처럼요. 그리고 세이렌은 매혹적이고 청아한 목소리로 인간을 유혹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하피는 노래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재미있는 점은, 아름답고 감미로운 세이렌은 자신들의 섬을 지나는 모든 인간을 죽이려 하는 악한 님프이고, 흉측하고 시끄러운 하피는 자신들의 복수할 대상이 아닌 인간에게는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피는 메두사와 같은 고르곤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메두사나 세이렌처럼 아주 ‘악한’ 이미지로는 묘사되지는 않죠. 두 캐릭터는 상당히 대비되는 듯하나, 결국 같은 맥락 안에서 소비 됩니다. 바로 ‘악의 근원’인 그들이 큰 힘을 가진 것으로 묘사 될 수록 남성의 승리를 극대화하고, 남성이 가진 권력의 정당성과 절대성을 확립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이데올로기적 폭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이렌과 하피와 같은 여성의 얼굴을 한 괴물들에 대한 묘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이유이죠.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로마 모자이크, AD 2세기 © 바르도 국립 박물관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로마 모자이크, AD 2세기 © 바르도 국립 박물관

세이렌은 우리 일상 속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커피를 먹도록 유혹하는 스타벅스의 로고, 위험을 알리는 경보장치인 구급차/경찰차의 사이렌, 해리포터 작품 속 노래하는 인어들, 인어공주 동화, 세이렌을 모티브로 한 음악과 예술 작품들. 하지만 수 많은 세이렌들 속에서 우리는 진짜 세이렌의 얼굴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세이렌이 억압과 여성 혐오를 상징하면서, 또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지닌 힘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억압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가 두려워한 것은 우리 여성들의 ‘목소리’였다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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