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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마흔 두 번째 뉴스레터는 지난 주 보내드린 사냥꾼 아르테미스에 이어서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위풍당당한 여성 전사들인 아마조네스에 대해 이야기입니다. 그들을 집단으로 일컬을 때는 복수형인 아마조네스, 개인으로는 아마존이라고 부르죠.
현대에서도 아마조네스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합니다. 정치 분야에서 여성 장관이 많은 정부를 두고 아마조네스 내각이라 부르기도 하듯이요. 익숙하면서도 낯선 아마존 전사들에 대한 이야기, 지금 시작해볼게요.
아마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신가요? 다국적 기업과 미국 주식이 생각나기도 하고, 지구의 허파인 브라질 아마존이 떠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햇볕에 까맣게 탄 피부에 질긴 조직의 옷을 입고 활을 쏘는 한 무리의 여성 전사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브라질 아마존 강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원주민 여성 전사 부족에게 공격당한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고 다국적 기업 아마존은 이 브라질의 아마존 강에서 유래한 이름이니, 결국 떠오르는 세 가지 이미지가 모두 같은 것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 신화 속 여성 전사 부족, 아마조네스죠.
학창시절 키가 크거나 몸집이 큰 여자아이들은 ‘조폭마누라’ 또는 ‘아마조네스’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사회적 성 역할을 답습하여서, 남자보다 싸움을 잘하거나 잘 할 것 같은 체구를 가진 여자 아이들을 남자 아이들이 비하하며 멸칭으로 사용한 것이죠. 자신들의 이름을 비하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걸 알았다면, 아마조네스는 어리숙한 남자아이들의 목숨을 빼앗았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남성을 혐오한다고 묘사되기도 하거든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아마조네스는 전쟁의 신과 요정 하르모니아의 자손으로 묘사되며, 여성들만으로 구성 된 건실한 왕국을 이룬 이들로 등장합니다. 당연히 그들의 왕은 여성이었고, 전사도 여성이었죠. 신화 속 인물들이긴 하지만 자웅동체는 아니었기에, 그들은 종족 보존을 위해 다른 부족의 남자들을 약탈해왔습니다. 아마조네스에게 성관계란 불가피한 필요악이으로 여겨졌으므로 아이를 얻은 후 약탈해 온 남자는 불필요했고, 그대로 살해하거나 때로는 원래 부족으로 돌려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아이도 여자 아이만을 거두고, 남자 아이는 죽이거나 평생 노예로 부렸습니다.
아마조네스라는 이름의 어원은 여러 가지로 추정되는데, 대표적인 것은 부정적 의미를 갖는 접두사 ‘A’에 유방을 뜻하는 ‘마조스(mazos)’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그들을 그린 고대 예술 작품을 보면 한 쪽 유방이 주로 가려져 묘사가 되곤 하죠. 이렇게 도려낸 오른쪽 가슴은 전쟁에 능한 여성임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모유 수유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다른 어원으로는 ‘모든 남자를 혐오하는 자들’ 이라는 가설도 있습니다. 외부의 남성 사회와 단절하며 사는 아마조네스를 통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역사가가 대부분 남자였던 것을 감안할 때, 과연 여성 억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존과의 전투를 의미하는 아마조노마키를 보면 그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아시아의 역사서에서도 등장하듯 승리하는 남성 영웅을 만들고자 신화는 강한 여성을 만들어 낸 것이죠.
그리스 남자들로 구성된 전사들을 침략하는 아마조네스 사이의 전투를 아마조노마키라고 부르며, 대부분의 이 아마조노마키는 싸움을 아주 잘하는 문명 사회 밖 아마조네스의 침략을 남자 전사들이 격퇴하여 문명 사회인 그리스를 지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 대결적 전투에서 남자가 승리하고 자존심을 지키며, 남성 사회를 위협하는 여성을 격퇴한 그리스 역사에서 남자들이 주역을 담당하고 문화의 꽃을 피운다는 것이죠. 남성 중심 사회 유지를 위해 여성을 병풍으로 세우는 모양새가 처절할 만큼 지리 멸렬해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스페인이 남미를 탐험할 때 브라질의 강에서 여성 전사 부족에게 공격 당하며 아마존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죠. ‘그러면 아마조네스라는 여성 전사 부족이 실존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존은 신화가 되기 이전부터 그리스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전설이었습니다. 그러다 호메로스 그리고 헤로도토스 등 고대 그리스 역사가들에 의해 ‘아마존 신화’로 탄생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아마조네스는 오롯이 상상 속의 존재인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헤로도토스는 아마조네스가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인 스키타이 국경에 있다고 했으며, 다른 역사가들은 소아시아, 리비아, 그리고 인도 등을 언급했습니다.
그 중 스키타이의 후손인 사르마티아인들은 기원 전 3세기 부터 3세기 까지 존재한 유목민 사회를 가진 부족인데, 이들 사회에는 여성 전사들이 상당히 많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높으며 모계 사회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많은 나라들에서 여성은 가정에만 생활 영역이 한정 된 존재로 종종 인간의 취급을 받지 못하던 시기였음을 고려하였을 때, 이들을 아마조네스의 실존 또는 후손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1970년대 이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발견 된 사르마티아인들의 무덤에서는 수백여 구에 달하는 여성 전사 유골이 발굴되었고, 연령도 10대 부터 40대까지 다양하다고 하죠.
아마조네스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 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원더우먼이죠. 원더우먼은 아마조네스가 실존한 것으로 여겨지는 스키타이의 수도 데미스키라가 고향인 것으로 등장하죠. 그리고 원더우먼의 어머니 역으로 나오는 인물인 히폴리테는 그리스 신화 속 아마조네스의 왕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캐릭터로는 대표적 OTT 서비스의 영화인 올드가드의 안드로마케입니다.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을 맡은 이 캐릭터는 스키타이의 안드로마케라는 인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살고 있으며 거의 모든 무술에 능한 것으로 묘사되죠.
컨텐츠가 아닌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성들만 입장이 가능한 핀란드의 슈퍼쉬 아일랜드는 데미스키라로 비유되곤 합니다. 푸른 발트해 위의 섬에서 야외사우나와 수상스포츠 그리고 명상과 마사지 등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여성이 자유로워지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하죠. 이 곳의 주인인 크리스티나 로스는 CEO 로 회사를 운영했는데, 클라이언트 미팅에서 자신이 아닌 남자 직원에게 가서 악수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고 회고하며 슈피쉬 아일랜드의 정당성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아마조네스는 게임에서도 많이 모티프로 사용되곤 합니다. 게임 유저 성별 비중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에도, 게임사들은 아마조네스 캐릭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를 성적 대상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뛰어난 전사로 묘사되는 아마조네스 마저도 근육 하나 없이 특정 신체부위만 아주 크게 그리고,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혀 놓고는 하죠.
이처럼 작은 부분에서도 사회는 아마존 신화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전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강인한 그들을 떠올리며 남성 중심 사회를 타파해나가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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