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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마흔아홉 번째 뉴스레터의 주인공은 운명을 관장하는 세 명의 신인 모이라이(Moirai, Moirae)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 실을 쥐고 태어난다는 속설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바로 그 중심에 운명의 신인 모이라이가 등장하는데요. 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 운명의 몫을 나눠주고 주로 운명의 실을 자아내는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운명의 영역은 오직 모이라이만 개입할 수 있었고, 제우스조차도 관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들조차도 이들이 정한 운명을 피할 수 없었죠.
모든 이들의 삶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중요한 존재로 자리했던 세 명의 자매 모이라이의 이야기, 지금 시작해보겠습니다.
모이라이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운명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의 이름은 ‘각자가 받은 몫’이라는 뜻의 모이라가 신격화된 이름입니다. 로마 신화에서는 파르카이(Parcae) 라고 부릅니다. 모이라이는 밤의 신 닉스가 혼자의 힘으로, 혹은 어둠의 신 에레보스와 결합하여 낳은 자매라고도 하고, 테미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자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닉스의 딸이라고 하는 것은, 모이라이가 우주적 힘의 일부로 귀속되어있다는 것을 의미로 볼 수 있다고도 합니다. 또한 이전 뉴스레터에서 다뤘던 에리스 또한 닉스의 딸이기 때문에 모이라이와 자매라고 볼 수 있죠.
이들은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는 실을 관리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운명의 실타래를 통해 그의 수명을 재단하고 삶을 지배하며 감시했습니다. 세 명의 자매들은 각자의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리스어로 ‘실을 잣는 여자’라는 의미인 클로토(Clotho)는 운명의 실을 뽑아내는 탄생의 의미를 가졌고, ‘할당하는 여자’라는 의미인 라케시스(Lachesis)는 인생의 길이를 정해 실을 감거나 짜는 역할로 인생의 의미를 가지며, 마지막으로 ‘되돌릴 수 없는 여자’ 혹은 ‘가차없는 여자’라는 의미인 아트로포스(Atropos)는 가위로 그 실을 잘라 생명을 거두는 역할을 맡아 죽음의 의미 가졌습니다. 그 중 아트로포스는 어떤 신도 거스를 수 없는 지위를 가진 가장 무서운 신 중 한 명이었습니다.
모이라이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선과 악을 모두 선사하는 신이었습니다. 고대 신화에서 모이라이는 경외심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구원을 받거나 사형에 처해지는 것도 모이라이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운명의 영역은 세상의 질서를 허무는 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신들조차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모이라이는 신과 인간 모두에게 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의미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왜 모이라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을까요?
모이라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비교적 자주 등장했으나 대부분 개념의 형태로 언급될 뿐 개별적 인물로서 독자적인 역할이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이라이는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임에도 종종 신이나 영웅이 탄생할 때 등장할 뿐 개인을 보호하거나 다치게 하기 위해 개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비록 모이라이의 존재가 크게 묘사되지는 않았으나 모이라이의 힘은 그리스 신화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표출되었습니다. 가령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인 사르페돈이 트로이 전쟁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그 운명을 번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들의 왕도 모이라이의 결정에 굴복해야 했습니다.
제우스조차 모이라이가 무엇을 의도하는지 알기 위해 영웅들의 운명을 올려놓은 천칭의 균형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지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도 존재하는데요.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인간의 운명에 관여한다고 할 때, 이들의 역할은 운명의 집행자에 불과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이라이만이 운명의 결정자이자 예언자였죠.
항상 젊고 아름다운 여성만이 다뤄지는 그리스 로마 속의 신들과 달리 모이라이는 늙은 여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이라이는 제우스의 영향권 밖에 있는 신화의 유일한 등장인물입니다. 제우스를 포함한 모든 신들은 모이라이의 결정에 간섭할 수 없고, 그들의 임무를 존중합니다. 즉, 모이라이에게는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존재합니다. 묘사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그림을 그렸던 작가들이 힘을 가진 여성이라면 당연히 나이가 있는 여성으로 판단했겠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이라이는 다른 신들처럼 제우스의 힘에 휘둘리지 않았고, 연륜이 있는 여성은 사회적 기대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묘사는 가부장제 사회의 권력관계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보이는 여성의 이미지가 어떤 인식을 가져다주는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유일무이하고 독보적인 모이라이를 알게되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신들의 왕조차 거역할 수 없는 힘을 여성이 가졌다는 통쾌함, 고대 그리스 사회의 위계를 깨부쉈다는 유쾌함, 신화 속 여성이 존중받는 대상일 수 있었다는 놀라움 등을 느끼지 않으셨나요. 모이라이는 현대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더 각별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대에 세 명의 자매가 모이라이를 이뤄 아무도 건들지 못한 힘을 가졌던 것처럼, 현대에는 각기의 삶을 사는 자매들이 모여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숨지 않고 휘둘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힘이 세상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던 모이라이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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