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한 주간 무탈하셨나요? 7월의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득 얼마 전 6월 25일이 지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 다닐 때는 장마 시즌에 주로 6.25 표어를 지어오는 숙제가 있곤 했죠. 매년 뭘 써야 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런 문구를 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군인 아저씨 고맙습니다.' 때로 학교에서는 자매 결연을 맺은 군부대에 편지쓰기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편지쓰기 행사는 군대 위문편지라는 이름으로 행해졌고, 지금까지도 일부 학교 (특히 여고)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살면서 한 번쯤은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맞딱뜨리곤 합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임신/출산/육아를 해야한다는 게 그것이죠. 에디터 3의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도덕 시간에 이를 주제로 찬반 토론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 남자 선배들의 지긋지긋한 군대 얘기를 듣기도 했고요. 많은 한국 여성들에게 군대와 군인이란 그다지 긍정적인 존재는 아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경, 여군, 그리고 여자 소방관 무용론 시리즈의 마지막인 여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 자체가 차별의 역사를 가진 한국 여군의 이야기, 지금 시작해 볼게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군은 누구일까요?
아마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국가보훈처장으로 일한 피우진 전 장관일 것입니다. 장관까지 한 인물이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겐 낯선 인물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우진 전 장관은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중령으로 대한민국 육군 여성 항공장교 1세대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는 여군 차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기도 하죠.
그는 자전적 수기인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통해 군대 내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어려움을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피우진 전 장관이 대위 시절 남자 상관으로부터 여군들을 술자리에 보내라는 지시에 시달렸는데, 어느 날은 여군들에게 사복을 입혀 술자리에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들에게 전투복을 입히고 총기를 들려서 보낸 일화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죠.
피우진 전 장관은 특히 27년간 복무를 하다 군대로부터 강제 전역을 당했습니다. 유방암 수술로 한 쪽 가슴을 절제한 후 2급 장애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죠. 군에서는 그가 한쪽 가슴을 절제해 신체 균형이 맞지 않아 헬기 조종에 영향을 미친다고 문제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멀쩡한 다른 쪽 가슴을 도려내 자신이 천직이라고 여기는 군인이라는 직업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끝내 군에서 강제로 쫓겨나긴 했지만, 강제 전역의 부당성을 다투는 행정 소송에서 승소하여 군에 다시 복귀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년 후 국가보훈처장이라는 직위를 얻어 당시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그리고 그는 젊은여군포럼의 대표로 군내 성폭력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해 왔습니다. 후배 여군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시작한 단체로 2015년에 결성되었습니다. 그는 여군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여군 후배들이 실력만큼 대접받도록 사회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의 군 복무 시절 출격 암호명은 피닉스였습니다. 그리고 군대 안팎에서의 싸움에서 불사조처럼 살아남았죠.
6.25 전쟁에 참전한 여군이 2,500명에 달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육군, 해군, 공군 그리고 군번 없이 참전한 여성과 간호 장교까지, 6.25 전쟁에는 여성 군인이 있었습니다. 2019년에 6.25 참전 유공자 발굴 사업을 통해 등록된 현황을 살펴보면 6.25 참전 2,554명, 베트남전 참전 461명, 6.25 및 베트남전 참전 11명으로 여군이 총 3,026명에 달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입대하고 전쟁에 참여했다고 하죠. 6.25에 참전한 여군인 김명자 유공자는 19세의 나이에 의용군에 지원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때 나라가 정말 위급했다. 여자 의용군을 모집해서 응시했다' 라고 말하며 남자와 훈련을 똑같이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유격대 장군인 이정숙 유공자는 무장대를 조직해 무장대원 70여 명과 농민군을 진두지휘했고, 간호장교 박옥선 유공자는 18살에 참전하여 자신의 혈액까지 수혈하며 군인들을 돌봤습니다. 평범한 여성들도 전쟁터로 향했고 목숨을 걸고 몸을 바쳤지만, 이들의 공적은 묻혀진 채로 남아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가 차원으로 그들의 업적을 알리는 등의 보훈의 예우를 다하지 않는다는 평을 하기도 하죠.
사실 전쟁 참전 당시에도 여성들은 남군보다도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습니다. 한 참전 여군은 인터뷰에서 여군들은 군복도 없어서 남군용 군복을 잘라서 입기도 하고, 잘 곳이 없어 야전침대에서 잤다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자원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몸을 바친 여군들에게 돌아오는 건 싸늘한 사회의 시선이었습니다. '기가 세다', '발랑 까졌다' 등의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6.25 참전 사실을 숨기는 여성들도 있었다고 하죠. 특히 군에서 성폭력을 당했을 거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지키는데 성별은 따로 없었지만, 국가와 사회는 결국 한 성별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여군 무용론
'여성의 신체 특성상 전투 임무가 제한돼 활용도가 떨어지고 군의 유지비만 과도하게 소요된다' 라는 생각들로 여군 무용론이 등장했고, 1970년대에는 여군단이라는 여군 별도 조직이 생기는 등 차별의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로 인해 사람이 늘어나자, 그 화살을 여군에게 돌려 33%의 여군 인력 감축이 일어나기도 했죠. 1990년에 여성으로만 이뤄진 여군 병과가 폐지되어, 여군이 별도 조직이 아닌 군에 흡수되었지만 차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군은 여전히 간호와 행정 병과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군 내에 여전히 여군에게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원인으로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종 군 내 업무 시설과 훈련장에 여군을 위한 시설을 구비하는 걸 빈정대는 인식들이 아직 있기도 하고, 남군보다 몇 배는 먼 거리의 화장실을 가기도 하죠. 여군이 남군의 보조 역할이라는 뿌리 깊은 차별과 배제는 단지 군 내에서의 인식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에 여전히 퍼져있는 여성과 남성에 관한 인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면 여성이 군대에서 '존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 화장실을 만드는 데에 회의적이고, 군내 여성 대상 성범죄와 범죄에 대한 처벌에 적극적이지 않은 현재 상태에서 여성이 군대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여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최근 몇 년 간 군대 내 성범죄와 2차 가해로 목숨을 잃었던 여성 공군 중사와 해군 부사관 그리고 육군 하사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는 주장이 종종 나오곤 합니다. 우선 그런 논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군 내에 있는 여성 군인들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꽤 많은 여성이 군인으로 나라를 위해 복무하고 싶어 하지만 진급, 군대 내 생활, 인식 그리고 범죄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여군을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여성 징집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한국 사회가 인지하길 바라며, 오늘 뉴스레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Almost famous 팀의 새로운 텀블벅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자세한 사항은 이미지를 클릭해 확인해보세요!
그리스 로마 신화 외전 - 두 번째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