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나온 마법소녀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K-팝 아이돌로 환생한 마법소녀, 진짜 변신은 지금부터다

2025.08.24 | 조회 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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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헌트릭스 3인방 (출처.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헌트릭스 3인방 (출처. 넷플릭스)

요즘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보면 아이들이 어떤 노래를 열창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마트나 가게들에서 종종 들리는 이 노래는 지난 6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메인 곡인 Golden(골든) 입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줄여서 케데헌은 뜨거운 화제를 모은 애니메이션이죠. 이름에 케이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영업하기 힘들다는 밈이 돌기도 하고, 이름만 넘기면 진짜 너무 재밌다며 추천을 하기도 합니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K-팝의 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 역사상 오랫동간 정형화되어 온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과감하게 벗어던진 새로운 시도 때문이었죠.

구독자님이 어릴적 보아왔던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들 기억하시나요? 좋아하는 카툰 또는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들은 어떤 모습인가요? 에디터 N은 어릴적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투니버스부터 챔프, 재능티비, 카툰 네트워크 같은 채널들을 섭렵하곤 했습니다. 마법소녀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과 '소년만화'라고 불리는 애니메이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았죠.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성역할이나 소소한 차별이 어린시절의 에디터 N에게 알게 모르게 학습되었다는 걸, 한참 크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애니메이션 속의 여성 캐릭터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케데헌의 헌트릭스에 앞서서,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들에 대해 먼저 알아볼까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출처. 아마존 갈무리 / 디즈니)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출처. 아마존 갈무리 /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의 자리

페미니즘 영화 이론가들은 오랫동안 애니메이션 매체의 성별 재현 방식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특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학술적 연구들은 여성 캐릭터가 어떻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해왔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죠. "Feminist Discourse in Animated Films" 연구에 따르면 디즈니의 클래식 시대(1937-1959)에는 여성 캐릭터들이 "착하고, 집에 묶여 있으며, 길들여진 아름다운 공주들"로 그려졌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의 미녀는 모두 가정적 공간과 동일시되었고, 이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남성들을 가정적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재현 방식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카티아 페레아(Katia Perea)는 애니메이션 산업이 구조적으로 여성 캐릭터를 주변화해 왔음을 지적하며, 여성성을 ‘마돈나-창녀’ 이분법 속에 가둬온 방식을 비판했습니다.

이는 개별 작품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수십 년간 주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작품 중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공동 주인공인 작품의 비율은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디즈니-픽사가 34%로 가장 높았지만,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과 일루미네이션은 아예 0%를 기록했습니다.

 

달의요정 세일러문 (출처. SBS)
달의요정 세일러문 (출처. SBS)

마법소녀, 권력과 순응 사이

어린 시절 친숙하게 접했던 마법소녀 애니메이션들을 다시 살펴보면 더욱 복잡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표면적으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여성 캐릭터들이지만, 실제로는 전통적인 여성성의 틀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 견해이죠.

일본의 페미니스트 학자 사이토 쿠미코는 마법소녀 장르의 근본적 모순을 지적합니다. 겉보기에는 여성의 힘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소녀다움과 여성성을 권력의 필수 조건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러한 틀에 맞지 않는 소녀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세일러문의 세라는 변신할 때 메이크업!이라고 외칩니다. 이는 변신이라기보다는 화장에 가까웠다는 비판을 받곤 하죠. 카드캡터 체리의 체리는 지수가 만들어주는 예쁜 의상을 입고 카드를 수집하는 '귀여운' 마법소녀이고요. 파워퍼프걸조차 설탕, 향신료, 온갖 좋은 것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소녀들이었죠.

이들의 공통점은 소녀다운 것이 권력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마법소녀들은 항상 어리고, 나이가 들면서 힘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성숙한 여성 캐릭터들은 대개 악역 여왕이나 마녀로 그려졌고요.

특히 문제적인 것은 시각적 표현의 획일화였습니다. 모든 여성 캐릭터는 날씬하고 특정 신체 부위가 부각된 몸매를 가졌고, 긴 속눈썹과 붉은 입술은 거의 필수 아이템이었죠. 마법소녀 장르가 아니더라도, 애니메이션 속 동물 캐릭터조차 '여성'이라는 성별이라면 꼭 속눈썹과 붉은 입술로 여성성이 표현되었고요. 이는 여성다움에 대한 매우 협소하고 상업적인 정의를 어린 시청자들에게 주입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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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강의 모습 (출처. 연합뉴스)
매기 강의 모습 (출처. 연합뉴스)

매기 강: 애니메이션 업계의 유리천장에 도전하는 개척자

아케인과 쉬라에 이어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해석은 관객들을 끌어 모았죠. 특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을 만든 매기 강(Maggie Kang) 감독의 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경력과 성취는 단순히 개인적 성공을 넘어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여성, 특히 아시아계 여성이 직면하는 구조적 장벽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기 때문이죠.

매기 강의 성취를 더욱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여성 감독이 얼마나 드문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통계들입니다. USC 안넨버그 포용성 연구소의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 중 여성은 겨우 3%에 불과했습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상위 120개 애니메이션 영화의 197명 감독 중 여성은 단 4명뿐이었고요. 더 심각한 것은 유색인종 여성의 상황입니다. 같은 기간 유색인종 여성 감독은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지난 15년간 미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화를 단독으로 감독한 여성은 제니퍼 유 넬슨(<쿵푸팬더2>, 2011)과 준 팔켄스타인(<티거 무비>, 2000)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교육 현장의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애니메이션 학교 학생의 60%가 여성이지만, 업계에서 창작직에 종사하는 여성은 20-25%에 불과합니다. Women in Animation의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길드 워커 중 여성은 25.6%였지만, 감독직에서는 3%, 아트 디렉터는 1%, 작가는 5%에 그쳤습니다.

매기 강 자신도 이러한 구조적 장벽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처음에 소니에서 거부당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처음에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기업들은 "위험 회피적"태도로 인해 기존에 검증된 남성 감독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매기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 "애니메이션 업계 전반에 걸쳐 유색인종을 위한 교육과 멘토링이 명백히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죠.

그의 성공은 단순히 한 개인의 성취가 아닙니다. 아시아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글로벌하게 성공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주도한 감독이라는 기록은 다음 세대 여성 감독들에게 가능성의 증명을 제시했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취는 다양성 있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전 세계적 갈증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성 감독의 역량을 입증하는 강력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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