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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여행의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 지금은 호텔, 관광, 크루즈, 여행 매체 등의 분야를 주도하고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죠. 그중 하나로 2019년 엄청난 열풍을 일으켰던 *디폴트립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인생샷이 아닌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을 추구하는 디폴트립은 많은 여성의 여행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었고 그로 인해 여성들은 더욱 주체적인 삶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달에 발을 딛고, 지구를 일주하고, 남극에 도착하고, 에베레스트를 오른 최초의 사람들은 역사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로 여행이란 금기를 뛰어넘은 여성은 누구일까요? 그의 이름은 잔느 바레(Jeanne Baret), 1766년 세계 일주에 성공한 최초의 여성이자 남성이기도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잊혀진 여성들 쉰두 번째 뉴스레터에서는 잔느 바레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디폴트립 : Default와 Trip의 합성어로 사회가 정한 허구의 여성성을 벗어던진 디폴트인의 여행을 뜻함.
1766년, 유럽은 계몽주의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경제 확장을 모색하던 프랑스도 새로운 땅을 탐험하기 위해 원정대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루이 15세는 프랑스 해군 제독이자 탐험가인 루이 드 부건빌(Louis de Bougainville)이 이끄는 세계 일주 원정에 동의했고 프랑스 최초의 야심찬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저명한 식물학자였던 필리베르(Philibert Commerson)는 왕으로부터 직접 새로운 국가의 내륙과 해안의 식물을 조사하고 표본을 만들어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로 엄청난 장비와 자원, 그리고 개인 비서 동반까지 허용되었기에 필리베르의 조수로 일하던 잔느도 함께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프랑스는 여성이 항해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었습니다. 잔느는 고작 성별 때문에 미지의 영역에 있는 식물 탐구의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고 그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자신의 성별을 속이기로 했습니다. 잔느의 방대한 식물학적 지식을 알고 있던 필리베르도 이에 동의했죠. 잔느는 배에 오르기 위해 남성으로 변장했고 이름도 '진 바렛(Jean Baret)'으로 바꾸었습니다. 1767년 2월, 붕대로 감은 가슴과 짧게 자른 머리로 나타난 잔느는 드디어 배에 올랐고 무려 2년 동안이나 300명의 남자들과 세계를 탐험했습니다. 잔느의 선원 차림과 짐승 같은 체력 덕분에 항해의 대부분 동안 그 누구도 잔느가 여자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여행 동안 필리베르의 건강 악화로 잔느는 수석 식물학자로서 탐험을 이끌었습니다. 잔느는 더 이상 필리베르의 제자가 아닌 스승이었습니다. 우루과이, 브라질, 타히티 등의 국가를 여행했고 각국에서 식물 표본을 수집하며 주변 환경을 관찰했습니다. 잔느는 2년 동안 무려 6,000개 이상의 표본을 수집했고 그중에서도 남아메리카에서 최초로 발견된 부건빌레아(Bougainvillea brasiliensis)는 잔느의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여겨집니다. 덕분에 남아메리카가 아닌 전 세계에서 이 아름다운 식물을 만나볼 수 있죠.
이 공로에 대한 인정으로 성별이 밝혀진 이후에도 잔느는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부건빌 뿐만 아니라 모두가 잔느의 역사적인 발견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도 잔느가 수행했던 작업의 중요성, 용기, 그리고 혁신적인 업적으로 1785년 부건빌의 추천을 받은 프랑스 해양부가 잔느에게 연금을 수여했고, 한참 후인 2012년에는 한 생물학자가 남아프리카에서 발견한 꽃의 이름은 잔느를 기념하여 솔라눔 바르티에(Solanum baretiae, 잔느 바레를 기리는 의미)로 명명했습니다.
세계를 일주한 최초의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잔느의 업적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여성의 기여가 아주 쉽게 역사적 기록에서 배제되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잔느의 기록조차 권력 있는 남성들의 기록에 의해 밝혀졌으니까요. 그런 견고한 틀 안에서 잔느는 스스로를 위한 기회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했기에 더욱더 의미 있는 발자취이기도 합니다.
잔느의 뒤를 이어 모험을 시작한 역사적인 인물들이 있습니다. 1889년 단 72일 동안 전 세계를 단독 여행한 모험적인 저널리스트 넬리 블라이, 1893년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 최초의 여성 탐험가 메리 킹슬리, 1895년 자전거로 세계 일주한 최초의 여성 애니 런던데리, 1910년 조종사 면허를 받은 최초의 여성 베시 콜먼...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도 잔느처럼 남장을 하고 훌훌 떠난 여성이 있습니다. 1830년, 김금원은 14살의 나이로 머리를 동자처럼 땋고 수레에 앉았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금원은 조선 여성이라면 가져야 할 부녀자의 도리를 단호하게 거부하며 담장 밖의 여행을 추구했습니다. 세상에 반문하며 "여자는 세상과 절연된 깊숙한 규방에서 살면서 총명과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마침내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만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냐"는 글을 적은 금원은 단양의 선암계곡, 영춘의 천연굴, 청풍의 옥순봉을 둘러보았고, 벅찬 감동을 시와 기행문을 남겼습니다.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 부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은 불행이지만 하늘은 나에게 산수를 즐기는 어진 성품과 눈과 귀로 듣고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또 이를 글로 쓸 수 있는 능력까지 주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여자로 태어났다고 규방 깊숙이 틀어 앉아 여자의 길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
잔느는 식물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으로 시작한 여행이었기에 세계 일주를 한 최초의 여성이 될 의도는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별과 계급의 장벽을 뛰어넘는 배짱과 의지를 가진 잔느의 용기는 현재 우리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고, 모험과 여행은 여성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 여행자의 3분의 2는 여성이며, 여행 시장의 대부분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이 여행하고 있죠.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욕구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당연한 권리가 아니었던 참정권부터 시작해 양육권, 재산 소유권, 교육, 고용, 등 여성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을 아주 예전부터 쟁취해왔습니다. 그 여정을 기록하여 더욱더 많은 여성들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닿기를 바랍니다. 잊혀진 여성들을 찾는 여정은 올해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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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치
너무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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