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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시작은 잘 보내고 계시는가요? 여름이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알록달록 물드는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은 나들이 가기 안성맞춤입니다. 특히나 가을은 자전거 여행의 계절이라고도 하죠.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상쾌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많은 이들이 페달을 밟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서든 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여성들에게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하나의 투쟁과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여성들은 이 자전거를 언제부터, 어떻게 타기 시작했을까요? 잊혀진 여성들 마흔 번째 뉴스레터는 자전거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류의 생활에 바퀴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부터였으나 대중적으로 자전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839년부터입니다. 영국에서 대장간을 하던 커크패트릭 맥밀런의 고안으로 좌우 2개의 페달을 밟아서 연결봉과 크랭크를 통해 뒷바퀴를 돌리는 자전거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땅에서 발을 뗀 채로 굴러가는 자전거는 말 없이도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인간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렇게 보급된 자전거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자 남성적인 액세서리로 사용되었기에 여성들은 자전거를 마음대로 탈 수 없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역할과 기대가 명확하게 정의되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면 욕을 하거나 돌을 던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폭행당하는 일까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만약 자전거를 꼭 타고 싶다면 남자로 변장하거나 풍성한 치마를 입고도 탈 수 있는 바퀴가 세 개 달린 자전거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에 반발하고 공공 영역에서 자신의 자리를 요구했습니다. 당대 여성의 행동 규범을 부시고, 여성의 신체와 행동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이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요. 규제된 삶을 살았던 당시의 여성들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외부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을 것 같지 않나요? 이처럼 여성들에게 자전거의 의미는 탈 것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1851년, 여성운동가 아멜리아 블루머는 불편한 드레스가 여성들의 신체와 정신을 구속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이름을 딴 여성용 바지 ‘블루머(Bloomers)’를 만들었습니다. 블루머는 터키풍의 헐렁하고 무릎길이만큼 오는 바지 위에 짧은 스커트 복장이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이 입었던 치마와 드레스는 행동에 제한적이고 몸에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어려웠기에 만든 것이죠. 아멜리아는 복장 개선이 우선이라 생각했고 혁명적인 옷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연하게도 사회는 이 옷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여성의 바지 착용은 ‘남성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블루머를 착용한 여성들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블루머는 소수 사람만 입는 복장으로 남을 뻔했으나 자전거의 보급으로 다시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등장했습니다.
블루머는 많은 여성이 복장으로 인해 방해받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여성들의 복장을 간소화시켰습니다. 당시 서구 세계 곳곳에서 초기 여성 인권 운동의 상징이자 획기적인 혁신이었던 블루머는 여성들에게 신체적인 이동의 자유와 건강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적 변화를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신문과 잡지에서는 자전거가 여성에게 해로운 것인지 유익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워싱턴의 여성 구조연맹은 자전거가 불임을 유발하고 남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부추긴다고 주장했고, 미국의 유명한 목사인 클리브랜드 콕스는 자전거 타는 여성을 ‘빗자루를 탄 노파’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들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규정해놓은 틀을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점이 언짢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여태껏 여성들은 얌전히 앉아있는 인형 같은 존재와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자전거를 탔습니다. 여기저기서 떠드는 논란은 자전거에 대한 여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여성들은 절대 멈추지 않았죠. 1868년, 프랑스 보르도의 한 공원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여성 자전거 경주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1887년, 영국에서 ‘안전 자전거’라는 이름의 새로운 자전거가 등장하면서 여성들은 비로소 자전거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자전거는 앞바퀴와 뒷바퀴의 크기가 같고, 두 바퀴를 이어주는 체인도 갖추어 똑바로 앉아서 탈 수 있었죠. 안전 자전거에 이어 공기타이어가 발명되면서 자전거 타기가 더 편해진 덕분에 자전거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1896년 파리에만 5천 명의 여성 라이더들이 있었다고 하니 엄청난 인기를 끌었죠. 거의 모든 계층의 여성들은 자전거를 탔고 이는 세계적인 자전거 대유행에 기여했습니다.
19세기부터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의 구성원들과 여성 지도자들도 자전거를 탔습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옹호하고 독려하며 여성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전거는 캠페인에 대한 관심을 끌 수 있는 실용적인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1910년대 영국에서는 ‘Votes For Women’ 현수막이 달린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고, 서프러제트는 윈스턴 처칠의 자동차 행렬을 자전거로 막았습니다. 여성들에게 자전거는 이동 수단의 의미를 넘어 복장부터 활동 반경, 그리고 일상까지 뒤흔든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미국의 여성 인권 운동가인 수전 B. 엔서니는 1896년 <뉴욕 월드(New York World)>의 기자 넬리 블라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전거만큼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여성을 해방하기 위해 도움이 되었던 것은 없다. 여성들은 자전거로 인해 자유와 자립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여성을 볼 때마다 대단히 기쁘다. 그 모습은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여성으로 느껴진다.”
수전의 말처럼 우리는 언제라도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릴 수 있게 되었고, 계속해서 페달을 밟으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전거가 탄생한 지 얼마 안 된 1800년대 후반, 여성들은 자전거를 ‘자유의 기계(Freedom Machine)’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는 건 어떨까요? 과거의 여성들이 우리에게 건넨 한계 없는 자유의 바람을 가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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