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잊혀진 여성들 스물여섯 번째 뉴스레터는 미키 마우스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디즈니 최초의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 이 이름이 어떻게 탄생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미키 마우스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바로 시작해볼게요.
월트 디즈니는 영화 배급사와의 계약으로 인해 새로운 캐릭터를 고민했습니다. 심각한 상황이었던 자신의 스튜디오를 구하기 위해서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캐릭터가 필요했죠. 연구를 거듭하던 월트 디즈니는 캔자스 시티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가 들쥐의 사육장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쥐를 그렸습니다.
1928년,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기차 안에서 월트 디즈니는 아내인 릴리안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캐릭터의 이름을 ‘모티머 마우스'라고 소개하면서요.
릴리안은 ‘모티머’라는 이름은 너무 형식적이므로 '미키'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디즈니의 상징이자 마스코트인 미키 마우스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릴리안과 디즈니 스튜디오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릴리안의 룸메이트가 주선한 인터뷰로부터 시작됩니다. 1923년, 당시 앨리스 시리즈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고 있던 디즈니 스튜디오는 그림 그리는 것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에 적합한 인재였던 릴리안은 애니메이터로 고용되었고 1년 반 후에는 월트의 개인 비서로 일했습니다. 월트와의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스튜디오의 사업에 참여하며 월트의 비공식 조언자로서 여행에 동행했습니다. 미키 마우스의 탄생 또한 기차 여행에서 탄생했죠.
릴리안은 첫 번째 미키 마우스가 등장하는 만화인 ‘플레인 크레이지(Plane Crazy)'의 잉크 아티스트로 일했으며, 월트와 함께 남미를 순회하며 ‘3인의 기사(The Three Caballeros)’와 ‘라틴 아메리카의 밤(Saludos Amigos)’를 제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월트와 함께 디즈니 스튜디오의 테마파크를 만들었습니다.
릴리안은 월트가 죽은 후에도 플로리다주의 올랜도에서 디즈니 월드를 개설했고, *에프콧(EPCOT) 센터 개관식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재능있는 예술가와 애니메이터를 배출한 캘리포니아 예술 대학 설립에 자금을 지원하며 교육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에프콧(EPCOT) : 국제 문화와 기술적 현신을 주제로 1982년 1월에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에서 두 번째로 개장한 테마파크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은 많지 않지만 월트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반자였던 릴리안은 어쩌면 더 많은 것을 함께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릴리안의 존재 자체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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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그레잇
미키마우스가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진 러브아이콘으로서 디즈니만의 꿈과 사랑을 대변하는 것도, 또한 그 유산을 끝없이 이어가는 것도 탁월한 파트너십과 테크니션이며 아티스트이자 기획자였던 릴리안의 존재 덕분이겠죠. 릴리안이 만약 21세기의 여성이었다면, 더욱 화려하고 강력한 여성위인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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