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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영화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프랑스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상영된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을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특별한 스토리나 편집 없이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만 보여주는 50초의 짧은 기록물로 지금 우리가 쉽게 접하는 '극영화'와는 거리가 있죠. 그렇다면 '최초의 극영화'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잊혀진 여성들 서른두 번째 뉴스레터는 영화 최초의 여성 감독이자 자신의 스튜디오를 운영한 최초의 여성 알리스 기 블라쉐 (Alice Guy-Blaché)를 탐구합니다. 지금 바로 시작해볼게요.
앨리스 기-블라셰(Alice Guy-Blaché)는 프랑스와 미국 영화 산업의 개척자입니다. 그는 필름이 사건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또한 그는 크로노폰 시스템을 개발해 무성 영화에 사운드를 삽입해 총 1000여 편의 영화를 연출, 제작했습니다. 오늘날 다양한 무빙 이미지, 영화에서 다양한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기초 예술을 제시한 예술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처음부터 영화 산업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공로를 거의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알리스 기는 최소의 영화사 고몽 Léon Gaumont의 파리에서 비서로 일했습니다. 1895년 그는 영화사 사장인 레옹 고몽과 함께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의 영화 상영회에 참석하고 세계 최초 영화를 감상하였습니다. 그에 큰 영감을 얻은 알리스는 레옹에게 영화를 만들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죠. 영사기가 탄생한 지 1년 후인 1896년, 23세였던 알리스 기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해 51초짜리 최초의 극영화이자 판타지 영화 La Fée aux choux ("양배추 요정")을 제작합니다. 현실이나 다큐멘터리 장면을 촬영하여 만든 영화가 주였던 시대에, 그의 데뷔작은 영화 스토리텔링의 첫 사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알리스 기는 고몽 사의 제작 총괄 담당자로 제작, 각본, 감독, 캐스팅, 세트 디자인 등 모든 것을 수행하여 다양한 작품을 연출합니다.
그는 영화에 본격적으로 서사를 도입한 첫 번째 감독이며, 흑인 캐릭터를 최초로 등장시킨 감독이기도 합니다. 또한 흑백 필름에 색을 입히는 틴팅(tinting)이나 이중 인화 같은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전통적 젠더 구도에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한 중요한 작가였죠. 알리스는 20년 동안 프랑스와 미국에서 감독으로 눈부시게 활약했고, 이 후 뉴욕 근처에 자신의 영화 제작사 Solax를 설립하여 단편 영화 100여 편과 장편 영화 몇 편을 완성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 많은 영화가 여성을 조명합니다. 그의 1906년 영화 페미니즘의 결과(The Consequences of Feminism)는 성 역할이 반대인 세상을 상상합니다. 남자는 집에서 바느질하고 다림질하고 여자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담배를 자유롭게 피우는 장면을 연출하였죠. 하지만 알리스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무시당하고 잊혔으며, 작품을 빼앗기기까지 했습니다. 알리스는 영화 산업이 할리우드에 자리 잡는 모습을 제때 보지 못하고 이혼 후 두 자녀와 함께 프랑스로 귀화합니다.
알리스 기는 85세가 되어서야 레지옹 도뇌르 훈장(프랑스 최고 훈장)을 받았고 1968년 3월 24일에 숨을 거뒀습니다. 그는 사망 후에도 영화의 창시자로서 세계영화사에 기록되지 못했으며 이는 120년 동안 남성 감독의 이름으로 왜곡되기도 했죠. 2017년이 지나서야 영화제에서 여성 감독들이 소외되는 상황이 지적되면서 알리스의 이름을 딴 상이 여성 감독에게 주어지기 시작했고 2021년 예일 대학교는 그의 이름을 따서 Alice Cinema라는 새로운 최첨단 상영실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감독의 7%만이 여성이며, 그의 발자취를 따른 여성이 얼마나 적은지를 고려할 때 알리스 기와 그의 창조적 업적의 인정을 위한 투쟁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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