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해 보였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때

내 삶의 맥거핀은 무엇인가요?

2024.11.19 | 조회 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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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 어설프게라도 시작해본 사람들의 이야기들에서 나오는 불꽃같은 영감들을 전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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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레모해 드림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구독자님은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하시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영화관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상영 시간 내내 꼼짝 않고 집중해야 한다는 게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대신 저는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소리 내 웃으며 영화를 보는 게 더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쌀쌀해진 날씨에는 어쩐지 영화관이 그립습니다. 어두운 공간에서 커다란 스크린을 마주하고, 이야기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그 긴장감이 좋기도 합니다.

 

영화의 긴장감을 만드는 장치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Psycho)는 주인공이 거액의 돈다발을 훔쳐 달아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관객들은 돈다발이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돈다발의 존재는 흐릿해지고,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돈다발은 단지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죠. 

 

이런 장치를 ‘맥거핀(MacGuffin)’이라고 하는데요. 맥거핀은 처음엔 관객의 시선을 한곳으로 집중시키며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것에 집착하고, 관객도 그 행방에 온 신경을 쏟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맥거핀은 ‘그게 뭐였지?’ 싶게 흐릿해지곤 합니다.

 

오늘의 추천곡 : 맥거핀 - Highway

맥거핀 - highway

(노래를 감상하며 읽으시면 더 좋아요 🎵)

 

한 때는 중요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벽에 걸린 저건 뭔가요?" "아, 저거요? 맥거핀이라고 합니다." "맥거핀이라... 어디에 쓰나요?""스코틀랜드북부 산악지대에서사자를 잡는 데 쓴답니다.""스코틀랜드에는 사자가 없는데요?""아, 그럼 맥거핀은 아무것도 아닌 거군요."

맥거핀 사용에 대하여 앨프리드 히치콕이 들려준 예시

 

한때는 모든 걸 쏟아부을 만큼 중요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그런데,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을까요? 오늘은 제 삶에 스쳐 지나간 맥거핀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구독자님의 이야기와도 닮아 있을지 모르니까요.

 

나의 잊혀졌지만, 중요한 맥거핀들

 

재수 생활이 제게 그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재수를 결심했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책상에 앉아 풀리지 않는 문제들과 씨름하던 1년은 정말이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수능 점수는 첫 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1년 전 점수로도 충분히 갈 수 있었던 대학에 진학했죠.

시험이 끝난 뒤 머릿속은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 모든 노력이 헛수고였던 걸까?" "1년 동안의 고통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1년이 남긴 흔적을 하나씩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무의미한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만약 제가 재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조금 다른 모습일 겁니다. 같은 대학에 갔더라도, 늘 ‘한 번 더 도전하지 못한 나’라는 자책감과 함께 살았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1년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맥거핀이었습니다. 아무 소용없어 보였던 시간들이, 제 마음 한구석에 "끝까지 해봤다"는 자부심을 남겨줬습니다.

 

저는 지금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꿈은 영상 제작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를 들고 놀기를 좋아했고, 대학 전공도 영상으로 정했습니다. 당연히 졸업 후에는 영상 제작자로 살아갈 거라고 믿었죠.

 

그러나 삶은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렀습니다. 영상에 대한 열정은 점점 희미해졌고, 졸업 후에는 전혀 다른 길,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상 제작은 개발자의 제 길을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부트캠프에 제출할 자기소개 영상을 만들 때, 저는 제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인 영상으로 저에 대해 어필했고, 그렇게 붙었습니다. 영상 제작 기술 덕분에 제가 누군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죠.

 

저의 영상 제작자가 되겠다는 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꿈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영상은 제 인생의 맥거핀이었습니다. 그 자체로는 사라졌지만, 제 삶을 전개하게 해준 고마운 장치였죠.

 

은행잎이 떨어질 때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

 

이제 막바지로 달려가는 은행잎을 바라봅니다. 처음엔 푸르렀던 잎이 노랗게 변하다가 어느 순간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죠. 우리는 종종 낙엽을 보며 쓸쓸함을 느낍니다. 저렇게 떨어질 거라면, 애초에 나뭇잎을 피울 필요가 있었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나무는 매년 새 잎을 틔웁니다. 쏟아지는 아름다움을 위해,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중요한 순간처럼 보이던 일들이 나중엔 덧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분명히 우리를 변화시키고, 다음 계절을 준비할 힘을 주었습니다. 과거의 맥거핀들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전개합니다.

은행잎으로 만든 나비입니다 귀엽죵
은행잎으로 만든 나비입니다 귀엽죵

 

요즘 나의 맥거핀은 무엇인가요?

 

영화에는 맥거핀과는 반대로 복선이라는 우리가 잘 아는 장치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필요한 힌트를 미리 배치하는 기술이죠. 하지만 복선이 과하면 어떨까요? 모든 장면이 뻔히 예상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결말마저 예측 가능하다면, 그 영화는 그저 그런 영화가 되겠죠.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결국 복선에 불과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너무 단순하고 뻔했을 겁니다. 맥거핀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틀게 하고, 우리를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복선이 예측 가능한 삶을 만든다면, 맥거핀은 예측 불가능한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지금 당신이 매달리고 있는 일이 나중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당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꼭 필요한 장치임을 믿어주시길. 

 

아마레모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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