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구독자! 어제가 2025학년도 수학 능력 평가였지? 수험생분들께 결과와 상관없이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어. 내가 수능 봤을 땐 정말 추워서 롱패딩을 입었던 기억이 있어. 그런데 올해 날씨는 11월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더라고. 지구온난화가 확 체감되더라...
아무튼~ 지난주에 아무콘텐츠와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웠지? 수능도 끝났으니 오늘은 더 풍성한 콘텐츠 이야기를 준비해봤다구😎 지난 특별호(10월 25일자 발행)를 기억한다면 오늘 내용이 아주 반갑게 느껴질 거야. 혹시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도 이번 호를 읽다 보면 가고 싶은 마음이 샘솟을지도 모르겠어😋
이번에 준비한 전시 이야기는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아니카 이《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과 <2024 아트스펙트럼《드림 스크린》>이야.
앞서 말했듯이 특별호에선 해당 전시를 가기 전 과정을 담았다면, 이번 회차에선 그 후기를 공유하려 해! 일정 변동이 있어서 나는 사전 예매가 아니라 현장 예매로 다녀왔어. 두 가지 전시를 한 번에 관람하기 위해 나는 통합권을 예매했어. 참고로 두 전시는 각각 따로 예매도 가능해😉
평일 현장 예매는 사람이 적당히 있어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했어. 주말에는 비교적 관람객 밀도가 높아 원활한 관람이 어려울 수도 있어. 여유롭게 보고 싶다면 평일 혹은 오전 시간대 이용을 추천해!
아니카 이《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
먼저 관람을 한 전시는 M2관에서 열린 ‘아니카 이(Anicka Yi)’의 전시야. 이번 전시는 아니카 이의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으로, 지난 10년간의 작품들을 선보여. 과거 리움 상설전에서 작품을 봤을때 정말 기억에 남는 작가였거든. 그래서 이번 개인전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반가웠어.
우선 전시를 관람하기 전 아니카 이가 누구인지부터 살펴볼까? 아니카 이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야. 처음에 이름만 보고 막연하게 일본 분이신 줄 알았는데 반전이었어. 2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가 자랐고, 뉴욕에서 대학에 다니셨대. 1990년대에는 영국 런던으로 옮겨가 살면서 패션 스타일리스트와 카피라이터 일을 했어. 미술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30대가 되면서 예술가로서 활동하게 돼. 향수를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향수와 과학을 탐구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작업을 시작하게 되지.
아니카 이는 기술과 생물, 감각을 넘나들며 이를 연결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 예를 들면 박테리아, 향, 튀긴 꽃, 콤부차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부패하기 쉬운 재료를 활용하거나 개미, 흙 속 미생물처럼 살아있는 생물을 통해 삶과 죽음, 영속과 부패 등의 실존적인 주제를 담아내.
그렇게 예술과 과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아니카 이만의 작업을 이어온 결과, 2011년 마흔이 되던 해 첫 개인전을 열고, 2016년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주는 휴고보스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기도 했어. 현재는 그리고 현대미술계에서 주목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어 전세계의 러브콜을 받는 작가가 되었어. 정말 대단하지 않니?
그럼 이번 전시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 3가지를 소개해볼게! 전시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 점 유의해주길 바라.
- 1. <두 갈래 길을 한번에 걷기>(2023)
전시장 입구는 검은 천으로 막혀 있어. 천을 걷고 입장을 하면 위의 사진처럼 전시 소개가 간략히 적힌 공간이 나와. 근데 여기서 불쾌한 냄새가 풍겼어(개인적인 의견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향이 나는데, 맡아본 적 없는 비릿하고 쿰쿰한 향이었어. 처음엔 다른 외부에서 들어온 냄새인가 생각했지만, 곧 이것이 작품이란 걸 알게 되었어.
이 향 작업은 ‘냄새를 매개로 철학적인 질문을 탐구하는 것’으로 ‘빛이 향이 있을까’와 같은 일상적인 사고에서 시작되었어. 이러한 사고를 넘어서 인식의 상태로 접근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고 해. 조향사 ‘바나베 피용’과 협업하여 만들어진 이 독특한 향은 생물화된 기계, 고대의 수생 생물, 원시 환경에 대한 상상을 담았어.
향으로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계를 연상하게 만들지만, 실제 존재하는 공간은 현실 세계이기 때문에 작품 제목을 ‘두 갈래 길을 한 번에 걷기’로 정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나만의 해석도 더해가면서 전시를 즐기는 게 참 재밌는 것 같아.
- 2. <방산충(Radiolaria)> 연작
1층 메인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화려한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는 *방산충(Radiolaria) 연작이 전시되어 있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세포를 닮은 방산충 연작은 전시장 곳곳에 매달려있어. 하단엔 인공 우물을 만들어 마치 부유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켜.
*방산충(Radiolaria) : 바다에 사는 부유동물로 키틴질을 분비하고 외부는 규질의 골격으로 싸여 동그란 형·원반형·타원형을 이루며 모두 방사상의 모양을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섬세하게 짜인 광섬유 표면을 따라 빛의 파동이 깜박이면서 내부의 기계 장치도 여과없이 드러나. 이 작품은 ‘기계의 생물화’ 개념을 반영해 제작되었다고 해. 촉수가 동그랗게 말렸다 펴졌다를 반복하고 몸통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등 각기 다른 움직임으로 마치 살아있는 듯 보여. 그리고 물에 비춰 보이는 기계의 하단의 빛이 깜빡이는 것은 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해. 이런 모습들을 통해 유기체와 인공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형태를 만들지.
- 3.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 Each Branch of Coral Holds Up the Light of the Moon>(2024)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한 신작이야. 전시의 가장 마지막에 관람을 해서 앞선 10년의 작업을 아우르고 마무리하는 느낌이 강했어. 죽음 이후를 탐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공(公)>에 속하는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해. 작가의 사후에도 작업이 계속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는데, 아니카 이는 단순한 질문에 끊임없이 답을 찾으면서 작품을 전개하는 것 같아.
이 프로젝트의 중심엔 <공(公)> 소프트웨어가 자리 잡고 있어. 지난 10여년간 아니카 이 스튜디오가 만들어낸 작업물을 데이터로 사용한다고 해. 그리고 그 데이터를 시뮬레이션과 머신 러닝을 통해 살아있는 가상 생물로 재해석하여 보여준 작품이야. 과학, 기술, 예술의 융합이 이처럼 잘 나타나는 작품이라니... AI기술이 예술에 어떤 식으로 접목되는 지 그 사례를 직관적으로 보고 온 느낌이라 신기했어.
아니카 이의 작품을 무한하게 보여주는 몽환적인 그래픽도 이 작품의 신비로움에 한몫했어. 보편적인 표현으로 비유하자면 컴퓨터 화면보호기(스크린 세이버) 화면을 보는 느낌인데, 이제 엄청 그래픽이 뛰어나면서 유기체적인... 이라고 밖에 말로 표현 못하겠네😝 이 웅장함과 생경한 느낌은 직접 봐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이 밖에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으니 구독자이 꼭 가봤으면 좋겠어! 전시장 곳곳 작품을 위해 신경 쓴 부분들도 느껴졌거든.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창문에 필름을 붙여 조도를 조절한 덕분에 관람하는데 몰입할 수 있었어. 시각, 후각, 청각을 곤두세우면서 집중한 전시는 쉽게 볼 수 없으니 기간 내에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이번 전시는 리움미술관 ‘이진아’ 큐레이터와 UCCA 현대미술센터 ‘피터 일리’ 큐레이터가 공동으로 기획했다고 해. 서울 전시 종료 후 2025년 3월 베이징 UCCA에서 이어서 개최된다고 하니 중국 여행을 간다면 보러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첨부하면서 리뷰 마칠게!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
이어서 두 번째 블랙박스, 그라운드갤러리 관에서 열린 전시 <2024 아트스펙트럼《드림 스크린》>을 소개할게. 이 전시는 26명/팀의 국내 및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담은 대규모 전시야. 기존 ‘아트스펙트럼’은 국내 신진작가를 지원하는 전시였어. 하지만 급변하는 동시대 미술 현장의 흐름에 맞게 수상제를 폐지하고, 참여 작가의 범주를 아시아로 확장하면서 다양성을 확보했어.
이번 <드림 스크린>은 밀레니얼 이후 세대가 인터넷, 게임, 영화 등 ‘스크린’을 매개체로 한 경험에 익숙해지면서 물리적인 세계를 대하는 감각이 이전과 달라진 것에서 출발했어. 변화된 세대가 선형적인 성장 신화로부터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찾지 못할 때, 매체를 경유한 경험과 스크린 너머로 떠오르는 파편적인 잔상으로부터 삶의 조건을 탐색하고 개척해 나가는 경로를 살펴보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대.
말이 조금 복잡하고 어렵지? 밀레니얼 작가들이 허구적이지만 무의식을 보여주는 ‘꿈(드림)’과 직간접적인 경험을 중개하는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세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아.
이번 전시의 독특한 점은 스크린을 통해 접하는 광범위한 정보와 자극, 그리고 다중적인 서사를 통하여 구성 및 공유되는 공포를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거야. 그래서 ‘*윈체스터 하우스(Winchester House)’라는 ‘귀신 들린 집’을 모티프로 삼아 작품을 전개해. 외형은 집, 작품 공간의 생김새는 방처럼 생겼지만 집 안의 구조는 미로같아.
이런 구조 덕분에 관람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어. 이마저도 의도된 것이지만, 길치라면 관람하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윈체스터 하우스(Winchester House):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미국 산호세 소재의 윈체스터 하우스는 총기 사업으로 부를 일군 윈체스터 가의 부인이 총기로 인하여 사망한 이들의 혼이 자신을 찾아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복잡하고 독특한 구조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방 앞에는 액자 형식으로 작품 정보가 쓰여있었어. 그래서 <드림 스크린>은 스마트 가이드를 착용하지 않고 봐도 괜찮더라고! 오히려 영상 작품을 관람하는데 스마트 가이드가 방해됐어.
각 작품의 특성에 맞게 공간이 꾸며져 있던 것이 인상 깊었어. 위 사진처럼 영상 속 주 공간이 택시인지라 좌석이 자동차 시트로 되어 있기도 했어. 적재적소 타이밍에 배치된 설치 작품, VR기기 활용 등 26개나 되는 작품을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도록 노력한 점이 보이더라.
많은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를 뽑자면 <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 feat. 장롱>이야. 일단 위의 사진처럼 장롱 속 영상을 보기 위해선 헤드셋을 껴야 했는데, 끼자마자 너무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어👻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강렬한 장면들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았어. 이는 작가의 의도인데, 유머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B급 공포 영화의 문법을 차용했다고 해.
이 작품은 장롱 속 두 개의 스크린과, 그리고 옆 방에 하나의 스크린까지 총 3개의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어. 각각 한 인물이 자신의 신체를 파편화하여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장면을 눈, 대장, 혀의 시점으로 나눈 것이야.
이미지가 본래의 맥락으로부터 절단되어 짤방 혹은 밈으로 남는 요즘 인터넷 환경과 결을 나란히 하면서도, 디지털화에 가장 끈질기게 저항하는 감각인 촉각을 앞세웠다고 해.
스크린이 있는 장롱 옆에는 소품이 담긴 두 개의 장롱이 있어. 이 장롱들은 영상의 몰입감을 배로 키워주는 역할을 해. 쉽게 볼 법한 익숙한 장롱 속 비현실적 오브제의 존재가 작품이 표현하는 주제를 더 강조했다고 느꼈어.
이 밖에도 정말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이만 마칠게😁 아니카 이의 전시와 연달아 보느라 작품 양이 많은 게 조금 버겁기도 했지만, 다양한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었어. 미로 같은 독특한 구성에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있으니 테마파크가 따로 없더라고. 다만 영상 작품이라 집중하지 않으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 주의 바라.
수능도 끝났으니 고3 친구들은 한 번 여유롭게 전시 구경하는 거 어때? 이미 예전에 수능쳤던 어른들도 쌀쌀한 날씨에 걸맞게 전시 관람하는 거 추천해! 그럼 다음 시간에는 더욱 알찬 전시와 음악 소식 들고 찾아올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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