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오랜만에 4월 전시 콘텐츠로 돌아온 퍼니야 🙌 요즘 부쩍 따뜻해졌지? 봄나들이 장소가 고민된다면~ 이번 주말엔 전시 보러 가는건 어때? 오늘 소개할 전시는 올해 국내에서 열린다는 소식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야.

오늘의 전시를 이모지로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 💀🦈🩸💸 ] 이렇게 할 수 있어. 아마 데이미언 허스트를 조금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만 보고 바로 떠오르는 작품이 있을 거야! 굉장히 직관적인 작품이지만, 그 의미는 무엇일지 계속 곱씹어 보게 되는 매력을 가진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를 리뷰해볼게.
[ 유난히 삶과 죽음에 관심이 많았던 데이미언 허스트 ]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는 1965년생 영국 출신 작가야. 영국의 명문 예술대학 골드스미스 대학교 재학 당시 직접 기획한 그룹전 《프리즈(Freeze)》(1988)가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됐지. 이 전시는 허름한 상업 부두의 창고에서 열렸지만, 학생들이 기획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기업 후원을 받으면서 큰 화제가 되었어. 특히 광고 재벌이자 컬렉터로 유명한 ‘찰스 사치’도 이 전시에서 작품을 구매했다고 해.(참고로 이 당시 구입품은 허스트 작품이 아니었대)
이때 함께한 작가들은 이후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며 영국 현대미술을 이끄는 새로운 세대로 떠올랐지. 물론 지금은 모두 50~60대가 되었고, 더 이상 가난한 대학생이 아니라 각자 확고한 위치를 가진 성공한 작가들이 되었어.
허스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 2가지가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모두 만날 수 있어. 작품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작품 사진과 함께 차차 풀어볼게😉
두 작품 모두 ‘삶과 죽음’을 주제로 파격적이고 날 것의 모습을 보여주며 현대미술계에 큰 충격을 안겼어.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허스트의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지. 허스트는 어릴 때부터 인간의 삶과 죽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영안실에서 일해보기도 하면서 그 감각을 작품에 직관적으로 녹여냈대.
허스트를 이야기할 때 ‘상업성’도 빼놓을 수 없어. 2008년 소더비 경매에서 갤러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자신의 작품 200여 점을 출품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거든. 보통은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런 방식을 깨고 기존 미술 유통 시스템에 도전한 사례로 많이 언급돼. 여기에 더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콘셉트로 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확장해왔다는 점도 허스트를 더욱 독특한 작가로 만드는 요소지.
그래서 그의 작품이 선정적이고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하여 현대인의 무감각함을 일깨우는 작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 같아.
[ 전시관람 전 간략한 주의사항 ]
나는 토요일 오전 11시 타임으로 얼리버드 예매로 다녀왔어. 이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했던 <론 뮤익 전시>와 버금갈 정도로 큰 관심을 받는 전시라 사람이 많을 걸 각오하고 갔거든. 근데 그 각오도 무색할 정도로… 많더라고. 그래서 만약 보러 갈 예정이라면 무조건 ‘온라인 예매’를 하고 가는 걸 추천해. 현장 예매도 가능하긴 한데, 주말에는 조기 매진될 가능성도 있다는 거!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보고 싶다면 전시관 오픈 시간에 맞춰 가거나, 평일 혹은 식사시간 같은 애매한 타이밍을 노려서 가길 바라🥲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해당 전시는 지하 1층 3, 4, 5전시관에서 1~3부가 진행되고, 마지막 4부는 지상 1층에서 진행돼. 나는 1~3부까지 보고 정신 없음 + 점심시간 이슈로 황급히 나와버리는 바람에 4부를 못 봤더라고... 나와 같은 실수는 하지 말길 바라며, 마지막 4부에 있는 작가의 스튜디오를 구현한 공간까지 꼭 놓치지 말아줘🤣
본 콘텐츠에는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청에 주의해 주세요.
[ 천년 (A Thousand Years), 1990 ]

<천년 (A Thousand Years)>은 허스트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이자,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야. 유리 케이스 안에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어놓은 설치 작품으로, 잘린 소머리와 파리 유충, 그리고 살충기로 구성되어 있지. 네모난 상자 안에서 부화한 파리들이 썩어가는 소의 머리 쪽으로 이동하지만, 그 과정에서 위쪽의 살충기에 닿으면 그대로 죽게 돼.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환 구조를 보여주면서 죽음이란 허망하고도 무작위적인 자연의 섭리라는 점까지 함께 드러내고 있어.
전시 해설을 보며 흥미로웠던 것은, 파리가 부화하는 정육면체 구조물의 각 면 중앙에 원형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어 마치 모든 면이 1인 주사위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었어.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운명이 주사위 놀이처럼 우연에 맡겨진 것이고, 결국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사실로 귀결된다는 걸 암시한다는 해설을 들으니까 소름 돋더라고. 처음에는 왜 굳이 구멍을 하나씩만 뚫어놨을까 궁금했는데, 해석을 보고 나니까 이유가 명확하게 느껴졌어.
여태까지 수많은 전시를 봐왔지만 이만큼 충격을 받은 작품은 아직 없는 것 같아😱 이 작품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당시에도 사체와 살아있는 생명체인 파리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파격적이었다고 해. 전시가 진행될수록 파리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데, 전시가 끝날 때쯤에는 과연 얼마나 많아질지도 괜히 궁금해지더라고.
여담으로 소의 머리와 파리 유충은 전시를 할 때마다 새롭게 배치한대. 소의 머리 방향이나 흘러나오는 피의 위치 같은 디테일도 모두 가이드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 밀폐가 잘 되어 있어서 냄새는 크게 나지 않아. 그렇지만 아주 가까이 가면 부패하는 냄새가 미약하게 난다는 거...
[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데이미언 허스트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그 작품. 다들 작품명은 모르고 상어로 아는 그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야. 나 역시 고등학생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면서 데이미언 허스트라는 작가를 인식하게 됐어.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을 실물로 봐서 정말 신기하더라.
이 작품은 거대한 유리 수조 안에 실제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아놓은 작품이야. 생생한 상어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관람객을 덮칠 것처럼 느껴져. 처음 작품을 마주했을 땐 위협이나 공포 같은 감정을 떠올리게 되는데, 동시에 그 상어가 이미 죽어 있다는 사실이 묘한 괴리감을 만들어. 그래서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
사실 작품의 제목 자체가 메시지를 그대로 담고 있어. 인간은 죽음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고 공포나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실제로 죽음을 경험하거나 체감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결국 죽음이 닥치는 순간까지도 완전히 실감하지 못한다는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지. 이 작품은 ‘죽음’을 물리적으로 눈앞에 가져다 놓으면서 관람자로 하여금 직접 마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

영화 <죠스>나 <메가로돈>처럼, 미디어에서는 상어를 주로 공포와 포식자로 소비해왔잖아. 이 작품에서는 수조 안에서 죽어 있지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유지된 상태로 관찰 대상이 된다는 점이 기존 이미지와는 다르게 느껴져서 흥미로웠어.
비하인드로 이 작품은 찰스 사치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어. 또 1991년 사용했던 상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부패하게 되자, 2006년에 다른 상어로 교체했다고 해.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상어는 처음의 그 상어가 아니라 교체된 상어라는 거...
이 작품을 비롯해서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활용한 ‘자연사’ 시리즈가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논란도 여럿 존재해. 논란 작품 3점의 경우, 199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당시 작품이 아니고 재개조된 것도 아니었다고 해. 2017년에 새롭게 제작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구상이 1990년대라는 이유로 제작 연도를 1990년대로 표기해 판매한 점이 큰 논란이 되었어.
‘자연사’ 시리즈의 시작이 된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통해 큰 명성과 부를 얻었던 만큼, 이후 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준 부분은 아쉽게 느껴지더라. 이런 사례 때문에 최근에는 허스트에 대한 평가가 예전보다 다소 부정적으로 이어지는데 한 몫한 것 같아.
[ 신의 사랑을 위하여 (For the Love of God), 2007 ]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야. 작품명은 ‘Oh my god’과 비슷한 맥락으로, 작가가 어머니로부터 자주 듣던 말에서 유래했다고 해. 어떤 인간이… 살면서 다이아몬드로 두개골을 채울 생각을 했을까 싶잖아. 가장 기발하면서도 다소 충격적인 작품을 만들던 허스트에게, 어머니가 우려 섞인 말로 건넸던 그 표현을 그대로 작품 제목으로 가져온 거라고 해.
해당 작품 속 인간의 두개골은 백금으로 주조했고, 무려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어. 두개골의 치아는 실제 18세기 인간의 치아를 그대로 사용했다고 해. 진짜 파격적이지 않니?

‘해골’이라는 소재는 과거 서양 미술사에서 ‘모든 것은 결국 죽고 허무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바니타스(Vanitas) 사조에서 자주 등장했어. 보통 금화나 왕관 같은 것들과 함께 배치해서 삶의 덧없음을 표현하곤 했지. 그런데 허스트는 여기에 다이아몬드를 덮어버리면서 그 주제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것 같아. 단순히 죽음의 허무함을 보여주는 걸 넘어서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를 통해 현대 사회의 욕망과 가치, 그리고 죽음을 훨씬 더 복잡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느껴졌어.

살면서 이렇게 많은 다이아몬드를 한 번에 볼 수 있을까 싶었어. 어두운 실내에서 한없이 반짝이던 해골의 모습이 어딘가 역설적이고 생경하게 느껴져서 계속 머릿속에 남더라.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괴짜 같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어.
<신의 사랑을 위하여>와 대척점에 있는 작품도 있는데,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Fear of Death)>(2007)이야. 이 작품은 해골 위를 파리로 뒤덮은 형태로 같은 해골임에도 완전히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게 해. 사실 실제의 죽음은 이 작품에 더 가까운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해골에서는 고결함이나 순결함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다면,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강한 혐오감이 먼저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나는 이 두 작품을 보면서 인간은 죽음을 고결하고 순결한 이미지로 포장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 관람을 마치며… ]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개인전인 만큼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어. 분량상 소개하지 못했지만, 조각 작품들도 하나하나 보면서 감탄했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꼭 가보길 추천해😉
앞서 말한 17세기 바니타스가 성행했던 시절과 다르게, 현대 사람들은 단순한 그림이나 조각만으로는 큰 감흥을 느끼기 어려운 것 같아. 그래서 실제 사물이나 생명체를 활용해야 더 와닿는 시대가 된 건가 싶기도 했어. 그렇지만 동시에 동물권이나 인권처럼 민감한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텐데, 이 부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도 들더라고.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남는 전시였어.
한편으로는 데이미언 허스트가 여러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이 시대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도 들었어. 스타성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 같지만, 이마저도 점점 시대를 지나면서 2020년대의 감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평가도 존재하더라고. 구독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전시와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니까, 관심 있다면 국립현대미술관 SNS도 한 번 확인해보길 바랄게. 그럼, 다음 시간에는 더욱 알찬 전시 소식 들고 찾아올게~! 다음에 또 봐 안녕👋
- 온라인 예매 사이트 (네이버, 국립현대미술관 공홈)
- 오디오가이드 有 (하단 링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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