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ogue14. 그저 떠오르는대로,

오늘의 플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둘 중 와닿는 음악을 선택하시길..!

1.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 나의 삶의 목표는 하루를 성실히 사는 것과 더불어 혹 나의 기준에 있어 불성실한 삶의 장면들을 보였을지라도 나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보듬어주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4월의 시간과 5월의 시간 속에서 나는 드문드문 나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자책을 했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까.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우르르 쏟아지기도 했고, 그러다 보면 난 쉽게 우울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다만, 그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매일매일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명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큰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이전 직장에서 가깝게 지내는 이가 자신이 다니는 병원을 추천해 주는 터라 그곳을 예약해두었다. 내 차례가 오기까지 몇 달이 소요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던 참이기도 했던 터라, 예약해두었다. 

2. 누군가에게는 계속 도전을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나의 멋진 모습이 어느 순간 나에게는 지쳤다. 몸과 마음속에서 온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이 시기에는 손끝으로 모든 힘들이 소진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동기부여가 필요했는데, 쉽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날들이 지속되었다. 문제의 원인을 알고 싶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 알고 있었음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기, 늘 부지런하게 생활했던 나의 생활에 약간의 변화가 찾아오기도 했다. 늘 제때 처리한 일들을 처음으로 미루어보기도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는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도 어쩐지 나의 요란한 감정들이 퍽, 괜찮아지더라.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느꼈다.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빈틈을 마련해 주는 일도 필요하다고. 

 3. 이 시기 난 나에 대해 새롭게 안 사실이 있었다. 나는 나의 좋은 모습만을 수집해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러다 보니 나를 구성하는 부분 중 마음에 들지 않은 요소들이 등장할 때면 난 그것들을 꽤나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심지어 미워하기까지도 했다. 부족한 부분도 세심히 들여다봤어야 하는데, 나에겐 그것을 돌보는 마음이 조금 부족했다.

4. 여전히 나는 나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잘 모르겠다. 10대 20대를 비롯해 30대에 이르러서까지도 늘, 아득하고 분명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문득문득 마음 한 켠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난 어렴풋이 알고 있다. 겨우내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 

5. 평소에는 나의 생각들과 감정들을 결코 끄집어내는 법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가까운 이들에게는 나의 마음을 진실되게 전달해냈다. 그리고 그들과 나눈 덕분 대화 덕분에 나는 한층 더 성장해낼 수 있었다. 나 스스로 해결하는 습관도 중요하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연습도 부단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날들이었다. 

 6. RECTIFY(미드)와 The 8 Show(넷플릭스 드라마)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The 8 Show는 하루 날을 잡고 저녁시간 이후의 시간 속에서 8화의 이야기들을 연속으로 받아들였다면, RECTIFY는 하루에 한 편씩 소화해내는 느린 호흡의 방식으로 시즌 4까지 완결을 보았다. 두가지의 드라마 모두 나에게 의미하는 바가 컸지만, 개인적으로 RECTIFY가 담아낸 이야기가 참, 좋았다. 아마 지루함을 느끼는 이라면 이 드라마를 마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는데, 난 오히려 그 먹먹한 지루함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살면서 내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들과 어쩌면 내가 나의 삶을 살아내면서 결코 느껴보지 못할 감정들을 고루 마주 해낼 수 있어서 나에겐 그 어떤 드라마보다 의미 있는 드라마였다. 

7. 글을 쓰는 일은 늘 즐겁고 행복하다. 언제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시험에 임하고 있다. 글을 쓸 때만 느껴지는 그 특유의 해방감이 얼른 느끼고 싶을 뿐이다.

8. 늘, 다린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여름 초입에 듣는 다린의 음악은 공허해진 듯한 마음들을 채워주는 느낌이다. 항상 이런 음악을 들려줘서 고마울 뿐이다. 

9. 여름이 되면, 언제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에 담긴 문장들을 읽어내고싶어진다. 

/P.9 계절이 변하는 걸 절감할 때마다 나는 그 사람을 떠올렸다. 기어이 시멘트 틈으로 고개를 내민 민들레를 보았을 때, 후텁한 공기에서 물기가 맡아지거나, 인도에 떨어진 은행을 밟지 않기 위해 까치발로 걷다가, 창틀을 뒤흔드는 혹한의 바람 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문득문득 그 사람과 내가 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P.13 오래된 동네가 으레 그러하듯 집을 부수고 다시 올려도 나무들은 베는 법이 없어 동네 어디든 몸통 굵은 나무들이 흔했고, 꽃송이들도 숱하게 풍성하고 화려했다. 싱그러운 초록색에서 검은 초록으로 몸통을 바꾸고 매미 울음이 애가 타도록 그악스러워지면 여름의 복판이라는 걸 실감했다. 골목의 구석마다 미처 다 쓸어내지 못한 낙엽이 골목을 휩싸면 가을이 왔음을, 스산한 찬바람이 골목을 휩싸면 겨울인 줄 알았다. 당연한 계절의 변화를 같이 바라보고, 느끼고, 이야기해왔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 P.42 며칠째 읽고 있는 시집과 필사 노트, 흰 종이와 잘 깎은 연필 한 자루. 나는 차례대로 식탁에 가지런히 놓았다. 무엇이든 한 장을 채워야 잘 수 있다는 주문을 건 사람처럼 흰 종이를 노려봤지만 선뜻 연필을 쥘 수는 없었다. 영산홍이 붉은 물을 올 리고 있다고, 등이 굽은 아버지는 떨어지는 벚꽃 잎을 맞으며 일하러 갔다고, 달빛 하나 보이지 않는 깊은 밤에 식구들은 하염없이 잠이 들고, 아직 귀가하지 않은 식솔 하나를 떠올리며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고,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노란 민들레가 대견하게 꽃을 피우며 새벽을 부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P.171 필사 노트는 계속 늘어났다. 혼자 지내게 되었다고 곧바로 시가 써질 리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동안 온전히 나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밤새 언어에 대해서, 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므로 하루하루 허투로 보내지 않았다. 시집을 읽거나, 몽상을 하거나, 끊임없이 단어를 열거하거나, 심지어 잠을 자는 것 마저도 최선을 다했다.

오늘은 그래서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짙은 초록색으로 변한 이팝나무 이파리에 관해. 거짓말처럼 맑았던 그날 새벽하늘을 지나갔던 검은 새 한 마리에 대해서. 아무도 울지 않았던 그 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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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리운 사람의 그림자와 나의 눈물과 우리의 정류장과 모두의 무덤에 대해서. 서로의 체취로 속삭이던 노래와 지리멸렬한 계절에 속박되었던 오해와 피우지 못한 꽃과 기꺼운 약속과 작은 책상과 낡은 베갯잇과 차마 다하지 못한 희망과 나는 지금 여기 있다는 것에 대해서.

10. 전시를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져만간다.  

11. 쉽지 않았던 4월과 5월의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롭게 극복해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과 그 동시에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를 나 자신에게 전해주고 싶다. 고생 많았다.

이 글을 마주하는 모든 이들이 마음의 평안을 찾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