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실수
사는 동안 내게 같은 일이 반복됐다. 전시를 끝내고 이것저것 시도하며, 활발히 활동하는 내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다. 내 모자란 모습을 곱씹었다. 내 특기는 반추(反芻)하기.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해 곱씹는 습관은 일이 끝나거나 관계가 종료될 때 나타난다. 전시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되새겼다. 2026년 1월부터 5월 초까지 직사각형 방 안, 이불에 누워 천장을 보고 가만히 있었다. 이룬 꿈보다 부족한 내 실력을 들췄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작아졌다. 멈춰 있는 시간이 길수록 마음은 더 불안했다. 초조하고, 수치스럽고, 무능한 감정이 내 안에서 오갔다. 작은 눈송이가 모여 거대한 눈덩어리가 되는 두려움을 맛보았다.

“살다 보면 반복해서 나타나는 문제가 있거든. (...) 그 문제가 바로 마르가가 보내는 신호일세. (68)” - 《빤냐 이야기》, 한재우, 클레이하우스, 2026
지난해 1월부터 7월, 반추의 출발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관찰해 알고 있었다. 나를 살피며 지난 경험에서 얻었다. 그해 4월, 내 안에 있던 말을 친구에게 처음으로 꺼냈다. “그동안 나 우울했어.” 과거에도 얼핏 알았지만, 외면하고 회피한 감정. 그 감정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숨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다시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 지금의 나를 바라봤다. 외로운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외로움(Loneliness)은 내 핵심 감정이고 나는 작년과 같은 일이 또 생길까봐 겁이 났다. 다시 날 마주할 생각에 움츠렸다. ‘전시는 실패했어. 거봐, 그 이후에 너는 아무것도 안하잖아. 말 뿐이야. 네가 그럴 줄 알았어. 네 경력은 애매해. 너 혼자는 뭐든 못할걸. 네가 잘해야 해. 넌 절대 안 바껴. 넌 고집이 너무 쎄.’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할수록 나는 고립을 선택했다. 자발적 고립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선택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누구도 무어라 탓할 수 없었다. 내 외로움이 고립을 만나면 스스로를 자책한다.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그 무렵에 홍성향 코치의 셀프북코칭 6월 《빤냐 이야기》를 신청했다. 21일동안 책 속 문장으로 내 상황을 직면했다. 내 외로움과 맞닿는게 무엇인지에 따라서 시선이 달라졌다.


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스스로를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나라는 사람을 아예 모르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읽힌 내 모습도 궁금했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 유연님의 쓰는 보금자리 Ep1 모집글이 떴다. 부제는 비교를 멈추는 연습. 고모부 장례식 이후에 한없이 작아진 내 모습을 꺼낼 기회였다.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한 달동안 유연님 안내로 글을 썼다. 4주간 쌓은 글 덕분에 새로운 감정과 생각을 일깨웠다. 고립과 고독은 한 끗 차이였다. 외로운 감정을 내 강점으로 쓰는 방법을 발견했다. 나는 지금 나와 연결되어 있는가. 내 외로움이 고독과 함께하면 생기를 되찾는다. 한 발자국 나아간다. ‘수년간 간직한 꿈을 실현했고, 끝냈어. 근사한 실수였어. 해봐서 후회도 하는 거야. 아쉬운거지. 증명하지 않아도 돼.’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내 모닝페이지에 가장 많이 그린 그림. 나(I)와 자신(myself)을 맞잡은 두 손. ‘나 널 돌보기 시작했어.’라는 다짐과도 같다. 나를 탐험할 수 있는 시간과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널려 있는 재료에 이제는 ‘근사한 실수’를 더한다. “나도 실패할 수 있다.”라고 새기며, 여전히 진행 중인 실험. 나를 마주하는 일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나를 아는 감각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다운 선택을 하게 된다.

[홍성향 코치의 셀프북코칭 6월 《빤냐 이야기 》에 쓴 기록들]
[유연의 쓰는 보금자리 Ep1. 비교를 멈추는 연습에 쓴 기록]
영감 수집
[뉴스레터 4호 영감 수집]
- 뮤지컬 《쇼맨 -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의 넘버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rep.’
©국립정동극장, ASMR로 듣는 인생은 내 키만큼 rep. #윤나무 #신성민 #강기둥
- 뮤지컬《비하인드 더 문》의 넘버 ‘근사한 실수’ (1:02~)
©컴퍼니 연작, [2025 비하인드 더 문] 시츠프로브 하이라이트
* 이 곡이 좋았다면, 유튜브 ‘더뮤지컬’ 채널 영상을 추천해요. 저작권 문제로 여기에 담지 못했어요.〈비하인드 더 문〉 2025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1 (4k) - 고상호, 정문성 | 예스24, 10:50~
- tvN 《눈이 부시게》9회
©JTBC Drama, [오열] “너도 널 애틋해했으면..” 혜자(Kim Hye Ja)의 위로에 무너지는 남주혁(Nam Joo Hyuk) 눈이 부시게(Dazzling) 9회
혜자: 허무하지? 사는 게 별게 아닌가 봐. 칠십 해를 넘게 살았는데 이거야. 칠십 해를 넘게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을 텐데, 결국 사진으로만 남았어. 난 말이야. 내가 애틋해. 남들은 다늙은 몸뚱아리 뭐, 더 기대할 것도 후회도 의미 없는 인생이 뭐가 안쓰럽냐 하겠지마는 난 내가 안쓰러워 미치겠어. 너도 네가,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다.
-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구본형, 김영사, 2005
내 안에는 치졸하고 비뚤어지고 우유부단한 못된 면들이 수없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힘을 이끌어 낸다. 나는 그것들을 바꿀 수 있다. 그것들은 힘의 원천이 된다. 내가 휘어잡을 수 있을 때, 그것들은 좋은 재료가 된다. - 리처드 스턴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2009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 (26)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27)
- 《어쩌다 디자인》 장영진, 안그라픽스, 2017
경험을 통해 보면 자신의 색깔을 더 분명하게 찾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다. 나와 ‘비슷한’ 사람은 많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결국 어디에도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때문에 ‘나’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하는 것은 차별성을 찾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기존의 것에 나의 색깔과 개성을 입힘으로써 ‘친숙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적당한 새로움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64)
- 《문화기획이라는 일》 유경숙, 큐리어스, 2024
그 도전의 시작으로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 ‘나의 객관화’와 ‘전문성의 객관화’가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화기획자로서의 객관적 능력치’랄까? 스스로 알고 있던 내가 아니라,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제대로,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과정이다. 자기 성향이나 장단점 등이 외부에서는 스스로 생각하던 것과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뭔가를 시도하는 단계에서 한 번쯤 냉철하게 외부적 시각으로 재진단하는 게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이 실제 나의 모습과 다를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그게 진리다. 그것이 그동안 내가 그들에게 보여 준 나의 모습이니까. (168)
덧.
지난 뉴스레터놀틈 3호 발행 예약을 마친 7월 7일, 인스타그램에서 “전라도 아그들” 모집글을 봤다. ‘코칭을 어떤 일상 언어로 표현해야 할까, 어떤 말이 가볍고 친근하게 들릴까’를 고민하던 때였다. 디자이너 박시영이 기획한 워크샵 호남에 지원한 신청서를 주변에 공유하고, ‘추천의 글’을 받았다. 지원신청서는 “내 시간과 눈빛을 파는 공간, 일상에서 문화를 경험하는 일로 먹고살겠다”로 시작해서 “나는 지역과 문화를 잇는 기획인이 될 것이다.”로 이어졌다. 주변에서 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친구들에게 하나둘 ‘추천의 글’ 답장을 받고는 뭉클해졌다.

놀기 위해 태어났다. 여수에 살고 있지만, 여기가 내가 계속 살 곳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나는 발과 몸을 땅에 딛고 살 것이다. 일상에서 문화를 경험하는 ‘놀틈’에 있다. 적게 일하고 시간과 자유를 버는 자유인, 기획인이다.
차화진
발행 작업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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