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하는 책 중에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2017)>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은 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추천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있다. <쓰기의 말들>은 단단하지만 따뜻한 시각을 가진 은유 작가가 고전 및 다른 작가들의 글에서 선정한 104개의 문장에 대해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자신의 통찰을 담아낸 책이다. 그 글이 너무 좋아서 무언가를 써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
쓰는 사람. 매일 무언가를 쓰지만, 스스로 쓰는 사람인가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여기서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통찰에 대하여, 감각과 감상에 대한 글쓰기의 쓰기이다. 너무 많은 정보와 메세지가 가득한 세상에서 자기 글쓰기는 자신의 감각으로 길러낸 자기의 목소리를 남기는 작업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소중하고, 소중하다. 기록으로서의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에세이들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뜨뜻해지는 것은 그런 실천과 실행에 공감하게 되어서다.
<쓰기의 말들>이 선택한 문장 중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글쓰기의 실천은 기본적으로 '망설임들'로 꾸며집니다.
롤랑바르트
책에는 이 문장과 함께, 의미를 건져내기 위해서는 무수한 망설임의 순간들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통찰이 곁들여져 있다. 망설임의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지, 그 망설임들 가운데, 무의미의 반복에서 의미를 길어내고 무모의 시간을 버티며 일상의 근력을 기르자고 조언한다. 비단 글쓰기의 팁을 넘어 삶의 태도에 관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글쓰기라는 기록활동은 확실히 삶에 그런 망설임의 시간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은유 작가를 따라, 기록으로서의 글쓰기를 말하는 책들에서 골라 본 발췌문을 공유해본다.
기록을 왜 하는가
효용성이나 효과성 보다는 기록의 결과물 자체가 가장 쓸모 있다
기록하는 시간은 나를 객관화해주고
전보다 성실하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기록하는 삶은 생각하는 삶으로 이어지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2020, <기록의 쓸모>, 이승희, 23쪽
이승희 작가의 <기록의 쓸모>에서도 기록하는 시간을 취하는 동안에, 그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 행동으로 부터 도출된 글쓰기 텍스트라는 결과물을 넘어서, 그 과정이 내 안에 스며든 그 시간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역시 화가 날 때면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일기장을 꺼내 들어 글을 써 내려가곤 했다. 그렇게 마구 일기를 쓰다 보면 어느새 화가 가라앉고, 실은 나의 부족한 부분, 잘못한 점, 실수 같은 것들이 떠오르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일기의 좋은 점은 그 여과 없이 쏟아 놓은 말들을 주어 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래서 반대로 한밤의 sns는 무서운 것이다. 기록하는 시간이 나를 객관화해준다는 것은 참말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루의 끝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정작 따로 있는데
다른데 신경쓰느라 불행해질 때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2021,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8쪽
김신지 작가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에서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그날의 사소한 기쁨들을, 그냥 흘려보내면 사라질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억으로 전환하는 작업으로써의 글쓰기를 말한다. 내 삶의 중요한 순간으로 지정하고 기억에 고정하는 작업의 글쓰기. 작가에게 글쓰기 자체는 이미 선별을 포함하는 행위이다. 쓰기로 작정한 무엇은 이미 귀하다. 책장 정리를 하다가 학부 시절 썼던 일기를 발견한 적이 있다. 화들짝 놀란 것은 당시의 나 자신이 지금의 나와 '너무 달라서' 또는 '너무도 여전해서'가 모두 담겼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 당시에 내가 무엇을 중요시 했는지가 여질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도 그러했다. 일기를 다시 읽으며 나라는 사람이 쌓여온 시간들을, 계속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다시 또 돌아보는 시간이 자동으로 이어졌다. 일상의 기록들은 확실히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힘이 있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부여한, 내면의 동기로 부터 살아가게 하는 힘을 길러준다.
조금 결이 다르긴 한데, 최근 소마이신지 감독의 1993년 작 <이사>의 리마스터링한 필름을 극장에서 보았다. 영상 안에서 주인공 6학년 소녀 렌은 먹고, 웃고, 뛰고, 싸우고 - 이상하게 울진 않았던것 같다 - 하는 우리의 어린 시절과 또 우리 모두의 일상과 별다르지 않지만, 그것이 스크린에서 흐를 때 그 평범한 일상이 너무도 소중하고 특별해서 왜 영화가 우리의 일상을, 삶을 담아야만 하는 지를 알 것 같았다. 영화는 그 시절의 우리가 공유하던 일상들을 소중하게 포장해둔 한편의 일기장 같았다. 영화로 쓰는 일기라니.
답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이유로 글쓰기 학습에는 규칙보다는 사례가 필요하다.
2019, <문장의 일>, 스탠리 피시
이 문장은 약간의 찔림을 준다. 글쓰기는 배우기보다 즉시 쓸 것. 쓰고 쓰면서, 자신의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던진다. 일기를 몇 년씩 써 온 사람들. 육아 일기를 출간한 멋진 여성들. 책이 된 영수증의 흔적들.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세상에 내어 놓은 물성을 가진 모든 글쓰기들이 너무 멋지다. 쓰지 못하면 읽기라도 하자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여 본다. 그 모든 글들이 삶의 영감이 된다.
오후 3시 모두의 마음에 일기의 불씨가 피어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사람이 되기를 또 또 다짐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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