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6월 서울기록원 <제3회 소장자료 정리와 기술 사례발표회>를 발제자로서 참가하고 "아키비스트의 전문성, 책임, 동료와의 연대를 생각하다"라는 글을 발행한 바 있다. 서울기록원이 마련한 해당 행사는 국내에서 시청각 기록관리와 관련한 기관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각 기관이 직면한 이슈를 공유하고 그 방안을 논의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번에는 비슷한 성격의 국제 행사에 다녀와 같은 생각을 이어가고자 한다. 지난 10월 15-18일 국제텔레비전아카이브연맹(FIAT/IFTA) 2024년 월드컨퍼런스가 열렸다. 세계 여러 나라의 텔레비전 방송사, 공공영상아카이브, 미디어테크, 시네마테크 등 전 세계 시청각 아키비스트들이 매년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로, 미디어 아카이브 관련 행사로서는 큰 행사다.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 이 행사를 다녀왔는데, 몇 가지 기록과사회 필진들과 함께 나눌 내용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국제텔레비전아카이브연맹(FIAT/IFTA)와 월드컨퍼런스는?
먼저 국제텔레비전아카이브연맹(FIAT/IFTA)에 대해서 알아보자. 국제텔레비전아카이브연맹(FIAT/IFTA)은 방송 및 시청각 아카이브 관리와 보존을 전문으로 하는 전 세계 전문가와 기관을 위한 비영리 국제 조직이다. 1977년에 설립된 FIAT/IFTA는 방송 아카이브의 보존, 디지털화, 접근성 향상, 윤리적 문제 해결 등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며, 전 세계 방송사 및 아카이브 기관 간의 협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FIAT/IFTA는 방송사, 국립 아카이브, 대학, 연구기관, 민간 기업 등 다양한 조직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으며, 이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회원들은 각종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기술적·윤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주요 행사로는 정기/비정기 연구포럼, 연례 월드컨퍼런스, FIAT/IFTA어워드(시상식) 등이 있다. 연구포럼에서는 분기별 혹은 월별 미디어 아카이브 분야에서 시의성 있는 최신 기술, 연구 동향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개최된 연구포럼 중 영상녹화가 되었던 포럼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월드 컨퍼런스는 매년 10월 개최되는 FIAT/IFTA의 대표 행사로, 전 세계 방송 및 아카이브 전문가들이 참여해 다양한 주제를 논의한다. FIAT/IFTA 어워드는 미디어 아카이브 분야 혁신적이고 뛰어 프로젝트를 선정해 시상하는 자리이다. 올해도 그랬지만 대체로 월드컨퍼런스와 함께 진행한다. FIAT/IFTA어워드에서는 미디어 관리(Media Management) 부문, 미디어 보존(Media Preservation) 부문, 콘텐츠 가치 개방(Unlocking the value and potential of archives) 부문, 콘텐츠 제작(Archive production) 부문 등 4개 부문에 걸쳐 우수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시상한다. 아카이브 관련 할일이 많은 국내 사정을 생각해보면 노미네이트된 프로젝트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국제텔레비전아카이브연맹(FIAT/IFTA) 2024 월드컨퍼런스
올해 월드컨퍼런스는 루마니아공영방송(TVR)의 주관으로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개최되었다. 전 세계 방송 아카이브 전문가들이 모여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올해에도 미디어 보존, 윤리적 고려사항, 기술 혁신 등 다양한 주제가 논의되었으며, 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발표, 워크숍, 토론 세션 등을 통해 지식을 교환한 바 있다. 즉, FIAT/IFTA 월드 컨퍼런스는 미디어 아카이브 분야의 발전과 협력을 촉진하는 중요한 행사로, 매년 전 세계의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네트워킹과 정보 교환의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 컨퍼런스의 주제는 "Don't believe me, just watch! (날 믿지마, 그냥 봐)"이다. 가짜뉴스나 왜곡된 이미지를 포함해 방대한 분량의 사진, 영상 등이 양산되는 미디어 환경을 잘 반영한 테마이다. 지난해에 이어 인공지능(AI) 등과 같은 신기술을 활용하여 미디어아카이브 관리, 활용을 어떻게 지혜롭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여러 세션, 워크숍, 토론회 등이 마련되었다.
이 행사 외에도 국제필름아카이브연맹(FIAF), 국제기록관협의회(ICA) 등 기록관리 분야 국제적 규모의 행사가 많지만, 대부분 해당 기구 회원기관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참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반면 FIAT/IFTA 월드컨퍼런스는 미디어 혹은 시청각 기록관리 종사자나 학생, 연구자 누구나 참가 등록을 하고 참가할 수 있으며, 기관을 대표해서 참가하더라도 참가자 각자의 관심사와 네트워킹 역량에 따라 월드컨퍼런스에 참가할 수 있다. 올해는 전세계 미디어 아카이브 현업 종사자, 연구자, 학생 등 245명이 사전 참가신청을 하였고, 현장 등록까지 포함하여 약 300여 명의 회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을 대표해서 발제자로 참가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필자는 이 행사 발제자로 참가했다. FIAT/IFAT에는 아직 한국 회원기관으로 등록된 기관 혹은 개인이 없고, 월드컨퍼런스에 참가한 한국 참가자도 없었기에 어쩌다보니 한국을 대표한 발표가 된 것이다. 올해 필자의 발표주제는 "한국영상자료원의 OTT 콘텐츠 공공아카이브 구축 필요성 연구-이해관계자 인터뷰를 바탕으로"이다. 지난 2023년 한국영상자료원의 연구에 참여한 "한국영상자료원 OTT콘텐츠 수집 연구"를 기초로 한 발표이다. 지난 2023년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OTT콘텐츠는 플랫폼사업자에 의해 공개 전 자율등급분류심사 대상이 되었다. 현재의 국내 영화 의무제출제도는 극장 상영 영화만을 대상으로 한 제도인데, 극장 영화는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OTT콘텐츠 자율등급분류심사가 도입되면서 국내 영화인들의 많은 작품이 국내 영화아카이브 수집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즉, 최근 OTT 산업이 발전하고 있지만, 법적 납본 체계의 적용을 받지 않는 OTT 콘텐츠는 보존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가적 수집 및 관리의 공백 속에 놓여 있는 OTT 콘텐츠를 수집하고 아카이빙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할 필요성을 논의하고자 하였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2023년 연구를 통해 OTT 콘텐츠 제작자와 플랫폼의 콘텐츠 보관 현황을 파악하고, 현장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집하기 위한 심층인터뷰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필자가 참여한 이 조사를 토대로 이번 행사 발표자료를 준비하게 되었다. 각국이 이 고민을 다 하고 있다보니까 예상 외로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발표 직후가 점심시간이었는데, 다들 점심시간도 뒤로 하고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함께 나누는 미디어아카이브 지식 노하우
주지한 바와 같이 FIAT/IFTA 월드컨퍼런스는 미디어 아카이브의 보존, 관리, 디지털화, 접근성 향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업계 최신 동향과 기술을 논의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필자는 특히 국내에 여러 방송사 등에 방치되고 있는 아날로그 매체 디지털화 사업 필요성을 고려하여 매체 디지털화, 메타데이터 관리 등과 관련한 발표 및 토론에 특히 귀 기울였다.
첫날은 여러 주제의 워크숍을 진행하는데, 이 중 "미디어 아카이브 콘텐츠의 진본성 보존(Preserving the authenticity of media archive content)"에 관한 흥미로운 토론에 참석했다.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진본성 보존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패널 발제도 생각할 지점이 많았다. "진본성(authenticity)"의 기준과 지표가 어느 기관에서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 이제는 어느 정도 해당 분야에서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라는 점에 대해 논의했다. 이와 관련해서 미디어 아카이브 관리에서 Authenticity 를 과연 국문 번역으로 "진본성"으로 하는 것이 적합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스스로 해보았다.
마지막 클로징 세션을 앞두고 FIAT 의 여러 중요한 사업 중 하나인 아카이브 보존복원 지원사업 Save your Archive 이번 프로젝트 소개가 있었다.전세계 폐기, 멸실, 훼손, 파괴 위기에 있는 영상자료를 말 그대로 구하는(Safeguarding) 데 재원과 기술, 전문가 등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 2012년 시작되었다. 올해 선정된 사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위기 놓인 우크라이나 공영방송 Suspilne Ukraine 아카이브&미디어테크 구축 프로젝트이다. 발표에 따르면, 영상자료 그 자체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출할 증거영상이기도 하고 우크라이나 자국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억을 담은 이 자료를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 아카이브는, 특히 영상아카이브는 여러 요인으로 없어질 위기에 놓여있다. 정치적 압력, 경제적 효율성, 기술적 노후화, 관계자들의 무관심 등등. 여러 가지를 많이 생각해볼 수 있지만 전쟁으로 인한 폐기 위기에 놓인 우크라이나 방송자료 얘기를 들으니 이에 노력하는 모든 분들의 활동이 존경스러웠다. 이 사업은 FIAT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방송사와 아카이브 기관들이 함께 참여하는 사업이다.
아키비스트의 전문성, 책임, 동료와의 연대를 "다시" 생각하다
두 번째로 참가한 이번 행사에서 해외 방송사, 공공 영상아카이브 기관에서 일하는 여러 동료를 만나며 어눌한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부담, 그리고 새로운 공부를 머리에 주워 담아야 하는 부담이 상당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참 따뜻했다. 다른 나라 어딘가에서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점에 일단 놀랐고, 또 그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있다는 점에도 또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지난해에 만난 몇몇 얼굴을 기억하는 동료들은 1일차에 올해 행사장에서 필자를 만났을 때 정말 반갑게 맞아주었다. 물론 그 마음은 필자도 비슷했다. 정식으로 마련된 워크숍이나 발표 및 토론 세션 외에도 점심시간이나 오프닝 칵테일, 저녁 회식 등의 자리에서 일하는 기관이나 분야, 나라의 미디어 아카이브 사정에 대한 비공식적 토론과 수다가 이어진다. 대부분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자기 일을 즐기며, 또 전 세계 동료들과 연대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고 참 든든했다. 워크숍이든 세미나든 토론회든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적절한 답변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자리에서 그게 어려우면 명함을 건네며 더 궁금한 것 있으면 나중에 연락달라고 말한다. 여러 사정을 둘러대고 많은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국내 상황과 비교했을 때, 참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특히 올해 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한 스웨덴 아키비스트 이발 리스 그린 (Eva-Lis Green) 이미 은퇴한 아키비스트인데도 많은 세션에 참가해 끊임없는 질문과 논의를 이어갔다. 시상식장에서 만난 이발 리스와 나눈 여러 말 중에 이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I'm retired. But I'm still Curious.(전 은퇴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알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이번 행사 마지막 폐회식에서 내년도 월드컨퍼런스가 열리는 도시를 발표했다. 2025년도 FIAT/IFTA 월드컨퍼런스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다. 올해 이탈리아의 공공 영화아카이브 루체(Luce) 100주년을 기념하여 내년에는 이를 기념하는 FIAT/IFTA 월드컨퍼런스를 주관하게 되었다. 이번 행사에서 만난 많은 동료들과 내년에 로마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내년에는 어떤 국내의 이슈를 들고 해외의 동료들을 만날까. 한국에 돌아오며 그런 생각을 했다.
국제텔레비전아카이브연맹 (FIAT/IFTA) 2024 월드컨퍼런스의 사진과 발표자료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에서 주관하는 "집단지성 기록학 연구모임" 15분 스피치에서 2024년 12월 한 달 간 이번 행사 참관기를 매주 금요일 저녁 9시 반 공유한다. 온라인 세미나 참석을 위한 줌 링크 문의는 infoarchives@hufs.ac.kr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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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여행자
정성스런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게 문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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