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기록물관리기관(이하 지방기록원) 설립이 의무화되고도 꼬박 십 년이 넘게 흘렀음에도 단 하나의 지방기록원도 설립되지 못했던 시절, 지방기록관리에서의 여러 문제나 어려움의 원인을 ‘지방기록원의 부재’로 귀결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 고난과 역경을 딛고... “왕자와 공주가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 끝~~~~”
왕자와 공주가 결혼만 하면 급하게 마무리되는 동화 속 해피엔딩처럼 마치 지방기록원이 설립만 되면 그 간의 어려움과 문제점들이 말끔히 해소될 것이라는 환상(?)이 존재했고, 지금도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지방기록원 설립이 지방기록관리의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지방기록원의 설립과 동시에 국가기록원이나 다른 문화기관과 같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내가 근무한 지방기록원이 문을 여는 시점에 우리 기록원에는 기록, 경험, 기준, 전문가, 서비스, 이용자가 모두 “없는” 상태였다. 그 시간을 겪어 온, 먼저 매 맞아본 자의 썰을 의식의 흐름대로 풀어보겠다.
1. '기록원'은 있는데 '기록물'이 없다.
이미 채워진 상태의 국가기록원이나 채우고 시작하는 신규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과는 달리 ‘개원’을 목표로 숨 가쁘게 달려온 기록원이 문을 열었을 당시, 시범 이관으로 채워놓은 소량의 기록물 외에는 거의 텅텅 비어있는 상태였다. 이용자가 찾아와도 볼 수 있는 기록이 없었고, 소장량이 얼마냐고 묻는 질문에는 왠지 머쓱하게 답변해야 할 만한 수치였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관해야 할 보존기록물로 포화상태인 기록관이 다수 있었기에 얼른 기록물을 이관해 기록원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2. '기록물'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
이관할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 없어 십 년이 넘는 기간동안 적체되어 있던 기록관의 백만 권이 넘는 기록물들. 얼른 기록원으로 이관해서 기록관의 보존공간 포화 문제도 해결하고 기록원도 규모를 갖추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기록물 이관이라는 것이 물리적 보존공간만 기록관에서 기록원으로 이동시키는 행위가 아니므로 이관을 위한 최소한의 과정이 존재한다. 이관대상 기록물의 확인, 이관목록 작성, 물리적 정리, 기록물 실물 인수‧인계, 기록물 인계 완료 후 기록관 보유 목록 및 문서보존실 정비 등등... ‘지방기록원으로 기록물 이관’이라는 업무는 그간 지방기록원의 부재로 기록관이 행해오지 않던 업무로 이 모든 업무 과정이 기존 업무에 ‘추가’가 되는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2007년 시도의 지방기록원 설립이 의무화된 이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기록물을 이관받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2007년 이후부터 전문요원을 배치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당시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기록연구사들의 ‘영구기록물관리기관 이관’에 대한 업무 경험치는 ‘0’인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기록관이 1인 기록관이며 이관에 대한 경험도 없는 상태로 적체된 기록물을 대량으로 처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3. '기록물'은 있는데 '기록물'이 없다.
법적 이관 대상인 보존기간 30년 이상이자 보존기간 기산일로부터 10년이 경과한 기록물을 모두, 일시에 기록원으로 이관하는 것은 현 상황으로서는 어려워 보인다. 첫째는 적체된 법적 이관 대상 기록물 규모에 기록원 보존 수용능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며(예산 상의 한계로 지방기록원 설립 초기에 충분한 보존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는 앞서 이야기했던 인력 등의 문제로 기록관, 기록원의 처리능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결국 이관대상 중 ‘선별’을 통해 이관을 실시하여야 하는데 이때 우리는 비로소 원초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 지방기록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왜 그제야 지방기록원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했느냐고 물으면 사실 할 말이 없다. 변명을 하자면 우리나라 기록관리법률 체계에서는 법적 이관대상 기록물을 모두 법대로 이관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지 ‘선별’에 대한 여지가 거의 없기에 그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법적 이관대상) 기록물이 기록원으로 올 수 없어 어떤 기록물이 기록원에 모이고, 남겨져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 결국은 다가오고 말았다. 선별에 대한 기준도, 합의도 없이 기록물은 있지만(많지만), 있어야 할 기록물이 없는(모르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완결성 없이 듬성듬성 이관되어, 결락의 보완을 꿈꿀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결락 그 자체 상태인 기록물(맥락을 알 수 없는 나홀로 기록물), 표지만 있는 기록물, 제목 자체가 ‘잡철’인 기록물 등등... 지방기록원이 지방기록관리의 구원자가 아닌 기록물의 무덤이 되는 것은 아닐까?
4. 썰을 마치며
그래서 답을 찾았냐하면 아직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 모두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더디지만 많은 기관에서 지방기록원 건립을 위한 노력을 계속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방기록원 건립이 지방기록관리의 ‘해피엔딩’이 아닌 ‘해피스타팅’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의 시야를 건물(인프라)로서의 ‘지방기록원’ 뿐 만이 아닌 ‘지방기록관리’ 전반으로 넓힐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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