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기록학계 안팎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한 행사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해당 행사는 서울기록원에서 그간 여러 차례 기획한 ‘소장자료 정리와 기술 사례발표회’로, 이번에는 시청각기록물을 주제로 하여 기획되었다. 필자는 방송·영상아카이브 분야 연구자이자 KTV 한국정책방송원의 아카이브팀 프리랜서 연구원으로서 학술연구와 방송영상물 정리·기술 실무자 입장에서 발제를 준비했다. 서울기록원에서는 올해 초부터 발제자로 참여해 줄 수 있는지 요청했었는데, 사실 필자는 큰 고민 없이 무조건 한다고 했다. 공공 부문에서 시청각기록물 관리·활용에 관한 공론장은 그간 많지 않았고, 이번이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례발표회’라는 행사명에서 느껴지는 부담도 있었다. KTV에서 참고가 되는 사례를 준비하여 발표하면 더 좋았겠지만, 현재 KTV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관에서 시청각기록물의 정리·기술 작업은 실험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모델을 사례로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지난 2021년부터 필자가 KTV 아카이브팀에서 <대한뉴스>라는, 잘 알려졌다면 알려진 컬렉션 카탈로깅 작업을 진행하면서 정리했던 여러 쟁점을 동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글에서는 해당 행사의 발제를 준비하면서, 행사에 참석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 들었던 여러 생각을 정리했다.
행사에 참석한 여러 발제자의 소속 기관만 보더라도 이번 행사는 현재 국내 공공 부문의 시청각기록물 유관 기관에서 어떤 컬렉션을 어떻게 소장·관리하고 있으며, 각 기관에서 중요한 현안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먼저, 곧 개관을 앞둔 국내 최초 공공 사진미술관인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이 수집하고 있는 컬렉션과 보존·관리 계획 등에 관한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시는 그간 이번 행사 주최 기관인 ‘서울기록원’을 비롯해 ‘우리소리박물관’,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등을 통해 문화예술 분야 아카이브 관련기관 설립 및 운영에 어느 정도 앞장서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서울시립사진미술관’이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 아카이브 관리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국내 영화 의무제출 주무기관으로서 국내 기록학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자료 정리·기술과 관련해서도 여러 정보가 공유되었다. 국제필름아카이브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 des Archives du Film, FIAF) 기술 규칙을 준용한 영화필름 기술지침은 예술작품으로서의 영화아카이브 자료 관리를 위한 방안이지만, 이는 국내 공공기관에서 시청각기록물 정리·기술을 위한 메타데이터 입력 지침 등을 마련하는 데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날 국가기록원의 시청각기록물 보존·관리에 관한 발제를 맡은 신동혁 공업연구사는 국가기록원의 시청각기록물 보존 관련 두 가지 위협(Risk)을 각종 매체가 빠른 속도로 손상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보존 처리 작업을 위한 기술이 빠르게 노후화(obsolescence)되고 있다는 점으로 요약했다. 물론 이는 국가기록원만의 걱정은 아니고 이날 발표한 4개 기관, 그리고 국내 대부분의 시청각기록물 보유 기관이 직면한 문제이다. 이런 사실이 역설적으로 이날 행사와 같은 자리가 앞으로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어느 기관이 어떤 아날로그 매체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으며, 얼마나 방치되고 있고, 얼마나 물리화학적으로 훼손되는 중인지,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재원, 인프라, 기술 인력, 지식정보 등은 어디서 구하는지 확인하는 자리를 훨씬 더 자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이날 발제에서 KTV 사례를 언급하기에 앞서 ‘국내 시청각 아카이브 유관기관 분포도’를 설명했다. 이날 언급한 분포도는 필자가 앞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텔레비전아카이브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s Archives de la Télévision, FIAT/IFTA) 월드 컨퍼런스 등 해외 관련 행사에서 ‘한국의 시청각 기록관리 유관기관 현황’ 등의 제목으로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다. 이 도표는 필자가 여러 실무 경험과 연구 과정에서 정리한 도표이므로, 모든 기관이 포함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를 토대로 하여 국내 어떤 기관이 무슨 자료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시청각기록물 관리지도(Map)를 완성하고 싶다.
첫 번째 그룹은 시청각기록물 관련된 유관 공공기관으로, 이들은 관련 정책이나 인프라 등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번째 그룹은 방송사 그룹으로, 흔히들 알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 4개사에서는 2000년대 중반 HD제작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디지털자산관리시스템(Digital Asset Management System) 등 디지털아카이브가 어느 정도 잘 갖춰진 편이다. 하지만 최근 지역MBC나 지역민방의 아카이브는 굉장히 열악하고 공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이 여러 연구(최효진, 김수영, 강신규, 2024)를 통해 밝혀졌다. 방송 통신 분야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몇 년 전부터 이를 위한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위 제3섹터라고 불리는 민간 부문이 있다. 개인 소장자, 엔터테인먼트사, 다양한 규모의 민간 단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이 소장한 시청각기록물의 소장량이 적지 않다는 점도 중요한 사실이지만, 이 그룹에 해당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소장자료를 잘 관리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알고 싶어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 첫 번째 그룹에 있던 유관 공공기관은 이러한 고민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시청각기록물을 소장한 공공 및 민간 기관이 시청각기록물 관리·활용하는 데 노하우를 공부할 만한 적절한 표준과 지침 등은 부재하다.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시청각 기록관리 정책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여러 자리에서 제기해 왔다(최효진, 2022).
유네스코는 1980년 10월 27일 제21차 총회에서 세계 최초로 시청각기록물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한 바 있다. 그 이전까지는 영화나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 문화소비 대상에 불과했던 영상물들이 꽤 빠르게 사라지고 있고, 그것이 인류 공동의 기억을 담고 있는 기록이었음을 유네스코 총회에서 천명한 것이다. 이를 문서화한 유네스코 권고문(Recommendation for the Safeguarding and Preservation of Moving Images)에서는 시청각 부문 아카이브 전문화를 위해 인력·시설·장비·재원 면에서 ‘공적으로 인정된(officiellement reconnues)’아카이브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해당 권고문에 따르면, 각국의 상황에 따라 인프라가 갖춰진 기관이 있다면 해당 기관을 지정하여 시청각 부문 기록관리 정책기구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제언한다(최효진, 2022, 136).
국내 사정에서 이에 해당하는 기관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 이번 행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되었지만, 적어도 이번 행사를 기획한 서울기록원과 발제자들의 소속 기관, 그리고 참가 신청을 한 여러 기관의 기록연구사들이 이를 위한 책임에 동감하고 있다는 점 또한 확인했다. 기록관리 리더십이라는 표현은 시청각기록물 소장기관을 비롯해 국내 기록관리 현장에서 많이 언급되는 키워드이다.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전문성이 있다’는 말로 대치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매우 전문적인 분야의 언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다. 시청각기록물을 생산·수집·보존·관리·활용하는 개인·단체·기관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된 시청각기록물 관리 관련 지침, 표준, 법제 등이 필요함을 이번 행사에서 확인했다. 즉, 무엇보다 이번 행사를 통해 다시금 확인한 것은 아키비스트의 핵심 역량으로 언급되는 전문성과 책임 의식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같은 고민을 가진 동료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동료와의 연대(Solidarity)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기록과사회> 필진과 독자들을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서 반갑고 즐거웠다. 조만간 이런 자리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서울기록원. (2024.6.21). <제3회 소장자료 정리와 기술 사례발표회> 자료집. https://archives.seoul.go.kr/exhibitions-programs/event/4342
최효진. (2022). 국내 시청각 기록관리 정책 리더십 및 전문성 제고 방안 연구. 기록학연구,(72), 91-163, 10.20923/kjas.2022.72.091 https://ksas.jams.or.kr/po/volisse/sjPubsArtiPopView.kci?soceId=INS000001909&artiId=SJ0000000755&sereId=SER000000001&submCnt=1&indexNo=3
최효진, 김수영 and 강신규. (2024). 국내 지역 방송사 아카이브의 현재와 공공 방송 콘텐츠 아카이브 구축 방향 : 자료보관소에서 ‘공공’ 역사저장소로. 방송통신연구, 126, 93-133.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071139
기록관리 AI 기술적용을 위한 공통 학습데이터 세트 구축 연구(2021)https://www.archives.go.kr/next/newdata/researchReportDetail.do?seq=98398&page=2&reportType=&year=&searchType=&keyword=
블록체인 트랜잭션과 스마트 컨트랙트 활용 기록관리 적용방안 연구(2020)
국내 기록관리 인공지능 기술 적용 검토(기록관리 이슈페이퍼 제39호, 2023)
https://www.archives.go.kr/next/newdata/recordIssue.do
2023년 기록관리 정책 포럼-디지털 전환 시대, 기록관리 통합 플랫폼의 방향과 과제(2023년 6월)
https://www.archives.go.kr/next/newnews/wordsDetail1.do?board_seq=101367&page=3&keytype=&key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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