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기록원 성남분원(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홈페이지)
윤정훈(디아키비스트)님의 글입니다. 글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기록관리단체협의회 성명서(2026. 9. 4.) https://www.archivists.or.kr/2221
1. 들어가며
지난 9월 1일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공공부문의 디지털 전환에 대응하고 민간기록과 국외기록의 보존을 지원하며,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민간기록 관리체계를 마련하는 등 변화된 기록환경을 반영하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준(準)기록관 제도를 신설하고 전자기록의 이관방식을 개선하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변화하는 기록환경을 고려하면 공공기록물법을 더 이상 과거의 제도와 방식에 머물게 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 자체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 개정은 새로운 제도를 얼마나 많이 추가하느냐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어떤 원칙과 방향으로 국가기록관리체계를 변화시키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정안에는 우리나라 기록관리제도의 지난 25여 년간 발전 방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바로 기록물관리의 총괄·조정 권한을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이 아니라 행정안전부장관에게 부여하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정부 조직 내부의 권한을 조정하는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록관리의 역사와 기록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하면 이는 단순한 행정조직 개편이 아니다. 국가기록관리의 중심을 전문 기록관리기관에 둘 것인지, 아니면 일반 행정기관과 그 장관에게 둘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선택이다.
2. 총괄·조정권은 왜 국가기록원에 있었는가
우리나라 현대 기록관리제도의 중요한 전환점은 1999년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제정이었다. 이 법은 제5조에서 “기록물관리를 총괄·조정하기 위하여”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을 두도록 하였다. 즉 기록물관리의 총괄·조정 기능은 최근에 국가기록원에 부여된 행정권한이 아니라, 1999년 공공기록물법 제정 당시부터 국가기록관리체계를 구성해 온 핵심적인 권한이었다.
물론 당시 중앙기록물관리기관(정부기록보존소)이 행정부로부터 분리된 독립기구로 설치된 것은 아니며, 조직과 인사·예산 측면에서도 완전한 독립성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1999년 기록관리법은 국가의 기록관리를 단순한 문서보관이나 일반 행정관리의 한 분야가 아니라 전문성과 일정한 직무적 독립성이 요구되는 국가기능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총괄·조정권을 소관 부처의 장관이 아니라 전문 기록관리기관인 중앙기록물관리기관과 그 장에게 부여한 것은 제한적이나마 기록관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기록관리는 그 이전까지 총무처와 행정자치부 등 일반 행정부처의 행정관리 영역에서 다루어져 왔다. ‘정부기록보존소’라는 명칭이 의미하듯 국가 기록관리기관은 정부기관이 생산한 기록을 이관받아 보존하는 역할에 상대적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1999년 공공기록물법 제정 이후 기록관리는 단순한 보존업무를 넘어 기록의 생산부터 등록, 분류, 평가·선별, 이관, 보존, 공개와 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을 관리하는 체계로 발전하였다. 중앙기록물관리기관 역시 단순한 보존기관에서 국가기록관리의 정책과 기준을 마련하고 각급 기관의 기록관리를 총괄·조정하는 전문기관으로 역할이 확대되었다. 국가기록원이 2004년 조직개편을 두고 ‘보존 중심 기관에서 국가기록 총괄 기관으로’ 전환했다고 평가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그럼에도 국가기록원의 독립성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행정안전부 소속기관이라는 조직적 한계가 지속되고, 국가기록원장의 직무상 독립성과 임기 안정성도 충분히 제도화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제도개선은 기존의 제한적인 독립성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록원의 전문성과 직무적 독립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지금까지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이 담당해 온 기록물관리 총괄·조정 기능을 행정안전부장관에게 부여하려 한다. 개정안대로라면 국가기록원은 영구기록의 보존·관리와 기록관리 지원 등의 전문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국가기록관리의 총괄·조정 주체로서의 위상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개정은 단순히 국가기록원장의 권한 하나를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옮기는 조직 내부의 권한조정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1999년 공공기록물법 제정 당시 완전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수준에서 인정했던 기록관리의 전문성과 직무적 독립성을 후퇴시키는 문제이다. 결국 쟁점은 국가기록원을 국가 전체의 기록관리를 전문적으로 총괄·조정하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아니면 행정안전부장관이 총괄하는 기록관리정책을 집행하는 소속기관으로 축소할 것인지에 있다.
3. 정부조차 철회했던 조항이 국회에서 다시 등장했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문제가 이미 한 차례 사회적 논란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2024년 8월 정부가 입법예고한 공공기록물법 개정안에도 “행정안전부장관은 기록물관리를 총괄·조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기록관리 현장과 기록학계, 관련 전문가단체들은 이에 강하게 반대하였다. 국가기록관리체계의 근간을 변경하는 중요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면서도 기록관리 현장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절차상의 비판도 제기되었다.
- 공공기록물법 일부 개정안(2024)에 대한 기록학계 및 관련 단체의 입장문(2024. 9. 30.) https://www.archivists.or.kr/1995
결국 해당 조항은 정부가 최종적으로 국회에 제출한 법률안에서는 제외되었다.
그런데 정부가 한 차례 거두어들였던 내용이 이번 국회 개정안에서 다시 등장하였다. 더구나 기록관리단체들이 2024년 정부 개정안을 비판하면서 가장 강조했던 것 중 하나가 기록관리 현장 및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었음에도 이번 국회 입법과정에서도 의견 수렴 과정은 전혀 없었다.
입법 주체가 정부에서 국회로 바뀌었다고 해서 국가기록관리체계의 기본구조를 변경하는 일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추진했다가 전문가사회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했던 내용이라면, 국회는 왜 다시 이 조항이 필요한지, 기존 제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국가기록원의 총괄·조정권을 행안부장관에게 이전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더욱 충분하게 설명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개정 논의에서는 그러한 정책적·입법적 설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4. 기록관리는 왜 독립적이어야 하는가
기록관리에서 독립성이 중요한 이유는 기록관리기관의 특별한 성격 때문이다.
기록관리기관이 관리하는 기록은 대부분 정부와 공공기관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고 정책을 결정하며 행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기록은 정부가 무엇을 결정했는지뿐만 아니라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누가 책임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따라서 기록은 단순한 행정정보나 업무자료가 아니다.
기록은 권력을 기록하는 증거이고, 정부의 설명책임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며,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시간이 지나면 국가와 사회의 기억이자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여기에서 기록관리기관이 갖는 본질적인 긴장이 발생한다. 기록관리기관은 행정부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속한 행정부가 생산한 기록을 관리해야 한다. 정부의 활동을 증명하고 때로는 정부에 불편할 수도 있는 기록을 보존하고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록관리에는 일반 행정업무와 다른 수준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필요하다.
기록관리의 독립성이 반드시 조직적으로 행정부에서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조직적 독립성을 당장 확보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기록의 평가·선별, 이관, 보존, 공개와 국가기록관리 정책에 관한 전문적 판단이 단기적인 정치적·행정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직무상 독립성과 전문적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기록관리 혁신은 국가기록원의 독립성을 줄이는 방향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5. 국회기록원에는 독립성, 국가기록원에는 장관의 총괄권?
이번 개정안의 모순은 최근 제정된 「국회기록원법」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국회는 국회기록원을 설치하면서 기존 국회도서관 산하 조직으로는 기록물 관리 기능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국회기록원법」 제2조에 “기록원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명문화하였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이다. 기록관리기관의 독립성을 단순한 조직운영상 고려사항이 아니라 법률로 보장해야 할 가치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국회가 이번에는 국가기록원의 핵심적인 총괄·조정 기능을 행정안전부장관에게 넘기는 내용의 공공기록물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입법부의 기록을 관리하는 국회기록원에는 독립성을 법률로 보장하면서 행정부 전체의 국가기록관리를 담당하는 국가기록원에서는 소관 부처 장관의 권한을 강화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국회기록원의 독립성이 필요한 이유가 기록관리의 전문성과 중립성 때문이라면 그 원칙은 국가기록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오히려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방대한 공공영역의 기록관리 정책을 담당하는 국가기록원에는 더욱 높은 수준의 전문적 독립성이 요구된다고 볼 수도 있다.
국회가 스스로 만든 기록관리 독립성의 원칙을 행정부 기록관리에서는 부정해서는 안 된다.
6. 다시 ‘정부기록보존소’의 시대로 돌아갈 것인가
이 때문에 기록관리계 일부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국가기록원을 과거의 ‘정부기록보존소’와 같은 위치로 되돌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법률이 개정된다고 해서 국가기록원의 명칭이 정부기록보존소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국가기록원이 수행하고 있는 모든 기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귀’는 조직 명칭의 회귀가 아니라 국가기록관리 철학과 거버넌스의 회귀를 의미한다.
지난 25여 년간 우리나라 기록관리제도가 발전해 온 중요한 방향 가운데 하나는 기록관리를 행정관리의 부속적인 기능에서 전문적인 국가기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정부기록을 단순히 모아서 보존하는 것을 넘어 정부가 기록을 제대로 생산하고 관리하도록 기준을 세우고, 중요기록을 선별하여 영구적으로 보존하며, 국민이 기록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기록관리체계를 구축해 왔다.
그 과정에서 국가기록원은 단순한 기록보존기관에서 국가기록관리의 총괄기관으로 변화해 왔다.
그런데 총괄·조정권이 다시 일반 행정부처의 장에게 돌아간다면 형식적으로는 국가기록원이 유지되더라도 국가기록원의 실질적 위상은 달라질 수 있다. 정책과 조정은 행정안전부가 담당하고 국가기록원은 보존·관리와 기술지원, 정책집행을 담당하는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개정안은 공공부문의 인공지능 전환, 디지털 기록관리, 민간기록과 지역기록의 보존 등 미래지향적인 과제를 개정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는 국가기록관리 거버넌스 역시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기록관리 대상과 기술은 미래로 확장하면서 정작 기록관리 거버넌스는 일반 행정 중심의 과거 체계로 돌아가는 모순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7. 문제는 총괄·조정권 하나만이 아니다
이번 개정안에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제9조만이 아니다.
‘준기록관’ 제도의 신설은 기록관 설치의무가 없는 공공기관의 기록관리 공백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취지를 이해할 수 있지만, 준기록관의 기능과 책임,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배치 및 기존 기록관 제도와의 관계가 충분히 설계되지 않으면 오히려 기록관과 전문요원 제도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민간기록과 국외기록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 역시 필요하지만, 민간의 소유권과 자율적 관리를 존중하고 지원한다는 민간기록관리의 대원칙에 대한 천명조차 없고 세부사항도 결여되어 있다. 국가가 무엇을 지원하고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 없이 국가 관리의 범위만 확대한다면 민간기록 활성화라는 정책 목적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영구기록물관리기관으로의 이관 대상을 조정하는 문제는 제도 변경의 방향보다 그에 따른 준비가 충분한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현행처럼 30년 이상 기록을 영구기록물관리기관으로 이관하도록 한 것은 1999년 법 제정 당시 각급 기록관의 장기보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우리나라 기록관리체계의 선택이었다. 이를 영구보존 대상 중심의 이관체계로 전환하여 30년 보존 기록을 각급 기록관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것은 장기보존기록을 생산기관이나 기록관에서 관리하는 서구의 일반적인 사례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환이 법률의 이관 대상만 변경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30년 보존 기록을 기록관에서 장기간 관리하려면 그에 맞는 전문인력과 보존시설·장비, 전자기록 장기보존체계, 예산과 관리역량의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반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단계적인 준비 없이 이관체계의 변경만 선언한다면 장기보존 책임이 영구기록물관리기관에서 각급 기록관으로 이전되는 데 그칠 수 있다. 따라서 제도 전환에 앞서 기록관리 현장의 여건을 진단하고 필요한 인력·시설·장비·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계획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이들 사안은 모두 기록관리체계의 기본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개별 조항의 기술적인 수정으로 접근하기보다 국가가 앞으로 어떤 기록을 어떤 기관과 전문가를 통해, 어떤 책임과 원칙에 따라 관리할 것인지라는 큰 틀에서 검토해야 한다.
8.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기록원의 권한 축소가 아니라 독립성 강화이다
우리나라 국가기록관리체계가 완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지난 25여 년간의 제도 운영을 돌아보고 새로운 기록환경에 맞는 근본적인 개혁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그 방향이 국가기록원의 총괄·조정권을 행정안전부장관에게 넘기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정반대의 논의이다.
국가기록원이 국가의 중앙기록물관리기관으로서 전문적인 판단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직무상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국가기록원장의 전문성과 임기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국가기록관리위원회를 어떻게 보다 독립적이고 실질적인 기록관리 거버넌스 기구로 발전시킬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또한 국가기록원과 국회기록원 등 헌법기관기록물관리기관, 지방기록물관리기관 사이의 관계도 중앙부처에 의한 수직적인 지휘·통제보다 전문 기록관리기관 간 협력과 조정을 중심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이러한 문제를 현행 공공기록물법의 일부 조문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계속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오늘날 기록관리의 영역은 전통적인 공공기록을 넘어 민간기록, 지역기록, 데이터, 웹과 소셜미디어, 인공지능 환경에서 생산되는 새로운 유형의 기록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기록은 행정관리의 대상인 동시에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 사회적 기억과 문화유산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가의 기록관리 기본원칙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기록관리기관의 독립성, 국가기록관리 거버넌스, 공공과 민간의 관계 등을 포괄하는 보다 근본적인 기록관리 법체계의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9. 법률을 빨리 바꾸는 것보다 제대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기록관리제도는 한번 만들어지면 수십 년 동안 국가와 사회의 기억이 어떻게 남겨질지를 결정한다. 오늘 어떤 기록을 생산하고 관리하며 어떤 기록을 영구적으로 보존할 것인지에 관한 결정은 당장의 행정업무뿐만 아니라 수십 년 뒤 국민이 오늘의 정부와 사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관리 법률은 행정적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설계해서는 안 된다.
이번 개정안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충분한 논의이다.
국회는 개정안 처리를 서두르기보다 국가기록원의 총괄·조정권 이전을 비롯하여 국가기록관리체계의 기본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조항들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기록관리 현장, 기록학계, 전문가단체,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개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1999년 공공기록물법 제정 이후 우리나라 기록관리는 여러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2007년 공공기록물법 전부개정 등 기록관리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앞으로 필요한 혁신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어야 한다.
기록은 행정 편의를 위한 단순 자료가 아니다. 기록은 권력을 기록하고 정부의 책임을 증명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을 관리하는 제도와 기관 역시 행정권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10. 나가며: 국가기록관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이번 공공기록물법 개정 논의는 국가기록원의 권한을 축소하고 행정안전부장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계기가 아니라, 지난 25여 년간 우리나라 기록관리제도가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1999년 공공기록물법 제정 이후 우리나라 기록관리는 보존 중심의 업무에서 벗어나 기록의 생산부터 관리·평가·이관·보존·활용에 이르는 전문적인 제도로 발전해 왔다. 중앙기록물관리기관에 총괄·조정 기능을 부여한 것도 기록관리의 전문성과 일정한 직무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제도적 성과였다.
물론 국가기록원의 독립성, 각급 기록관의 인력과 시설·예산, 디지털·데이터·AI 환경에 대응하는 기록관리체계 등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기존의 성과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보완하고 기록관리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한 단계 더 강화하는 것이다. 총괄·조정권과 이관체계처럼 국가기록관리의 기본구조를 바꾸는 문제 역시 기록관리 현장과 학계, 전문가단체의 충분한 논의와 준비를 거쳐야 한다.
국가기록관리의 미래는 전문 기록관리기관의 권한을 다시 행정부처로 되돌리는 데 있지 않다. 지난 25여 년간 어렵게 구축해 온 기록관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토대로 변화된 기록환경에 맞는 새로운 국가기록관리체계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이번 법 개정 논의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기록관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 이 글은 2026년 9월 4일 기록관리단체협의회가 발표한 「기록관리 독립성을 거스르는 공공기록물법 개정안, 국회는 즉각 재검토하라」 성명서의 내용과 문제의식을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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