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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아카이브

일본 테시마섬에서 만난 심장소리아카이브

2025.08.01 | 조회 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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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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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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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아카이브가 기록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최대한 잡스러운 것을 모아보려고 하다 보니, 여기저기 기웃거립니다. 이번에도 '아카이브 탐방기'를 공유합니다. 지난봄에는 일본에 다녀왔고, 요즘은 경상의 남도를 자주 갑니다. 작아져가는 지역의 소리와 흔적들, 그 '남음'들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탐방기는 계속될 겁니다. 지난번 다녀온  캐나다 탐방기도 함께 읽어주시면 좋지요!


공평함은 어디에서 올까요? 출처가 다양하겠지만, 저는 본질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겨먹은 그대로 고스란히 존재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공평한 상태이지 않을까.

물속에 사는 것이 본질인데 낚시질 몇 번에 물밖에 나와 던져져야 한다면 공평하지 않죠. 태어날 때 손발 버둥거리며 태어났는데 손발만 버둥거려서는 살아남지 못하고, 손발에 돈다발이 쥐어져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하면 그것도 공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보드라운 흙더미 속으로 깊이 뿌리내려야 하는 풀들이 콘크리트로 막음이 되어 있을 때, 그저 흐르는 것이 그 본질인데 물길이 둑으로 보로 댐으로 막혀 있을 때...

원래 생겨먹은 대로 살지 못할 때, 그런 것을 볼 때면 어쩐지 이상하다, 무언가 어색하다 생각했는데, 그 어색함은 바로 공평하지 못한 데서 온 것 같습니다.

'본연의 성질' 본질에는 좋고 싫고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습니다. 본질이 그 본질 그대로 있을 수 있다면 편안한 마음이 들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 감각을 굳이 이름붙이자면 '공평한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중에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 손!

인간의 본질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차 떼고 포 떼고, 계급장 떼고, 오로지 그저 인간 본질의 모습, 누구든 살아 있기만 하면 다 가지고 있고, 신체능력이 뛰어나든, 약하든, 심지어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갔더라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생명활동.

지구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와 공통점으로 자리 옮기기 놀이라도 한다면, 모두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그 말, "이중에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 손!"

'사랑해' 놀이라도 한다면  모든 인류를 다 사랑하게 만드는 그 말, "너를 사랑해, 왜냐면... 니 심장이 벌컥벌컥 뛰니까."

 

심장이 뛴다

 

그것이 사람이 가진 ‘유일한‘ 본질은 아니겠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 다른 것들을 헤치고,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그 사람을 들여다보면 결국 도달하는 그곳에, 심장이 뛰고 있을 겁니다.

그 심장소리가 모여 있는 아카이브라면, 세상 공평한 어떤 순간을 경험하는, 어디에도 기울어짐 없는 불편부당한 상태의 한 사람을 만나는 중요한 순간이겠구나, 거기로, 가고 싶다!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심장소리아카이브를 찾았습니다.

제가 늘어놓은 모든 이유에 다 동의가 되진 않으셨대도, 이런 아카이브라면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셔요? 그럼, 같이 가볼까요?

 

심장소리아카이브心臓音のアーカイブ

일본 열도의 안쪽 바다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 한쪽에 자리한 외딴섬 테시마(豊島), 그 섬에서도 저 깊숙한 곳에 아주 소박하고 작은 심장소리아카이브가 있습니다.

심장소리아카이브 전경ⓒ심장소리아카이브
심장소리아카이브 전경ⓒ심장소리아카이브
심장소리아카이브로 들어가는 깊숙한 길 ⓒ썬데이아카이브
심장소리아카이브로 들어가는 깊숙한 길 ⓒ썬데이아카이브

참말로 외딴섬, 외딴곳, 외딴 바닷가에서도 외딴 구석에 있습니다. 항구에서 내려 자꾸만 어딘가로 깊숙이 들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그곳으로 가면, 거기서 심장소리아카이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가운데 통창을 기준으로 똑같이 생긴 출입문이 두 개 있습니다. 좌심실과 우심실을 떠올리는 건 저의 지나침일까요?ㅎ

심장소리아카이브 외관ⓒ썬데이아카이브
심장소리아카이브 외관ⓒ썬데이아카이브

심장소리 아카이브는 크게 3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심장소리와 불빛이 연동되어 펄떡이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하트룸, 자기 심장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레코딩룸, 전 세계에서 아카이브된 사람들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리스닝룸입니다.

처음 하트룸에 들어설 때, 어둡지만 에너지로 가득찬 심장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또 저의 지나침,, 이겠지요?^^;

심장소리와 전구의 불빛이 연동되어 공간을 가득 채우는 하트룸.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작품이다.ⓒ심장소리아카이브
심장소리와 전구의 불빛이 연동되어 공간을 가득 채우는 하트룸.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작품이다.ⓒ심장소리아카이브
심장소리아카이브에서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리스닝룸ⓒ심장소리아카이브
심장소리아카이브에서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리스닝룸ⓒ심장소리아카이브
심장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레코딩룸ⓒ썬데이아카이브
심장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레코딩룸ⓒ썬데이아카이브

 

심장아카이브 속으로!

심장소리아카이브는 전 세계 14개국, 19개 지역에서 녹음된 8만 개가 넘는 심장소리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심장소리아카이브는 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탄스키(Christian Liberté Boltanski)의 작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주로 다뤄 왔던 볼탄스키가 "무명의 개인을 기억하며 인간 존재의 중요성과 소멸을 표현"하고자, 전세계 사람들의 심장소리를 녹음하고 저장하고 서비스하는 아카이브를 만들게 된 것이지요.

2005년 파리의 마리안 굿맨 갤러리(Marian Goodman Gallery)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발표한 "Le coeur"(하트/심장)라는 작품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볼탄스키는 자기 심장소리를 녹음해 들려주는 전시를 했는데, 심장소리를 전구의 깜빡임과 연동시켜 시각적인 신호와 함께 연동키는 작품이었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심장소리아카이브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 뒤, 2008년 프랑스 파리의 라 메종 루즈(La Maison Rouge), 2010년 영국 런던의 뱀 갤러리, 일본 테시마의 심장소리아카이브, 2013년 그리스 아테네의 오나시스문화 센터에서 자신의 심장소리를 녹음하면서 사람들에게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심장소리 수집 프로젝트'를 이어갔습니다.

볼탄스키는 “인간의 존재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독특하지만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곧 잊혀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 작품에서 심장 소리가 녹음 된 순간, 그것은 살아 있는 주인공의 심장 소리가 되지 않으며, 그 사람은 점차 죽어 가고 있지만, 기억으로서, 그것은 계속 살아 있습니다. … 그것은 사람들의 기억의 아카이브이며, 변화함에 따라 쌓이고 있습니다."

Boltanski와의 인터뷰, <OZmagazine>, 2010년 7월호

 

2010년 이곳 테시마에 심장소리아카이브를 개관할 때 테시마 섬사람들의 심장소리를 녹음하였고, 이후 개관 10주년을 맞아 2020년에 다시 녹음해 등록했습니다.

그 사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심장소리를 녹음하고 전시하기도 했는데, 2009년에서는 서울에서도 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심장소리아카이브가 다닌 곳들ⓒ썬데이아카이브
심장소리아카이브가 다닌 곳들ⓒ썬데이아카이브

 

심장소리는 어떻게 아카이브되는가

자기 심장소리를 심장소리아카이브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레코딩룸으로 혼자 들어가서 셀프로 녹음합니다.

레코딩룸에 비치된 심장소리 셀프녹음법ⓒ썬데이아카이브
레코딩룸에 비치된 심장소리 셀프녹음법ⓒ썬데이아카이브
심장소리를 아카이브하는 법 ①조작 시에 사용할 언어를 선택한다. ② 이름과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등록한다. ③ 헤드폰을 귀에 끼고 청진기처러머 생긴 마이크를 옷 속에서 직접 가슴에 댄다. ④녹음 버튼을 누른다. 3초 뒤, 심장소리 녹음 버튼을 누르면 3초 뒤 녹음이 시작된다. ⑤녹음이 끝나면 한번 들어보고 이상이 있으면 1번 더 녹음한다. ⑥심장소리아카이브에 자기 심장소리를 등록한다.

 

이렇게 심장소리를 녹음하면 자기 심장소리를 CD에 담아 줍니다. (소정의 등록비가 있습니다.)

첨부 이미지
나의 심장소리가 담긴 CD-ROMⓒ썬데이아카이브
나의 심장소리가 담긴 CD-ROMⓒ썬데이아카이브

나에게도 있고, 너에게도 있고,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어떤 것이 소중하고 매력적으로 아카이브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아카이브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아카이브임은 틀림없습니다.

이 주장은 거둘 마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이 아카이브가 과연 공평한가 하는 질문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먼저, 일본 테시마섬까지 달려갈 비용과 시간과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자기 심장소리를 등록하는 데도 비용과 의지가 필요하지요.

진정한 공평한 아카이브가 되려면, 이 심장소리아카이브가, 내가 존재하는 바로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숨쉬듯 자연스럽게 아카이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저명한 예술가의 작품에 편입되지 않고서, 지금, 각자가 살고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 심장소리를 녹음해 봅시다. 익숙한 플랫폼에 모아도 좋고, 어디에 꼭 모이지 않아도 좋고. 그저 나의 심장소리가 당신의 심장소리가 아카이빙될 수 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 봅시다.

그렇다면 세상 공평한 소리아카이브가, 세상 공평한 방식으로 구현되는 그날이 올지도 모르지 않지 않을까요?

 

굳이 덧붙이는, 사족 정보, 테시마는 어디인가?

심장소리아카이브가 들어선 테시마섬은 섬 전체가 예술작품으로 가득합니다. 일본 카가와현에 위치한 섬으로 내토나이카이에 있으며, 면적은 14.5km, 인구는 약 1,000명 정도 됩니다. 예전에는 버려진 산업시설과 쓰레기로 가득 차 버려진 섬이었짖만, 세토우치국제예술제를 통해 예술의 섬으로 거듭났습니다.

이 섬에 있는 테시마미술관은 제가 아는 어떤 언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압도적이면서도 무력하고,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생명이자 소멸이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의 현상, 혹은 움직임, 혹은 그런 현상을 포착하는 순간을 담은 것 같은,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이 섬이 이 하나의 작품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테시마미술관ⓒ테시마미술관
테시마미술관ⓒ테시마미술관

심장소리아카이브가 없었다면 이 섬에서 오로지 테시마미술관 이야기만 늘어놓았을 것 같습니다. 심장소리아카이브에 집중하기 위해 이 이야기는 이쯤해 두겠습니다. 3년마다 세노나이카이 해상에 있는 있는 나오시마, 테시마 등의 예술의 섬과 일부 도시가 연계해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라는 국제예술제가 열립니다. 마침 올해가 축제가 열리는 해입니다. 봄, 여름, 가을 3개의 회기로 나뉘어 8개월 동안 진행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가 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일본 다카마스 직항 비행기를 타면 순식간에 우리를 예술과 아카이브로 충만한 외딴섬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추신

1. 2022년, 아카이브 전문방송 <아카이브다> ep.15 사운드아카이브 편에서 더지가 들려주는 심장소리아카이브 이야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습니다! 

2. 뭐든지 세 개만 모이면 다 아카이브가 된다는 믿음으로 이야기를 쌓아가는 썬데이아카이브의 또 다른 탐방기 <도시를 기억하는 도서관>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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