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 공지사항

E.

국가 아카이브는 범죄의 증거를 보존하라

2024.12.06 | 조회 481 |
0
|
from.
민주주의, SST
기록과 사회의 프로필 이미지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사흘이 지났다. 대한민국 모든 영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고, 여파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기록관리 관련 단체들도 성명을 냈다. 성명의 주요 내용은 반헌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를 역사에 남기기 위해 기록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국가기록원장의 긴급 폐기금지 조치 발동, 관련 공공기관에 대한 점검, 대통령 탄핵에 대비한 대통령기록관(장)의 철저한 사전 준비,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에 대한 점검 등이다. 모두 정상적인 국가 아카이브가 해야 일이고, 아카이브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들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국가기록원장(이용철)과 대통령기록관장(이동혁)은 현재 행정직 고위 공무원이다. 이들이 기록전문가의 정체성을 갖고 아카이브의 독립적 판단과 역할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번 반헌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윤석열과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은 내란죄로 경찰에 고발된 상태다. 사태를 역사에 기록하는 주체인 국가 아카이브의 상위 기관장인 장관이 내란의 공모자가 될지도 모른 상황인 것이다. 잠재적인 범죄 행위자에게 자신의 범죄에 관한 주요 증거를 보존하라고 할 때, 그것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이렇듯 국가 아카이브, 기록, 증거와 보존은 모순의 꼬리를 물고 있다.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시를 받는 행정직 공무원인 국가기록원장과 대통령기록관장이 역할을 있을까. 기대하기 어렵다.

예상이지만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의 기획부터 실행, 해제에 이르는 범죄를 입증할 있는 중요 기록은 공식적인 기록생산시스템으로 생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메모, 녹음 증거가 남아있으면 다행이고, 구두지시는 증발했을 것이다. 이런 기록을 대통령 지정기록으로 봉인하면 안 된다는 주장조차 공허하다. 국가기록원장이 실행할 수 있는 폐기 금지 제도는 기록이 정상적인 생산 시스템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전제한다.  폐기 금지 제도를 실행해도 관련 기록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기록이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만든 기록을 모조리 복구할 수 없는 방법으로 파괴했다면, 비정상적인 상황에 정상적인 절차와 결과물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보통의 기록물 수집, 획득, 이동 금지, 분류 금지 등의 절차가 아닌 범죄 증거의 보존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은 나이브한 현황 확인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관련 증거를 압수수색 하는 것처럼, 기록의 유형이나 형태와 상관없이 범죄의 증거를 보존한다는 각오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시기이다. 트럼프가 기밀 문서를 변기에 찢어 버린 것처럼 '지금 저기에서 기록들이 익사하고 있다' 기록이냐 아니냐는 나중에 따지자. 증거를 추려 동결하고 포박해야 한다. 6일 국방부 차관도 긴급 브리핑을 통해비상계엄 관련 원본 자료는 보관하고, 폐기, 은폐, 조작 행위 등을 금지하라 지시한 있다. 이제 국가 아카이브는 이 지시의 이행을 감시해야 한다. 

향후 대통령기록물 이관도 마찬가지이다보통의 이관이라면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은 시스템에 등록된 전자/비전자 기록물을 정리하고, 이를 대통령기록관이 검수하여 이관한다. 지금은 비상한 시기이고 불법 계엄의 증거는 이관 체계로 포획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박근혜 탄핵 당시 무수히 제기된 기록물 무단폐기 의혹 기억하고 있으며, 이후 문재인 정부 초기에 발견된 박근혜 정부의 캐비넷 문건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 이관과 관리의 부실이 되풀이 되면 안된다. 윤석열과 계엄 무리들은 행정의 절차를 무시하고 증거를 은닉하는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했을 것이다. 기록은 없고 부스러기 같은 증거가 컴퓨터와 휴대전화, 쪽지와 메모, 절반쯤 파쇄된 백상지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기록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국가 아카이브가 수습해야 하는 증거임에는 틀림없다. 폐기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담은 공문을 모든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에 발송하라.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특히 보좌기관)에 남겨진 빈약한 기록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수집하라. 적어도 그런 요구를 했다는 행정 절차의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국군방첩사령부가 계엄문건 파기를 지시하고 있다는 보도가 불과 두 시간 전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도 증거가 인멸되고 있다. 내일 오후 다섯시에 대통령 탄핵 표결이 진행된다. 상황은 더 급박해질 것이다. 

이번 불법 계엄령 사태 이외에도 이번 정부는 대통령 취임식 초청장 문제, 대통령이 공적 업무를 사적인 휴대전화로 처리한 문제, 무리한 정보비공개처리, 최근의 디올 백 문제까지 국가 기록관리를 훼손하고 모욕했다. 불법 계엄과 내란죄 수사와 함께 천천히, 하지만 또박또박 진상을 밝혀야 한다.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이 스스로 그 일을 할 수 없으니 정치는 국가 아카이브의 역할과 책임을 묻고, 기관의 존재 의의까지도 따지고 경고해야 한다. 시민들도 눈을 부릅뜨고 객관의 탈을 쓴 부역과 공모의 흔적이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기록전문가들은 아카이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주장한다. 그 주장은 국가 아카이브가 국가의 기억과 기록을 온전히 보존한다는 성실한 직업 윤리 위에서만 참이다.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은 아카이브의 직업 윤리를 명심하고 공무를 집행하라.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기록과 사회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메일리 로고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