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23일 전남대에서 5.18민주화운동 45주년 "사회대전환, 나침반으로서 5.18"을 대주제로 학술행사가 열렸다. 과거청산, 기록, 진실규명, 젠더 등 여러 카테고리의 주제 세션이 전개됐다. 특히 기록 세션에서는 '국가폭력 아카이브 구축의 명암'을 주제로 3개의 발표, 3개의 토론이 진행됐다. 현장에서 들었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다.
궁금했던 것은 송용한(성공회대 민주자료관)의 '국가폭력 DB구축 표준화 기준 및 방안 연구' 발표였다. 국가폭력 아카이브 DB구축 표준화에 대한 사회학적 시선과 아카이브적 실천의 결합이라니. 인접하거나 연결된 연구는 서로를 어떻게 삼투할까. 특히 연구자는 아카이브의 핵심 고객으로 요구와 '불만'이 많은데 그것이 'DB 구축' 개선의 양분이 되지는 않을까. 보통은 이런 불만이 혼재한다.
- 찾기 어려운 자료의 출처(정부기록, 공공기록, 민간기록, 비정부 자료든)
- 수집 후 한번도 정리하지 않은 것 같은 엉성한 메타데이터(그마저도 몇 개 필드밖에 채우지 못한)
- 조악한 인터페이스(아카이브는 건조하지만 정보목록 뷰잉에 충실하자 좀)
- 목록 다운로드 기능 미지원(CSV 추출과 다운로드가 어려운게 아니잖아요)
- 고유주소(URL)조차 없는 'list01.do' 형태의 게시판 구조(A.I. 할 생각말고 웹의 기본 좀)
- 늦은 '고객' 대응과 부실한 문의 채널(차라리 팩스를 쓰지 그래요)
공공기관의 경우 정보공개청구가 기록정보 서비스의 주요한 방법 중 하나인 실정에서 목록조차 공개하지 않는 아카이브는 연구자들에게 불만을 넘어 분노의 대상이다.
"그냥 목록을 주세요"
"콘텐츠니 뭐니 그런건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그래서 어떤 연구자들은 언젠가 모든 DB가 통합된 라이브러리를 상상한다. 그런 열망은 흡사 '바벨의 도서관'(보르헤스) 같다. 모든 책이 있지만 완전히 탐색할 수 없는 도서관. 다만 그런 라이브러리는 환상일 뿐이다. 아마 발표자의 구상도 거기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런 주장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자료 형태의 다양성과 표준화된 기준 부재로 국가폭력 아카이브 구축 기관 간 DB통합이 제한적이다"
얼핏 듣기에 다양한 DB를 표준화된 기준으로 정리해서 통합하는 것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유심히 뜯어보면 비현실적이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표준으로 통합하려면 다양성과 고유성은 사라진다. 그런 DB는 효율적이지도 않다.
윤혜선(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주장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지금 필요한 것은 기록을 중앙에 집중적으로 모으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 고유한 아카이브가 살아 있으면서도 연결될 수 있는 연계형 아카이브 구조이다. 기술적 상호운용성과 신뢰 기반 협업, 맥락 정보의 상호 연결을 통해 독립성과 다양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국가폭력 기록의 전체적 지도를 함께 그릴 수 있는 방식..."
DB통합은 정보관리 분야에서 잊을 만하면 다시 등장하는 주제이다. 왜 그럴까. 통합 모델의 설계와 구축, 운영은 쉽지 않다. 매우 어렵다. 요 몇 년 사이 통합보다 플랫폼이라는 그럴듯한 말이 유행이긴 하다. 그런데,
통합DB란 연결된 데이터베이스인가, 아니면 메타데이터 규격까지 완전히 같은 DB인가. 통합의 효과는 무엇일까. 우리는, 너는 통합을 원할까. 통합DB는 누가 어떤 방법으로 운영하고 관리할까. 예산을 감당할 수 있을까. 참여할 기관이 있을까. 기관 정체성이 달라도 수용할 수 있을까. 통합의 시작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누가 이 무거운 깃발을 들까.
그런데 이미 연결된 네트워크와 플랫폼이 있다. 그걸 활용해보면 어떨까.
국사편찬위원회가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을 운영한다. 과학기술부의 디지털 집현전도 있다. 국가폭력 DB가 특별히 다른 메타데이터 스키마를 사용하지도 않는데(발표자는 ISAD(G)와 더블린 코어를 들어 설명했다) 기존 플랫폼을 잘 쓰는 전략으로 가면 어떨까.
DB 설계에서 더 나아가 접근과 활용 전반을 고민한다면 '기록인 토론회 : 기록관리 REBOOTING - 전자기록관리'에서의 안대진의 토론 내용도 주목하면 좋겠다. 기본적인 제안과 실천 방법이다.
"접근을 위한 메타데이터 정비, 파일포맷 접근성(PDF/A, HTML, jpg, MP4), 오픈포맷(ODF, TXT, CSV), 이용을 위한 다운로드 포맷의 정비(CSV, JSON, ZIP), 활용과 재활용을 위한 기계가독포맷의 제안"
이미 시장에 충분히 확산되어 있는 기술을 적절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기록정보서비스는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다.
어쩌면 기술은 이미 존재하는데 공유와 개방을 향한 우리의 정서가 그것을 낯설어하는 것은 아닐까. 복잡한 토론과 지난한 논쟁의 거버넌스나 이니셔티브보다 컨트롤 타워를 쉽게 수용하는 문화가 잠재하는 것은 아닐까. DB통합보다는 더 많은 정보자원을 연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표준의 욕망을 거두고 다양한 동식물이 들쭉날쭉 무성한 생태계를 꿈꿔본다.
"나는 공공기관 아카이빙이 이만큼 성장한 데에는 제초제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냥 알아서들 하세요, 기록이 중요하니 기관 형편에 맞게, 아키비스트가 재량껏, 공무원들은 각자 상황에 맞춰서들 하세요' 1999년 이래로 기록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런 말을 공식담론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정반대의 말을 하면서 우리는 표준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법령, 매뉴얼과 지침, 감사와 보고, 지도감독, 교육, 시스템 등. 모든 공공기관이 이런 표준시스템 자석에 끌려 들어왔다."
- 이영남, 기록의 역운 : 포스트 1999를 전망하며, 기록학연구 39
한편,
학술행사의 기획 주체가 진지하게 '국가폭력 DB'를 다루고 싶었다면,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2021~2023년에 90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던 '5.18민주화운동기록물 통합DB구축 사업도 평가해야 한다. 사업의 결과는 무엇인지, 과정의 시행착오와 교훈이 있는지, 기록학계에 보고할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5.18기록관의 아카이브 정식 서비스는 언제 오픈하는지....등을 논의했어야 했다. 수년간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자했던 DB구축 사업이 경과도 결과도 제대로 없이 흐지부지되는 것을 묵과할 수 있는걸까. 광주에서는 그게 가능한 것일까. '5.18'을 앞세운 사업은 그런 것을 용인해도 되는 것일까. 광주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명망에 어울리는 일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간다면 5.18조사위 기록의 광주 이관 요구 이유는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위원회의 기록이 국가기록원에 '보존'되어야 한다면, DB는 '당사자'인 광주와 공유할 수 있는지, 광주로 간다면 국가기록원의 제한적 공개 관행을 극복할 수 있는지, 나아가 과거사위 기록의 이관과 격납, 이후의 라이프사이클은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치적 '한 방'이 아니라 학문과 실천적으로 치밀한 설계와 장기적 전망이 필요한 일이다. 이것은 국가폭력 DB의 관리와 보존의 완전성에 관한 기록관리의 고민이 되어야 한다.
(국가기록원 이관이나 광주 5.18기록관 이관은 현실의 기록정보서비스 제공 역량이나 의지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3의 방안 또한 있다.)
그런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런 기사 [5·18 진상조사위 생산자료 84% ‘비공개’… 4년 조사 무용지물]는 진정성이 결여된 언론 플레이의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저런 기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우리는 대충 다 안다)
아쉽지만 그런 주제는 어쩌면 광주라서, 5.18이라서 애초에 논의조차 될 수 없었던 것일까. 어질어질하다.
전체 자료집은 링크 참고(pp. 189~239)
https://drive.google.com/file/d/1_KNeOKHxhWH3ux_ruGc52dMnnp2QdqoF/view?usp=drivesdk
덧붙임
1. 송용한의 발표는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의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 메뉴를 참고할 수 있다.
http://demos-archives.or.kr/violence_DB
"최종적 연구 성과물인 국가폭력 DB는 한국연구재단의 기초학문자료센터(Korean Research Memory)의 토대연구 DB 아카이브에 탑재·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장연희의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 국가폭력기록물의 권리와 책임을 묻다'는 너무 큰 주제라 좀 버거워보였다. 특히 대통령지정기록물 논의는 현장에서 개념과 맥락을 더 설명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3. 김태현은 토론에서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후에는 관료주의적 국가-행정 기록 관리체제가 기록의 생산과 공개를 점차적으로 축소시켜왔다"고 주장했다. 국민의정부(김대중), 참여정부(노무현)에서 시작된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한국의 동시대 기록관리가 발전했는데, 기록행정체계에 대한 적대 또는 곡해처럼 읽혀 안타까웠다. 사실을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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