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당연한 말이지만, 기록은 단순한 행정 문서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록은 권력과 역사적 진실을 둘러싼 정치 도구가 될 수 있다. 국가 폭력과 인권침해 사건에서 기록은 억압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진실을 밝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난 글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자행된 국가 폭력인 ‘더러운 전쟁(Dirty War)’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이번 글에서는 아르헨티나 사례에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TRC)’를 기록의 정치학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TRC 활동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권의 국가 폭력을 조사하고, 이를 공식 기록으로 남기면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촉진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진실의 공개가 분열된 남아공 사회의 완전한 통합을 확실하게 담보하지는 못했지만, 과거를 직시하고 대화를 촉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록을 통한 '진실'의 공개가 '화해'의 충분조건으로는 부족했으나, 화해의 첫 걸음을 위한 필수조건으론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록이 단순한 진실의 저장소가 아니라 특정한 정치 목적에 따라 구성되고 해석되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점에 우린 주목할 필요가 있다.
TRC의 구성과 활동
백인 우월의 인종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는 1948년 극우 성격의 국민당 정권에 의해 법률로 공식화되었다. 그러다 1990년을 기점으로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의 노력으로 1994년에 종식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끝난 직후인 1995년에 「국민통합과 화해촉진법」(Promotion of National Unity and Reconciliation Act)에 따라 TRC가 설립되었다. 이 위원회의 목표는 과거의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여 국가 폭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배상함으로써 범국가적인 화해를 도모하는 것이었다(Wilson, 2001).
TRC 초대 의장인 데스몬드 투투(Desmond Mpilo Tutu) 주교의 말처럼 "진실 없이는 화해도 없다."라는 기조 아래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아 위원회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 현장 검증, 관련 물건 및 기록 제출 명령, 증인 소환·신문·선서 요구, 사법허가에 따른 수색·압수, 사면, 피해자 배상 및 재활 권고 등 상당한 권한이 부여되었다(다만, 기소권까지 부여받지는 못했다.). 이러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TRC는 다음과 같이 세 개의 위원회로 구성되어 활동했다.
- 인권침해 위원회(Human Rights Violations Committee): 피해자 및 가해자의 증언 조사
- 사면 위원회(Amnesty Committee): 가해자가 진실을 밝힐 경우 사면 조치
- 배상 및 재활 위원회(Reparation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피해자 지원과 공동체의 화해를 위한 조치 마련
이러한 활동을 통해 TRC는 과거의 국가폭력을 공식적으로 기록함으로써 민주주의 이행을 돕고자 했다. 그 결과 TRC는 방대한 양의 공식 기록을 생산해냈다. 관련 기록을 유형화하면 다음과 같다.
- 공식 청문회 기록: 피해자 및 가해자의 증언 기록
- 사건 조사 기록(case investigation files): 특정 인권 침해 사건과 관련된 법적·행정적 기록
- 최종 보고서(TRC Final Report): 7권으로 구성된 TRC의 활동 결과물로, 아파르트헤이트 시기의 인권 침해 사례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권고 사항 등 포함
- 정부 및 경찰 문서: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국가기관의 공식 기록
- 군사 작전 문서: 과거 군과 경찰이 수행한 탄압 작전 기록
- 사면 신청 및 결정 기록: 가해자들이 사면을 요청하며 제출한 문서와 이에 대한 결정 기록
- 미디어 자료: 신문, 라디오 방송, 영상자료 등의 보도 기록
최종 보고서를 비롯한 관련 기록들은 TRC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이처럼 TRC의 활동에 따라 만들어진 기록들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에 대한 조사 보고서 역할에 한정되지 않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새로운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국가적 정치 도구로 사용되었다.
정치의 기록화: 국가 정체성을 위한 역사 서술
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남아공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의 폭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서사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Gibson, 2004). 그래서 폭력의 책임을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논의하면서, 과거의 인권침해를 '남아프리카 사회 전체의 문제'로 만들 수 있었다(Wilson, 2001).
포르타윈(Fortuin, 2020)은 TRC가 단순한 과거사 정리 기구를 넘어, 탈(脫)아파르트헤이트 사회에서 통합적 정체성을 설계하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였음을 밝힌 바 있다. 특히 TRC가 치유·용서·화해라는 담론을 통해 새로운 사회질서를 정당화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국민통합을 추구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TRC가 민주화 이후 ‘무지갯빛 민족(rainbow nation)’이라는 통합적인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어떤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정체성·권력·정의가 어떻게 상호교차하는지 분석했다.
남아공의 기록학자 해리스(Harris, 2002) 역시 TRC의 기록 생산 과정을 분석하며, 기록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특정한 정치 목적을 위해 구성되고 해석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기록이 역사적 사건을 전면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해리스는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억압적 정권하에서 기록이 어떻게 권력 유지의 도구로 작용했으며, 반대로 민주화 이후 기록이 사회 정의와 치유의 도구로서 어떻게 재해석되었는지에 관해 기록의 정치학 관점에서 고찰했다. 그러나 같은 관점에서 역으로 TRC의 활동이 '기록의 정치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비판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흑인 저항 단체의 폭력 행위에 대한 선택적 기록화
TRC의 조사 활동은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백인 정권(특히 국민당 정부)의 조직적인 폭력과 인권 침해에 초점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일부 흑인 저항 단체의 폭력 —주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무장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다. 이로 인해 TRC는 과거의 폭력을 전체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일정한 정치적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기록화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Wilson, 2001). 물론 위원회의 결과 보고서에 ANC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도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전체 구조와 서사의 비중은 백인 정권의 국가 폭력 규명에 크게 치우쳐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두 번째, 가해자 증언의 신뢰성 문제
TRC는 가해자에게 사면을 조건으로 진실을 증언하도록 유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가해자들은 형사 처벌을 면하기 위해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일부 피해자와 인권단체는 사면 조치가 "진실에 대한 보상 없는 사면"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제도의 한계는 사면 제도가 정의 실현보다 정치적 타협에 더 가깝다는 평가로 이어졌다(Foster, 2013). 특히 사면을 신청한 증언자들의 진술에 대한 검증 절차가 부족했기 때문에 증언의 일관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았으며, 이에 TRC 내부에서조차 증언의 진실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세 번째, TRC 기록물의 접근 제한 및 폐기 문제
TRC 활동의 결과로 수집된 방대한 기록들은 아카이빙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 현대사의 귀중한 자산이 되었으나, 일부 자료는 정치적·법적 이유로 폐기되거나 일반 공개가 제한되었다. 특히 사면 신청자들의 개인 정보나 민감한 국가 정보가 포함된 일부 문서가 '국가 안보’ 등의 사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피해자 유족과 연구자들 사이에서 기록의 투명성과 알 권리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포셀과 심슨(Posel & Simpson, 2002)은 TRC가 ‘국가 화해’라는 정치적 대의를 앞세운 나머지 기록의 완전성과 공개성을 일정 부분 희생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TRC 보고서는 과거 사건에 대한 조사 기록의 수준을 넘어선, 특정한 정치·도덕적 목적을 가진 내러티브 구축을 위한 역사 서술의 일환으로 바라볼 수 있다. TRC는 국가적 화해와 통합이라는 목표 아래 과거의 폭력과 인권 침해를 특정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했다. 보고서는 법적 진실(legal truth), 개인적 진실(personal truth), 사회적 진실(social truth), 치유적 진실(healing truth) 등 다양한 진실 개념을 통합하려 했으나, 이 과정에서 복잡한 역사적 맥락과 다양한 기억이 단일한 국가적 서사로 정리되는 한계를 보였다(Posel, 1999).
특히 TRC 보고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을 통해 ‘공식적인 진실’을 만들었지만, 이 진실이 모든 집단의 경험과 기억을 포괄하지 못하고 일부 목소리(이를테면, 젠더 문제라든지)는 상대적으로 배제하거나 축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TRC 보고서가 남아공의 과거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임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가 완전한 역사적 진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즉, 특정한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구성된 ‘공식 기억’임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록의 정치화 문제는 한발 더 나아가 ‘아카이브 침묵(Archival Silence)’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TRC는 어떻게 ‘아카이브 침묵’을 유도했는가?
미국 SAA의 용어 사전에는 인류학자 미셸 롤프-트루요(Michel-Rolph Trouillot)의 저서 『과거 침묵시키기: 권력과 역사의 생산(Silencing the Past: Power and Production of History)』을 인용하여 ‘아카이브 침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비의도적 또는 의도적인 문서화의 부재나 왜곡으로 인한 역사 기록의 공백
SAA, Dictionary of Archives Terminology
TRC는 가해자의 진술을 통해 인권침해 사건을 기록화하였는데, 이 진술은 '사면'이라는 법적 이익과 맞물려 있었다. 이는 가해자의 선택적 진술을 유도했고,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경험과 진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침묵의 기록’을 생산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피해자의 기억이 기록되지 못하거나, 가해자의 서술로 ‘대체’된 아카이브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결과를 낳고, 침묵의 아카이브를 확산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TRC는 주로 국민당 정부의 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이에 비해 ANC의 폭력 행위나 내부 반대자의 탄압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하는 등 특정 정치 집단의 서사를 역사화함으로써 다른 집단의 서사를 축소 또는 배제하였다. 이는 ‘포섭과 배제를 통한 기록의 침묵(silencing through inclusion and exclusion)’을 야기하는 중요한 기재가 된다. 이는 TRC 기록이 새로운 민주주의 서사를 구축하는 데 있어 정치적 타협의 도구로 활용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권력의 언어가 어떻게 기록을 통해 정치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TRC의 일부 기록에 대한 물리적인 접근이 차단됨으로써 이 기록들이 사실상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는데, 이는 자연스레 '기록의 구조적 침묵(structural archival silence)'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윌슨(Wilson, 2001)은 TRC의 데이터베이스와 기록 방식 자체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이야기를 기록할지 결정함으로써, 특정한 정치 서사와 도덕적 교훈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 역시 TRC가 일부 사건과 인물에 대한 선택적 조명 또는 배제를 통해 아카이브의 구조적 침묵을 야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TRC 아카이브: 정의인가, 침묵인가?
TRC 사례는 아카이브 침묵의 문제를 "누가 기록할 수 있고, 누구를 기록에서 배제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으로 확장시킨다. 피해자 중에서도 여성, 성소수자, 농촌 거주자, 언어적 소수자 등은 증언의 장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들의 경험은 TRC 기록에 거의 반영될 수 없었다. 이는 해리스(Harris, 2002)의 말처럼 아카이브가 단순한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사회적 포섭과 배제의 경계선을 따라 움직이는 권력 장치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아카이브 침묵에 대응하여 TRC의 활동이 종료된 이후, 일부 시민단체의 활동과 몇몇 공동체의 기록화 프로젝트를 통해 TRC 아카이브에 대한 “보완 아카이브(counter-archive) —경우에 따라서는 ‘대항 아카이브’로 해석될 수 있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지역 공동체에서의 증언 재수집, 민간 주도의 구술사 사업, 미공개 자료의 복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노력은 아카이브 침묵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비판적 실천과 활동을 통해 해체될 수 있는 동적인 권력 관계임을 보여준다.
보완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기록 실천 활동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Bhebhe & Ngoepe, 2022).
✅ 남아프리카역사아카이브의 TRC 구술사 프로젝트
- 남아프리카역사아카이브(South African History Archive: SAHA)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위트워터스란트대학교(University of the Witwatersrand) 역사자료 연구소(Historical Papers)와 공동으로 TRC 구술사 프로젝트(TRC Oral History Project)를 수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TRC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들의 구술 증언을 수집하여, TRC의 공식 기록에서 누락되었거나 충분히 조명되지 않은 경험과 시각을 보완하고자 한 것이다. 수집된 구술기록은 디지털 형태로 아카이빙되어 연구자 및 일반 시민에게 공개되고 있다.
✅ 시놈란도 센터의 기록화 작업
- 시놈란도 센터(Sinomlando Centre for Oral History and Memory Work in Africa)는 콰줄루-나탈대학교(University of KwaZulu-Natal)와 함께 아파르트헤이트 시기에 억압 받았던 공동체의 기억을 수집·보존하고 있다. 이 센터는 특히 여성, 아동, 농촌 지역 주민 등 기존의 공식 기록에서 소외되었던 집단의 구술 증언을 통해 TRC가 남긴 아카이브 침묵을 해체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GALA의 퀴어 아카이브
- GALA(Gay and Lesbian Memory in Action)는 1997년에 설립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사회적·법적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GALA 역시 주로 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성소수자 개인과 단체의 경험을 수집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이성애 중심적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었던 목소리를 아카이빙해오고 있다. GALA의 아카이브는 위트워터스란트대학교의 역사자료연구소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으며, 연구자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 HYMA의 대항 음악 아카이브
- HYMA(Hidden Years Music Archive)는 1990년에 음악 프로듀서이자 공연 기획자인 데이비드 마크스(David Marks)가 설립하였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기 있는 대안 음악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아카이브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시기에 억압되었던 문화적 표현을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스텔렌보스대학교(Stellenbosch University)의 아프리카 오픈 연구소(Africa Open Institute for Music, Research and Innovation)에서 관리하고 있다.
나가며
남아프리카공화국 TRC는 기록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구성하고자 했지만, 그 과정에서 다수의 침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는 기록이 ‘말해진 것’뿐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것’ 또는 ‘말해질 수 없었던 것’에 주목해야 함을 보여준다. TRC의 활동과 기록들은 아카이브 침묵이 기록의 정치학 관점에서 정치적·제도적·언어적 층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TRC 보고서의 일부 사례는 기록이 단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되고 제한될 수 있는 ‘기록의 정치화’와 ‘정치의 기록화’ 간의 변증법적 긴장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경우라 하겠다(김장환, 2024). 이처럼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국가적 사업에서조차 기록이 권력에 복무하는 기록의 정치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 소위 ‘민주진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좌우를 막론하고 기록은 진실을 보존하는 수단이자 동시에 어떤 진실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 한복판에 아키비스트의 역할이 존재함을 우린 동시에 상기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글을 마무리하고 퇴고하는 즈음에 몇몇 신문기사가 눈에 띄어 한국의 경우를 덧붙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남아공 TRC에 해당하는 위원회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는데, 바로 지난 2005년 참여정부 시기 설립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그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설립되었고,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ㆍ학살ㆍ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법 제1조).
즉, 진실화해위원회는 일제강점기부터 권위주의 정부 시기까지 광범위한 사건을 조사함으로써 과거사 정리를 통해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1기는 2005년에 시작해서 2010년에 종료되었고, 제2기가 2020년에 시작되어 조만간 종료될 예정이다. 남아공의 경우 일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TRC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국가적 통합을 위한 공식 서사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진실화해위원회의 경우 정권 교체의 여파로 국가 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보수 진영의 반발로 인해 정치적 논란에 휘말렸다. 그 결과 한국의 진실화해위원회의 기록은 심각한 '호더(hoarders) 증후군'을 앓고 있는 국가기록원의 서고 안에 들어가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도 오는 11월 종료될 예정이지만, 활동 결과는 ‘조사 중지 2000건 이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고, 그나마 이 기록들 역시 곧 국가기록원의 서고에서 깊이 잠들게 될 운명에 처해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기록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광주일보>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과 관련하여 “진상조사위가 4년간 수집한 서류 284만여쪽과 4.5TB 분량의 기록물이 국가기록원에 수장돼 있어 자료를 못 구하고 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우 화해를 위한 필수조건인 진실을 담은 기록들이 깊은 아카이브 “침묵” 속에 빠져 있다. 국가 아카이브가 그 책무를 방기하고 있는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을 되짚어 볼 때, 깊고 깊은 아카이브의 침묵 속에서 기록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결국 이 글을 읽는 우리들의 몫일런지도 모르겠다.
📚 참고 자료
- Bhebhe, S., & Ngoepe, M. (2022). Building counter-archives: Oral history programmes of the Sinomlando Centre and Memory Work in Africa and the South African History Archive. Information Development, 38(2), 257–267.
- Fortuin, B. J. (2020) The Interconnectedness of identity, power and justice. Leviathan, 11(1), 25-28.
- Foster, D. (2013). Memory, Politics, and Truth in Post-Apartheid South Africa. Journal of Southern African Studies, 39(2), 315–332.
- Gibson, J. L. (2004). Overcoming apartheid: can truth reconcile a divided nation? Politikon, 31(2), 129–155.
- Harris, V. (2008). Archives and Justice: A South African Perspective. The American Archivist, 71(2), 560-564.
- Posel, D. (1999). The TRC Report: What Kind of History? What Kind of Truth? Paper presented at the Wits History Workshop: The TRC; Commissioning the Past.
- Posel, D. & Simpson, G. (2002). Commissioning the Past: Understanding South Africa's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Witwatersrand University Press.
- Wilson, R. A. (2001). The Politics of Truth and Reconciliation in South Africa: Legitimizing the Post-Apartheid Stat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59–64.
- 김장환. (2024). ‘기록의 정치학’에 관한 이론적 검토: 발터 벤야민의 이론을 중심으로. 기록학연구, 82, 87-128.
- 이하 본문에 링크가 있는 문서는 생략함.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