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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시간>, 그리고 불편한 아카이브

2026.07.31 | 조회 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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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dune

지난해 봄,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혼란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정치적 대립으로 표출된 젠더 갈등은 전략적으로 구조화되어 갔다. 이 시기에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Adolescence)>이 넷플릭스로 공개되며 ‘인셀(Incel)’ 문제는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디지털 시대의 청소년 성범죄와 SNS를 통해 확산되는 왜곡된 남성성, 여성 혐오와 사이버불링, 그 뒤에 숨어있는 플랫폼 기업까지 수많은 사회문제를 담아내며,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는 학교 교육용 수업 콘텐츠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원테이크 영화 촬영 기법이나 연출, 배우들의 연기 모두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Adolescence)> ⒸNetflix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Adolescence)> ⒸNetflix

온라인 혐오 언어와 이미지, 인셀 커뮤니티에서 유통되던 ‘레드필’ 서사는 알고리즘과 플랫폼 간 이동을 통해 재생산되고, 이 과정에서 조직적 여론 왜곡까지 지적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게 된 극단적 갈등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누적되고 방치되어 온 혐오의 언어에 대한 뒤늦은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언어와 이미지는 특정 커뮤니티에서 생성되고 SNS를 통해 유통되다가 문제가 지적되면 플랫폼 정책에 의해 banned 되거나 삭제 조치되며 사라진다. <소년의 시간>에서도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부모도, 학교도, 공권력도 허둥지둥 제이미의 휴대폰과 SNS를 뒤지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다. 인셀 현상은 실제적인 위협이 되며 인셀 테러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른들은 그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정책은 언제나 현실에서 문제가 발생한 뒤, 심지어 그것이 휘발된 뒤에야  디지털 흔적을 쫓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되짚어가려고 한다. 그 사이 결정적인 증거는 삭제되고, 문제의 ‘사건 현장’인 온라인 커뮤니티는 어른들의 접근이 어렵거나 이미 다른 공간으로 옮겨간다. 

 

디지털 공간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혐오와 폭력의 언어는 사라져야 마땅한 유해 콘텐츠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연구해야 할 자료가 필요하다. 이 딜레마에 아카이브는, 그리고 아키비스트는 어떤 질문을 갖고 있어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 아카이빙 사례들을 공유한다. 

 

온라인 극단주의와 테러리즘 연구 컨소시엄 VOX-Pol은 12개국의 30개 회원 기관으로 구성된 글로벌 네트워크 연구 프로젝트로 EU의 펀딩을 받아 2022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백인 우월주의, 반유대주의 네오나치 포럼 등의 게시물을 광범위하게 크롤링하여 데이터셋을 구축하였다. 연구팀의 특성에 부합하는 대규모 데이터셋을 1.5억 건에서 수억 건에 이르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오픈 액세스 데이터셋으로 공개한 결과물도 있다. 

https://voxpol.eu/researcher-resources/

 

메릴랜드 대학교의 Jennifer Golbeck 교수는 온라인 극단주의 연구를 위한 대규모의 데이터셋을 구축했다. 2016년에서 2023년 기간 동안, 인셀 관련 커뮤니티에서 920만 개의 포스트와 122,079명의 사용자 데이터를 익명 처리하여 데이터셋으로 만들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인셀 포럼 아카이브를 재구성하고, 극단주의 커뮤니티 특유의 언어를 식별하여 이것을 사용하여 급진화를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들 커뮤니티의 내부 역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플랫폼에 흩어져 있고, 차단되어 있거나 삭제되어 있는 게시물을 아카이빙 해야 했으며, 실제로 현재 접근할 수 없는 게시물까지 신중하게 복원하여 공개했음을 명시하였다. 연구 내용의 민감도를 고려하여, 자세한 연구 결과나 용어는 이 글에서 재인용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데이터셋을 구축할 때 윤리적 문제를 신중히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구자는 공개된 인터넷 게시물에서 수집하였지만 사용자 이름은 익명화했고, 수집된 이후 사용자가 해당 포럼에서 게시물을 삭제했을 수 있기 때문에 데이터에 대한 전체 접근은 불가하며, 별도의 요청 시 개인정보보호 및 민감성 문제, 윤리원칙의 동의를 거쳐 접근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Golbeck, J. (2024). A Dataset for The Study of Online Radicalization Through Incel Forum Archives. Journal of Quantitative Description: Digital Media, 4. https://doi.org/10.51685/jqd.2024.004

 

이러한 아카이빙 시도는 필요한 것일까. 

이들의 언어와 이미지, 서사가 형성되는 구조, 전파되는 양상을 이해하지 못한 채 뒤늦게 개입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혐오의 표현은 반복적으로 전파되며 확산되고 재생산된다. 콘텐츠가 차단되고 삭제되어도 재생산 구조 속에서 혐오의 언어는 반복적인 패턴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소년의 시간>처럼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후 뒤늦은 후회와 무력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 개입과 조치가 필요하다. 앞선 사례의 연구처럼 극단적 커뮤니티 내 지표가 되는 특유의 언어 패턴을 추적하는 아카이브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아카이빙은 신중하게 시도되어야 하며, 기존의 아카이빙 방법론과는 달라야 한다. 아카이빙 된 유해 콘텐츠 자체가 유통되지 않도록 통제하고 접근을 제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며, 익명화와 인용 방법에 대한 엄격한 규정도 마련되어야 한다. 연구 결과의 공개 과정이나 아카이브 기술의 과정에서 이 콘텐츠의 서술을 통해 내용을 유통하거나 접근점을 제공하는 결과에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아카이브는 이들 콘텐츠의 보존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완결된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문제를 실증적으로 이해하고 개입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온라인 콘텐츠가 생성되고 유통되고 확산되는 이면의 사회적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 아카이빙의 목적이 있다. 

 

이 불편한 아카이브는 아키비스트가 아카이빙 하는 과정도, 연구자가 연구하는 과정도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다. 

VOX Pol 프로젝트 중 REASSURE(Researcher Security, Safety and Resilience project) 연구는 이 문제를 명확히 드러낸다. 온라인 극단주의나 테러리즘에 대한 학술 연구자들이 반복적으로 폭력적이고 불쾌한 콘텐츠를 다루게 되며 발생하는 정신 건강 문제나 안전 문제에 대해서 그간의 지침이나 연구가 없었음을 지적하며 연구자 복지 문제에 대해 문서화하고 연구자 윤리 및 안전에 대한 헌장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더불어 실무 가이드인 Researcher Welfare도 제공하고 있다. 유해 콘텐츠 노출에 대한 회복탄력성에 대한 조언,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이미지의 처리 방법 등에 대한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https://voxpol.eu/introducing-the-reassure-project/

https://voxpol.eu/researcher-welfare-2-wellbeing/

아카이빙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부담은 아키비스트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카이브 기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자극적 이미지의 최소화 방안, 심리 지원 방안, 업무 로테이션, 근무시간 제한 등의 방법도 병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분명 불편한 아카이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현실 세계로 실재화되는 폭력과 갈등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시도일 것이다. 그 불편함의 무게만큼 신중하고 통제된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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