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어머니께서 집을 이사하셨다. 어머니 혼자 사시기에, 이번에는 좀 작은 아파트로 들어가셨다. 불필요한 물건 중 상태가 좋은 것들은 당근에서 판매하고, 예전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보냈다. 보지 않는 책들과 문서들은 선별하여 대량 폐기하였다. 그렇게 몇 번인가 어머니 댁에 방문하여 이사 전 정리를 도와드리기도 했다. 이사 후 어느 날 어머니 댁으로 가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 예전 논문을 냄비 받침으로 놓았다. 어머니께서 보시더니, ‘그거, 니가 예전에 인쇄한 논문들을 모두 종이 재활용 박스에 넣어 놨길래, 아까워서 한 부는 남겨 놨다’ 라고 하셨다. 말씀을 듣고 냄비 깔개를 보니 내 논문이 아니라 옛 여친의 논문이었다. 어머니는 내 논문은 버리시고 그녀의 논문만을 남겨 놓으셨다. 다 같이 검은 색 표지에 금색으로 쓰인 제목이라 착각하실 만했는데, 재밌는 우연이다. 라면을 먹고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내 짐들을 풀었다. 그녀의 다른 흔적들 혹시 있지 않을까 하는 평안한 기대와 함께.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지는 않지만, 분가 전의 물건들이 새집까지 딸려 왔다. CD, 카세트, 사진 앨범과 편지들. 편지는 십 대와 이십 대, 대학 때와 군대 시절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또 다른 그녀들의 편지도 있었다.

입대 전 먼저 입대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초안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내 시절에는 유난히 편지를 많이 받고 또 썼었던 것 같다. 실제로 학교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편지 쓰는 법을 가르쳤다. 수신인을 꾸미는 말로 편지를 시작한다. 친애하는 XX에게, 존경하는 XXX 선생님께, 그리운 XX에게 라고 쓴다. 줄을 바꾸고 날씨나 계절, 최근의 상황 등으로 서두를 끌어낸다. 다시 줄을 바꿔 본문을 시작하고, 그 분량은 편지 전체의 70% 정도 되도록 유지한다. 끄트머리에는 앞서 쓴 글을 정리하거나, 말을 줄이며 감상을 넣기도 하고, 다음 편지나 만남을 기약하기도 한다. 날짜를 쓰고 본인의 이름을 쓴다. 이름 앞에 ‘부산에서’, ‘가을 문턱에서’, ‘그리워하며’ 라고 써서 당시의 상황이나 감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못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P.S.’ 혹은 ‘추신’ 이라고 쓴 후 마저 짧게 적는다. 이런 기본 형식을 따라 어버이날에는 부모님께,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께, 국군의 날에는 국군장병들에게 편지를 썼다. 예뻤던 반 친구, 뭐든 잘했던 반장, 옆에 앉은 짝꿍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었다.
이동통신이 발달하고, 학생들은 입시교육에 치중하고, 어른들은 이메일을 쓰게 되었다. 손으로 편지를 쓰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유독 어떤 방면에서 손 편지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그건 아마도 사랑인 것 같다.
옛 연인의 편지를 보면서 나는 이 편지들을 신속하게 폐기해야 한다는 본능적이며 무의식적인 충동을 느꼈다. 아마도 이 기록정보가 배우자에게 유출되었을 경우 내가 감당해야 할 정신적 혹은 육체적 스트레스에 대한 큰 부담으로 인한 조건반사일 것 같다. 하지만 현재 나의 아내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또 나의 직업적 전문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기록관리전문가로서 어떻게 조언해 줄 것인가 라고 자문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처분 지침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아카이브가 설치와 운영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는 ‘기관의 기억(Institutional Memory)’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다. 기관의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도 보존되고 이용할 수 있는 그 기관의 집단적 지식을 의미한다. 이는 공식 기록 정보뿐 아니라 기관의 문화, 가치관, 주요 결정 배경에 관한 이야기 등 형식화되지 않은 지식도 포함된다. 아카이브는 기관이 가진 기억의 물리적 및 전자적 저장소 역할을 하여, 시간의 경과로 인해 중요한 정보가 소실되지 않도록 운영된다. 그래서 아카이브는 기관의 역사, 기능, 주요 결정 과정을 문서화한 기록을 수집, 보존하며, 이에 대한 접근을 제공한다.
‘나’ 라는 존재는 여러 개인의 집합체인 기관이 아니다. 하지만 통시적으로 보았을 때 나의 존재는 나의 경험으로 구성되고, 경험들은 기억이 되어 나의 정체성을 만들고 또 변화시킨다. 나는 불특정 제3자에게 나를 구성하는 경험과 기억을 제공할 의무나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의 경과로 인해 나라는 존재에 대한 나 자신의 기억이 소실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나의 아카이브가 필요하다. 내가 가진 기억과 경험의 물리적 전자적 저장소가.
일주일 전, 아버지 기일이었다. 아버지 제사에 음식을 차리고 절을 올리는 것은 중요하다. 더불어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돌아보고 추모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시점부터 한 해 한 해씩 반추해 보았다.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나와 어떤 추억을 함께 했는지, 이미 흐릿해지다 못해 사라지려 하는 기억을 꺼내 붙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함께 여행했던 단편적인 기억들만 떠오를 뿐, 이후 수십 년 동안 같은 나와 같은 세상에 계셨던 부친에 대한 기억을 정말 거짓말처럼 잡아낼 수가 없었다. 부친과의 과거가 지워진 듯했다. 결혼 전부터 분가하여, 따로 산 지 오래되었고 돌아가신 후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가정을 꾸리고 바삐 일하며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에너지를 써야 했기 때문에, 내 두뇌의 과거 기억 일부가 삭제되었을 수도 있다. 만약 아버지의 아카이브, 개인기억 저장소가 있었다면, 아버지와 나의 추억을 회상하게 해주고,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기억의 매개체들이 있었다면, 이 정도로 망각하지는 않았겠지, 하며 아쉬움만 남았다.
생각의 페이지가 다시 나 자신으로 넘어왔다. 내가 내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기억하게 될까. 미국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아카이브가 있어서 많은 사람이 기억해 주겠지만, 내가 죽으면 언제 누가 나를 기억해 줄까? 태어날 때부터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해 왔던 내 두 딸은 기억할까. 죽으면 어떤 의미조차 느낄 수 없겠지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사소한 인간적인 욕망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겠지. 그렇다면 적어도 내 딸들이 나를 기억하고자 할 때, 나와의 추억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매개체 정도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 아버지에게 그런 것이 있었다면 나는 망망대해에서 최소한 나침반과 섹스턴트는 가지고 추억의 정박지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사실 개인의 기억과 경험 저장소가 필요한 이유는 내가 나에 대해서 다시 알게 하고, 또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그들의 몸과 학년이 변해가는 것처럼, 뚜렷한 세월의 흐름이 기억에 각인되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반추하듯 나 자신의 경험을 반추해 보면 1년 전, 3년 전, 5년 전의 나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미간을 찡그리며 턱을 괴고 가만히 생각해 봐도 손가락에 꼽을 몇 가지 일들 말고는 심상이 흐릿하다. 기억의 단절이 대인관계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시간은 연속적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어쩐지 기억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불연속적으로 단절시킨다. 내가 나를 돌아보고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도 내가 만드는 경험과 기억의 저장소가 필요하다. 영화 <박하사탕>에서처럼, 아름다웠던 자기 자신을 세월 속에서 잊고 살다가 문득 망가진 자신을 깨닫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며 절규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보니 내 개인 아카이브 설립의 정당성과 근거는 충분하다. 이제 수집 정책과 다큐멘테이션 전략을 세우고 기록을 모으고 만들어야 한다. 공공기록은 업무를 수행하며 만들어지며, 이후 그 기록정보를 통해 업무를 재현 가능하거나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 아카이브에 수집되는 기록은 기록정보를 통해 기록 생산/접수 당시의 내 감정과 생각, 경험을 최대한 기억하거나 제3자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아카이브는 나의 아카이브다. 직관적으로 혹은 합리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버릴 수 있다.
그럼 전 여친의 편지는 내 아카이브에 소장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바로 폐기해야 하는가? 사랑했다면 보존하는 게 맞지 않을까? 사랑이 시작될 때 그리고 사랑하면서 편지라는 형식의 기록이 만들어졌다. 만약 한평생 지속되는 사랑이 있다면 사랑이라는 내용으로, 추억이라는 맥락 속에서 긴 시리즈의 기록이 생산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또 다른 사랑이 시작되기도 한다. 시리즈가 짧거나 길거나 그 사랑은 상대방의 이름으로, 혹은 연대기적으로 편철될 것이다. 그것이 마음 안쪽이든지 아니면 진짜 문서철이든지.
수집이 끝나면 접근과 이용의 문제가 남는다. 나의 무의식 속에서 전 여친 기록의 신속한 폐기를 충동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보호기간을 책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다. 대통령 기록물의 보호 기간은 일반적으로 15년 이내지만, 대통령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물은 30년 이내로 보호 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 나는 내 삶과 내 아카이브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이고, 내 아카이브는 내 사생활을 담고 있으므로 30년 이내의 기간에서 나 이외의 접근과 열람을 제한할 수 있다. 나 스스로는 앞으로 십 년에 한 번쯤 삶을 돌아볼 때 나의 기록저장소를 열어볼 것 같다. 그리고 이 아카이브는 생의 마지막에 닿기 전에 내 인생을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줄 거로 생각한다.
나의 아카이브는 내가 만든 접근제한 보호정책으로 보호되지만, 실제로 물리적인 보호장치가 전혀 없을 것이다. 크지 않은 방 한쪽 구석에 놓인 상자 안에 들어있는 잡다한 물건들과 편지, 문서와 사진들이 전부이리라 생각한다. 다만 나의 두 딸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편하게 접근 제공을 허락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 설명해 줄 수 있는 기록들, 자신들의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매개체들을.
나는 가끔 딸들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편지 초안을 보관하게 되고 나의 딸들은 편지 원본을 가지게 된다. 그 편지 초안들도 내 아카이브에 보존될 것이다. 자신들의 아버지를 기억하게 하는 기록의 주인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나의 딸들도 나중에 알게 되면 조금 더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겠지 믿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받은 편지를 자신들의 아카이브에 보관할 수도 있겠지. 자기가 자신을 기억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 주기 바라면서.
나에게 사랑이 담겨있는 기록들은 그 대상과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영구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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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직선
제목부터 너무 파격적(?)이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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