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예술레터(연대)

잃어버린 이완을 찾아가는 즐거움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여지는 세계

2025.05.09 | 조회 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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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예술

가부장제에서 막 빠져나온 여성이 자기 돌봄과 자녀 돌봄의 균형을 새로이 찾아가는 이야기, 지금까지와 다른 구성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시도

우리가 삶에서 겪는 모든 사건들은 신체경험(Bodily experience)이다. 

한스 셀리에

 

잃어버린 이완을 찾아가는 즐거움

긴장과 이완, 그 감각적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가? 불필요한 긴장으로 몸을 쥐고 있는지, 적정한 긴장의 율동을 즐기고 있는지, 긴장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만큼 감각을 상실한 상태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가. 아니 이런 종류의 관심을 몸에 기울인 적 있는가.

2월 중순부터 시작한 소마(SOMA)학습이 12주차를 넘어가고 있다. 1주차에 나의 현위치, 몸 상태를 반영하는 감각운동기억상실증이라는 개념을 만났다. 감각운동기억상실증(Sensory Moto Amnesia), SMA는 특정 근육을 감지하고 통제하는 방식에 대한 기억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이는 생존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몸을 긴장시키는 반응이 체화되면서 이완을 잃어버린 만성 근긴장 상태로 노화와는 다른 신경계의 학습된 적응 반응이다. 다양한 움직임과 유연한 힘의 사용을 잃어버린 몸 상태를 반영하는 감각기억상실증이라는 개념은 내게 애도와 희망이라는 두가지 파동으로 다가왔다.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이완을 잃어버린 몸에 대한 애도였다.

"몸을 친절하게 대하고 있나요?" 소마학습을 하면서 만난 이 질문이 내 몸에 닿았을 때 , 시큰하고도 촉촉한 애도가 일렁였다. 이런 태도로 내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왔던걸까, 맑은 눈물이 잠시 일어났다 잠잠해질 때, 연이어 이완감이 찾아왔다. 한결 긴장이 풀리고 호기심이 즐거이 눈을 뜨고 슬며시 미소가 어렸다. 이것이 SOMA구나, 나는 안에서 인지하고 경험하는 몸, 1자 관점의 인식 주체, 몸을 발견했다. 바로 그 순간 희망이 감각되었다. 애도의 끝에 희망이 있다. 긴장을 감각할 때 비로소 이완을 초대할 가능성이 열린다. 

몸 밖의 모든 것들이 뜻대로 되지 않던 시절, 나는 몸을 생존 자원으로 썼다.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분주히 돌리던 쳇바퀴 시간은 내 몸에 어떤 신체 경험을 남겼는가.경직된 목과 굳은 어깨, 불필요한 애씀으로 분주한 움직임, 가쁜 호흡과 조이는 심장, 과거와 미래를 산만히 오가며 현재를 느끼지 못하는 불안한 주의. 과도한 긴장 상태라는 신체 경험을 반복적으로 새겼다. 나는 가만히 그 시절을 통과하게 해 준 몸을 애도의 눈길로 감각한다.

감각운동 '기억상실', 잃어버렸다는 것은 다시 회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회복은 '감각'에 있다. "턱을 열고 있나요?" 소마학습 1주차에 제일 먼저 감각해 본 것은 턱을 앙다문 상태와 살짝 열고있을 때의 몸의 차이였다. 턱을 열고 숨이 드나들게 하는 시작의 움직임, 그 순간 잃어버린 이완을 찾아가는 여정은 시작된다. 글을 읽고 있는 바로 지금, 잠시 날숨과 함께 턱을 열어보자. 얼굴의 긴장이 살짝 풀어지며 눈꺼풀이 느슨해지고 시야는 한결 열린다. 판단이 누그러지고 머리에서 맴돌던 에너지가 한결 땅으로 가라앉는다. 날숨을 충분히 하면 반사적으로 들숨이 일어난다. 애쓰지 않아도 채워지는 들숨, 그 자연스러운 호흡의 리듬을 음미해보자. 그 차이를 감각하며 부드럽고 친절한 움직임을 선택하기 시작할 때 신체는 이완을 체화(embodied intelligence)한다. 이완이라는 신체 경험을 몸에 한 겹씩 재학습한다.

소마의 어원은 고대그리스어, 살아있는 몸(living body)에서 온 것으로 스스로 깨어있고 주체적으로 느끼는 1인칭 주체로서의 몸을 뜻한다. 소마학습은 풍부한 감각을 바탕으로 살아있고 스스로를 느끼며 자신의 움직임 서사를 주도적으로 써 갈 수 있는 인식의 주체인 몸과 다시 만나는 과정이다. 소마학습은 우리 삶에 성공적인 노화(Successful aging), 성숙(maturation)이라는 나이듦에 대한 희망적 관점을 열어준다. 스트레스에 대한 근육의 긴장반응을 알아차리고 느리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통해 불필요한 긴장들을 한올씩 풀어주며 열리는 이완의 기쁨, 몸이 이완될 때 일어나는 유연하고 다양한 근육의 움직임의 경이, 이것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소마학습을 통한 신체 경험이다.  

소마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4년도에 한국명상학회에서 주최하는 '마음챙김과 트라우마'라는 주제의 워크숍에서였다. 줌으로 열린 워크숍에서 감각운동심리치료연구소 창립 트레이너이자 트라우마, 발달, 애착관련 전문 심리치료 전문가인 케쿠니민튼의 강의와 명상 실습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소마를 알아차리게 하던 명상 중 가이드 질문이 1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이 긴장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요?"

이 질문을 떠오를 때는 대체로 내가 과하게 긴장하고 있을 때다. 내가 '애씀'이라는 습관적 방어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신경계의 과다 각성상태에 해당한다. 신경계의 상태는 크게 과소 각성(해리/마비반응), 적정 각성(인내의 창/사회참여적 반응), 과다각성(투쟁/도피 반응)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인내의 창이란 사람이 가장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최적의 각성 영역으로 OK영역이라고 부른다. 당시 특별워크숍에서는 과다각성이나 과소각성을 인내의 창이라는 적정 각성으로 가져오기 위한 방법으로 신체 자각, 호흡, 움직임, 정렬, 그라운딩, 경계연습 등의 신체(somatic) 자원을 지원하는 방법 중 일부를 실습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다. 그 때 내게 소매틱(somatic) 자원이 울림있게 다가왔고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어났다.

소매틱 자원의 매력은 '현재'에 도착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지금, 여기라는 현존을 운동적인 언어와 함께 신체로 경험하게 한다. 내가 앉아있는 동안 엉덩이가 균형있게 의자에 닿아 있나, 발이 바닥에 안정적으로 접촉하고 있는가, 들숨과 날숨이 감각되는가, 심장박동이 어디서 느껴지는가, 이런 감각적 언어들과 함께 신체 내부를 감각하는 순간, 의식은 현재에 도착한다. 분노와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감각이라는 현재의 몸에 안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적 경험에서 일어나는 신체 내부 감각과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연습이 약물치료보다 긍정적인 면은 치료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부 감각을 알아차리고 부드럽고 느리게 움직일 때, 긴장이 이완으로 바뀌는 자기 안정화 신체 경험이 일어난다. 그 작은 변화를 맛볼 때, 몸에 대한 경이가 일어난다. '우와! 몸이 치료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현 상태를 감각할 수 있는 인지 주체구나. 아하! 몸의 부드럽고 느린 움직임은 각성을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인내의 창으로 데려가주는구나.' 

우리 몸의 근육은 한가지 행동, 즉 수축을 위해 디자인되었다. 수축이 끝나면 근육은 이완이라고 하는 본연의 상태, 무위 상태로 돌아간다. 근육이 의도를 가지고 수축한 후, 이완하게 되면 부드러워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자연적인 탄성력(natural elasticity)에 해당한다. 그런데 자극에 대한 과다 각성 반응으로 몸에 이완경험을 제공해주지 않게 되면 몸은 만성적인 긴장을 학습하게 된다. 수축했던 근육의 에너지가 제로 상태로 이완하지 않고 수축상태를 남기며, 이완되어 있을 때 소모되지 않을 에너지를 계속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본연의 이완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잃어버린 상태가 감각운동기억상실 상태이다. 소마학습은 잃어버린 이완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회복의 길이자 무위의 길이다. 

 

휴식이 없으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에 일종의 생존모드로 반응하게 된다.  오토바이로 고속질주할 때는 길가의 작은 돌멩이 하나도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사소한 모든 일이 중요한 것으로 부풀려지고 실제보다 더 급박하게 보이며, 실없는 절망감으로 그것들에 반응하게 된다. 

휴(休)/웨인 멀러

<쉬고 싶지만 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휴(休)> 에서 하버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이자 명상 전문가인 웨인 멀러는 안식의 시간이 '바쁨(忙-마음+망하다)'이라는 폭력으로부터 깨어나는 혁명적 도전이 될 수 있으며, 오직 휴식을 통해서만 생존모드의 반응으로 부터 깨어날 수 있다고 일깨워준다. 안전함을 감각할 수 있으려면 느린 속도가 필요하다. 천천히 차분히 느린 속도로 움직일 때,  내 속도 알 수 있다.

내 속에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지는 세계가 있다. 움직이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면 다리가 따라와 구부러진다. 몸은 중력에 저항하면서 신체의 모든 부분들이 서로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설계되었다. 움직이려고 애씀으로 몸의 자연스런 반사 작용을 방해하지 않으면 움직여지는 세계를 볼 수 있다. "호기심만 가지고 참여하세요." 통합예술교육 1년차, 나의 소마 선생님인 모미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느리고 부드럽게 움직여지는 몸을 탐험한다. 우리 몸 내부에는 움직임을 위한 경이로운 지지구조인 척추가 있다. 이 척추 감각을 다시 깨우는 서기, 앉기, 눕기, 뒤집기와 같은 움직임을 몸에 힘이 가장 덜 가는 방식으로 학습한다. 소마학습에서는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습자를 '탐험가'라고 한다. 2인 1조로 짝을 이루어 한 사람이 내부 감각으로 몸을 탐험을 하는 동안 이를 지지적 목격자가 되어 지켜봐주며 도움을 주는 짝은 '조력자'가 된다. 모두가 함께 움직임을 탐험할 때, 소마 선생님은 탐험을 함께 하는 전체를 향해 온기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숨을 마실 때, 몸에 어떤 변화가 있나요?"

"숨을 내쉴 때, 몸에서 무엇이 감각되나요?"

"척추 마디 마디 천천히 힘을 빼볼까요?"

"작은 시작의 움직임, 그 맛을 잠시 느껴보세요."

"발 끝에서 시작한 움직임에 몸의 어떤 부분으로 전달되나요? 움직임의 초대가 감각되면 그 부분이 참여하게 해보세요."

나는 이 지지적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호흡의 박동을 타고 현재의 일어나는 내부 감각 속에 몸을 담근다. 지금 이순간, 날숨과 함께 느슨해지는 감각, 서서히 열리는 부드러운 시야, 긴장이 이완으로 변화하는 그 미묘한 차이, 그 틈새에 경이로움이 있다. 몸은 단지 생존의 도구가 아닌 경이로운 자각의 주체이다. 감각을 바탕으로 움직임을 선택하는 1인칭 주체로서의 몸, 스스로 깨어있고 주체적으로 느끼는 몸이 바로 SOMA이다. 나는 SOMA를 회복하면서 쉬는 사람이 되어간다.

깃털의 터치, 이완의 바람.
깃털의 터치, 이완의 바람.

 

기도 옅은 온기에 기대 몸을 누여, 몸이 실은 모든 것들이 아래로 가라앉아.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일어나는 그 일을 바라 봐. 들숨이 만든 틈새로 긴장이 한 올씩 풀려, 날아. 날숨을 따라 애씀이 사그라들어, 녹아. 지구의 뿌리까지 흘러내린 무게가 속삭여. 내가 여기 있어. 중력의 지지에 기대 몸을 누여 지구의 피부에 부비적거리며 가벼워져.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여지는 세계가 있어. 부드러운 바람, 깃털 하나, 보드라이 피부에 닿을 때 반응하는 감각, 그 작은 시작의 움직임으로 이 세계에 입장해. 내 발이 돌기 시작하면 누가 이 초대에 응답할까. 귀로 듣지 않아도 일어나는 그 일을 들어 봐. 무릎의 참여, 골반의 호응 중심으로 모여드는 움직임의 허밍, 척추가 리듬을 타고 회전 춤을 추면 흉곽 사이 사이, 연이은 하품에 어깨가 돌고 열린 턱을 실은 목이 얼굴을 돌려 기쁨의 소식을 전해. 우린 연결되어 있어. 그래서 나는 가끔 눈을 바라 봐. 그리고 가끔 나는 귀기울여 들어. 몸이 하는 기도를.

 

To. 모두 다 돌봄예술가

매주 화요일 3시간의 수업, 부드럽고 느리게 차곡 차곡 이완을 몸에게 재교육합니다. 

내부 감각을 탐험하면서 긴장을 더 잘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 불필요하게 몸이 닿지 않으려고 양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있거나,

앉아있을 때 발에 힘을 잔뜩 주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날숨을 쉬며 힘을 내려놓아봅니다. 바닥에 기대고 무게를 흘려보내며 이완해봅니다.

어느더 소마학습 3개월, 감각-움직임 탐험을 통해 되찾은 이완의 맛은 실로 경이롭습니다.

 

모두 다 돌봄예술가님,

제가 이완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세가지 질문을 남겨 봅니다.

"이 긴장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지금, 턱을 앙 다물고 있나요, 느슨히 열고 있나요?"

"나를 친절하게 대하고 있나요?"

From.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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