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면 그날 일어나는 사건들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정렬'된 상태에서 생활하면 일을 조금 더 창조적으로 할 수 있고 몸에 가해지는 위험을 예측할 수도 있다. 그대가 반사적으로 생활할 때와 정렬된 상태로 살아갈 때의 차이를 인지할 수 있길 바란다. 한번 그 맛을 보게 되면, 생존만을 위해 애써 무언가를 성취하려 자신을 긴장시키고, 외부 환경 변화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태도를 멈추게 될 것이다.
<소마지성을 깨워라> 중에서/리사 카파로
쉬는 사람은 어떤 얼굴일까. 나는 적어도 일과 일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의 얼굴을 안다. 바짝 메마른 낙엽처럼 모든 색을 소진하고 바스락 거리는 얼굴. 가쁜 아침, 거울 앞에 선 까만 긴머리, 충분히 드라이 하지 않아 부스스한 반곱슬을 효율적으로 정돈한 반묶음에 단정한 무채색 얼굴.
나는 쉬는 사람의 머리를 하기로 했다. 먼저 활기가 감도는 색을 찾아 염색을 했다. 오렌지 빛이 감도는 브라운 컬러는 낙엽에서 단풍으로 얼굴 빛까지 생기있게 복원했다. 이것이 바로 퍼스널 컬러의 힘인가. 검은 색과는 작별이다. 염색 후 머릿결 손상을 최소화 하기 위해 3주라는 시간을 기다려 펌을 했다. 앞머리까지 빠글빠글하게 한껏 율동감을 자랑하는 곡선이 내 몸 가장 높은 곳에서 자유의 춤을 추도록 히피! 펌을 했다.
히피펌을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송별회에서 김광진의 <편지>를 부른 것이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첫 소절을 한껏 진지하게 불렀다. 모두가 빼곡히 둘러 앉은 비좁은 중국집 룸, 에코없는 강의용 마이크, 들릴랑 말랑한 MR 반주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별을 거하게 알리는데 쉬는 사람은 거침없다. 간주에서 혼자 허밍을 하며 2절까지 마쳤다. "아무나 어울리는 머리가 아닌데 잘 어울린다. 인디 가수 같아!”, ”그 있잖아, 그거 같얘. 히피!” 그렇게 내 펌의 종류는 한번에 간파당했고 줄리아로버츠 같다는 찬사도 받으며 작별의 자리에서 나는 쉬는 사람으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 했다. 머리가 다했다.
줄리아로버츠에 대한 연상은 선한 마음씨가 만들어낸 착시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줄리아 로버츠와 내가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2010년 영화화 되었을 때, 주인공 역을 맡은 줄리아 로버츠가 이탈리아의 한 벤치에 앉아 상큼한 젤라또 한 스푼을 맛보고 있는 모습이 포스터에 담겼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인생예찬의 타이틀과 무너진 삶을 떠나 진정한 삶을 살기위한 그녀의 자아 치유 여정은 나를 영화관에서 이탈리아까지 이끌었다.
2010년 여름, 3주간의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던 과거의 나는 결혼한 지 3개월 밖에 안된 신혼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지 1년 밖에 되지 않아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처음 맛보는 자유의 종소리였고 퇴근 후의 시간은 자유의 공간이었다. 수능과 임용고시라는 시험의 연속에서 빠져나온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어떤 삶을 만들어갈지 자유로운 탐구가 마땅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내게 삶은 선물 같았다. 월급이라는 안정적이고 당찬 포장지를 열면 내가 원하는 경험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오롯이 내 것이었던 선물 상자에서 나는 바라던 많은 것들을 꺼냈다. 드럼 배우기, 보컬 트레이닝, 직장인 프로젝트 밴드, 그림 전시, 이탈리아 3주 배낭.
스스로 번 돈과 일하지 않는 시간이라는 두 자원을 결합하니 자유라는 구조가 탄생했다. 구조가 생기니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해야만 하는 일로 점철된 반복적 직선의 움직임이 아닌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을 유연하게 시도해보는 곡선의 움직임이 생겨난 것이다. 곡선의 흐름 안에서 별걸 다 하는 듯 했던 선택들은 시간이 충분히 쌓이니 공통된 욕구의 박동임이 드러났다. 그것은 예술에 대한 사랑이었다.
움직임과 예술은 서로 영감을 준다.
움직임과 예술이 창조적으로 하나 되는 과정이
바로 삶이다.바바라 민델/심리학자
“너는 예술가야.” 내가 예술에 대한 사랑을 3주간의 이탈리아 여행으로 표현했을 때, 여행에 동행한 온기어린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그녀는 둘이 함께한 3주간의 여행에서 내게 교사라는 직업의 틀에 갇히지 않을 자유로운 정체성을 그려주었다. 20대 중반의 나는 외적인 몸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진에 담긴 내 모습을 보는게 불편했고 카메라가 켜지면 얼굴이 긴장되고 몸도 어색해지곤 했다. 그런 내게 여행지에서 만난 영감에 따라 춤추듯 다양하게 몸을 움직이며 사진을 찍는 순간을 즐기게 해준 건 그녀의 지속적인 지지의 목소리였다.
“아름다워! 예술이야!” 우리가 사진에 기록하는 것은 어떻게 보이느냐하는 외적 평가가 아니었다. 여행에서 느끼는 우리의 감탄과 영감, 삶의 자세였다. 우리의 눈은 밝아졌다. 평가에서 놓여난 유희적 시선이 찬란한 조명이 되어 주었다. 그 놓여남이 얼마나 즐겁고 신선했는지 그림 여행을 떠나겠다는 최초의 목적은 색 붓펜에서 카메라로 도구를 진즉에 갈아치웠다. 백지에 그림을 그릴 때 선택하는 다양한 색의 점, 선, 면처럼 우리의 움직임을 여행지라는 배경에서 선택하면 되는 것이었다. 여행의 시간이 지날 수록 소리와 움직임에 대한 제한에서 서서히 놓여났다. 여행의 중반을 넘어서자 우리는 거리의 악사에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었고 여행에서 받은 영감을 기록한 낱말들에 멜로디를 붙여 7개 정도의 곡을 만들었다. 그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소리와 움직임을 가지고 평가없이 놀 때 일어났던 창조성의 발현을 우리는 함께 보았다. 우리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지지적 목격자였다.
줄리아로버츠가 이탈리아 여행으로 나를 이끌었다면 예술에 대한 사랑과 창조성의 자연스런 표현으로 이끈 것은 여행 메이트, 벗이였다. 그 여행에서 우리는 벗이 되었다. 삶의 순간들에 온기어린 목소리와 지지적 목격자로 동행하는 사이, 벗과 함께한 3주간의 여정은 통합예술여행이 되어 있었다. 몸에 대해 외부에서 바라보는 3자 관점의 판단을 내려놓고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감정을 자유로운 소리와 움직임으로 밖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살아있는 몸(living body)은 스스로 깨어있고 주체적으로 느끼고 표현했다. SOMA라는 1자 관점의 몸,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소매틱(Smatic) 자원을 만난 것이다.
학습연구년제 합격으로 1년 동안의 안정적 수입과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다시 만났다. 이번에 쟁취한 자유로운 구조에서 나는 잃어버린 자원들을 회복하려 한다. <감각운동 심리치료/Pat Ogden>에서는 자원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자원은 삶의 도전에 맞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어려운 시기에도 안전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관계, 소매틱, 예술, 교육, 심리, 영적, 자연 등 범주가 다양해 풍부하게 탐색하고 확장해 갈 수 있다. 자원은 활용 목적에 따라 생존자원과 창조자원으로 나뉜다. 생존자원은 어려운 상황을 대처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방법을 말하고 창조자원은 배우고 성장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원을 말한다.
자신의 자원을 인식하고 필요할 때 그것을 끌어낼 방법을 알면 다양한 사건이나 상호작용에 보다 균형 잡히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적응하고 반응할 수 있다. 자원이 풍부하면 투쟁, 회피처럼 부적응적 반응이 아닌 한결 적응적이고 유연한 반응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원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게 해준 생존자원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 인정과 감사를 표현하면서 생존자원을 창조자원으로 전환하거나 몸과의 부드러운 재연결을 통해 잃어버린 창조자원을 회복하는 구체적인 인지-정서-행동 통합 치료법을 워크시트와 함께 제안한다.
쉬는 사람이 된 나는 쉬는 사람에서 바로 노는 사람으로 도약하고 싶었다.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노는 사람, 글과 그림과 놀며 미루어둔 창조성을 발휘하는 사람. 그러나 쉬는 사람의 머리를 한 나는 여전히 일하는 사람의 몸을 갖고 있었다. 왼쪽 무릎과 발목의 통증, 어깨와 목의 경직, 몸에 대한 감각들을 마비시키고 할 일들을 끝내려 애쓰는 습관, 내 몸을 생존자원으로 활용해온 선택의 누적이 굳어있는 몸, 습관성 근육 경직을 만든 것이다. 긴장과 애씀으로 삶을 안정시켜온 지가 5년이다. 머리의 곡선은 3주만에 되찾았지만 부드럽게 이완할 줄 아는 몸은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몸에게 쉬는 법을 다시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휴(休)~
휴, 이제 분주히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아.
휴, 이제 빨리 끝내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
휴, 이제 애써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아.
휴. 덕분에 충분히 안전해졌어.
휴. 덕분에 충분히 안정됐어.
휴. 덕분에 충분히 안도가 돼.
휴. 이제 느긋해져 볼까?
휴, 이제 천천히 해 볼까?
휴, 그래 볼까?휴(休)~
긴장감으로 몸이 경직될 때마다 조급함으로 호흡이 가빠질 때마다 부드러운 지지의 목소리로 신체적 안녕감을 초대할 필요가 있었다. 온기어린 목소리로 내가 나의 지지적 목격자가 되어 생존자원이 되어버린 일하는 몸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이제 쉬는 몸이라는 창조자원을 회복해도 된다고 충분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이완된 몸과의 재결합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내 몸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로 통합예술교육 1년 과정을 수강 신청했다. 통합예술교육은 내가 정한 연구 주제인 비폭력대화를 움직임과 놀이, 예술적 방법론과 함께 심화연습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 안에서의 자원을 탐구하고 소마틱스라고 하는 몸을 밖에서 바라보는 3자 관점이 아닌 1자의 주체적 관점에서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감각을 키워 자유로운 움직임을 재교육하는 과정이다. 매주 화요일 나는 서울로 SOMA 여행을 간다. 몸을 대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는데 1년이란 시간을 온전히 주기로 한 것이다. 3월, 지금 나는 신체적 안녕감이라는 잃어버린 자원을 찾아 나선 여행자다.
To. 모두 다 돌봄예술가
3월, 내 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3월은 무엇보다 도전이 되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생존자원을 활용하는 시기입니다. 일하는 시간동안 3월은 늘 긴장과 경직의 달이었습니다. 몸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를 강요하면서 안전감을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몸을 도구로 대하던 3자적 시선은 긴장과 경직, 계획과 준비, 애씀과 가쁨을 몸에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몸을 대하는 부드럽고 지지적인 태도를 다시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1년, 매주 화요일 포용하는 그룹과 함께 하는 통합예술교육과정을 제 몸에 선물합니다.
쉬는 사람이 된 저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안전감을 찾는 몸의 반응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습관성 경직이 된 근육들을 풀어주는 것, 부드러운 움직임과 느긋한 움직임을 해보는 것, 연속 몰입 하며 몸을 마비시키지 않고 몰입의 단위를 짧게 해서 몸이 쉬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빈도를 높이는 것, 이렇게 다른 속도와 다른 움직임을 시도 해봅니다.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아침 등교를 두 아이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의 몸이 여전히 가쁨이 감각되면 긴장과 애씀 반응을 작동시키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마다 '휴(休)' 하는 날숨을 내쉬며 몸에게 안도감을 불어 넣어봅니다.
어려움에 대처하게 해주는 생존자원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은 자신의 역량을 알아볼 수 있게 하여 자신의 자원목록을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3월, 정신없이 혼란한 적응의 과정에서도 이에 대응하는 나의 생존 자원(정신, 몸, 예술, 관계, 자연 등)은 무엇일까, 잠시 알아봐 주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이건 미래에 저에게 하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날숨 소리로 레터를 맺음합니다.
휴(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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