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예술레터

비작동 시간, Off time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2024.05.06 | 조회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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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예술

가부장제에서 막 빠져나온 여성이 자신만의 여성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지금까지와 다른 구성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시도

구원은 연이은 재앙의 작은 틈 속에 버티고 있다.

발터 벤야민

 

비작동 시간(Off time) 때때로 때와 때의 사이에 작은 틈을 만들어 내. 감속할 시간 마침내 멈출 시간 여기까지 합니다. 움직임을 거부할 시간 1분, 5분, 10분, 15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작은 틈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가능성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단순한 움직임 안에서 느리게 채집하는 시간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역할과 의무에 압도되어 스스로 가속페달을 밟다 타오르는 열기에 더 나아갈 수 없는 소진 상태에 해당한다면 후자는 의식적 감속 행위다.

‘쉬엄 쉬엄 하세요.’

잠시, 잠깐이라도 멈추어 감속해보라는 권유가 어떻게 느껴지는가? 가능하게 느껴지는가? 자신에게 적용 가능한 조언으로 느껴지는가? 얼마나? 내게는 도저히 그 말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던 시기가 있다. 두 아이가 마땅히 누려할 삶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과 육아 모두 충실히 해내야 했다. 그러나 거의 매일, 주어진 시간보다 요구되는 일이 훨씬 많다고 느꼈다. 빈번히 ‘이 시간 내에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해내야만 하는데.’ 과도한 생산성과 불안으로 마음이 산란해졌다. 숨이 짧아졌다 거칠어지다 얕아지곤 했다.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생산적으로 능력을 발휘해야 간신히 모든 일과를 가진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안의 가능성을 남김없이 하루를 운용하는데 써버리는 일상이 반복됐다. 행위와 행위의 끝없는 연결, 만성적 가속상태가 삶의 방식이 되어버리면서 만나게 된 것은 피로를 넘어 소진된 상태였다. 

소진된 인간은 피로한 인간은 훨씬 넘어선다. 피로한 인간은 단지 실현을 소진했을 뿐이다. 반면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하는 자이다. 피로한 인간은 더 이상 실현할 수 없다. 그러나 소진된 인간은 더 이상 가능하게 할 수 없다.

소진된 인간 중에서/질 들뢰즈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한 자, 그게 현재의 나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내가 재앙의 작은 틈 속에 버티고 있는 구원을 만나러 갈 때다. 삶의 가능성을 채집하기 위해 "여기까지 합니다!" 라고 비작동 시간(Off time) 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나에겐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잠시 휴식한 후에 다시 일상을 잘 운용하기를 기대하는 전략이라기보다 존재(Being)하는 법을 다시 익히기 위한 자기 교육이자 소진으로부터 나를 구원하기 하기 위한 처방에 가깝다. 

제니오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서 1분 1초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으려 하는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인간의 관심을 희소자원으로 규정하고 이윤 창출에 활용) 로 부터 관심의 주권을 되찾아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에 더욱 깊은 관심(장소인식-placefulness)을 기울이도록 경로를 바꾸는 비작동 시간을 제안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많은 것이 휴대폰 밖의 우연과 방해, 뜻밖의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기계론적 세계관이 없애려 하는 '비작동 시간 off time'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제니 오델

제니오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가 관심의 주권을 되찾는데 여러가지 무기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첫번째는 자기를 돌볼 수 있는 회복의 시공간이고 두번째는 깊이 있게 듣는 능력(딥 리스닝)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강력한 무기는 성장의 수사학에 취하지 않도록 하는 해독제다. 순환과 재생보다 생산성에 대해 특혜를 주는 성장의 수사학에 대한 해독제로 제니오델은 FOMO(the fear of missing out,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NOMO(the necessity of missing out, 기회를 놓쳐야 할 필요성) 또는 NOSMO(the necessity of sometimes missing out, 가끔은 기회를 놓쳐야 할 필요성)로 다시 상상할 것을 제안한다. 

제니오델은 관심의 패턴(내가 알아차리기로 선택한 것과 그러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 곧 자신에게 현실을 제시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관심의 주권을 되찾는 행위의 혁명적 잠재력을 알렸다. 관심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 연습은 명상과 마음챙김과도 관련이 있다. <명상과 마음챙김의 정의에 대한 고찰:마음훈련의 체계를 위한 제언(김정호/한국명상학회)>에서는 주의를 운용하는 방법에 따라 명상, 마음챙김, 긍정심리를 각각 마음 '쉼', 마음 '봄', 마음 '씀'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 명상훈련은 비사변적인 대상에 주의를 보냄으로써 욕구와 생각으로 보내지던 주의가 감소하여 욕구와 생각을 쉬게 하는 능력(마음기술)을 양성한다.  욕구와 생각이 개입하지 않는 순수한 주의(bare attention)를 운용하는 훈련이다. 마음챙김 훈련은 외부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에 순수한 주의를 보내는 능력을 양성한다. 마지막으로 긍정심리 훈련은 건강한 욕구와 생각을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능력을 양성한다. 위의 논문에서는 생각과 욕구를 쉬는 명상의 마음기술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 마음 챙김(생각과 욕구를 봄)을 하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의도적으로 감각에 주의를 보내는 연습을 하면 주의가 욕구와 생각으로 투입되는 정신자원이 감소하게 된다. 평소 불안이나 우울과 관련된 생각 반추과 습관화된 경우에 감각들로 주의를 보내는 훈련을 통해 주의를 재배치 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욕구와 생각이 모두 '쉬는 상태', 순수한 주의의 확보가 마음챙김보다 먼저라는 점이다. 

‘쉬엄-쉬엄-하세요.’ 이제 나는 이 말이 삶의 의미를 재배치하는데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를 안다. 이제 나는 비작동시간을 내 삶에 의식적으로 초대한다. 가끔 기회를 놓치기로 한다. 쉬엄_쉬엄_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기 위해 요즘 나는 하루 중, 10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틈을 마련하고 있다. 처음 10분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옅어진 호흡이 감각되었다. 숨을 쉬다보니 배 쪽에서 부터 이유없는 울음이 가슴까지 올라오나 싶다가 가라앉았다. 그렇게 울먹임이 찌꺼기처럼 올라왔다 사그라들고 나면 어김없이 주변이 한결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연두색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이런 색 꽃이 있었나, 이런 모양이었나, 전에 보지 못했던 자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듯이. 10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하는 선택은 생각보다 자주 내리기 어려웠다. 그 어려움으로 인해 10분이라는 정신적 이완이 얼마나 커다란 틈이며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인지를 체감한다.

'아! 구원은 작은 틈속에!'

조팝나무와 아이
조팝나무와 아이

To. 모두 다 돌봄예술가!

5월,

가능성을 모아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10분을 경험해보세요.

그 쉬엄-쉬엄의 틈 속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

들리는 모든 것, 보이는 모든 것을

온전히 느껴보세요.

순수한 주의를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요. 

 

비작동시간 off time 속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까요?

궁금합니다. 

From.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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