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는 시대의 사고 방식, 지성은 어디로 가는가

구술문화의 귀환: 영상으로 소통하는 세대

2025.07.02 | 조회 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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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문해력이 이 정도라니..." 교사 한탄하게 만든 사례들 [지금이뉴스] 
(출처: YTN https://youtu.be/Zvskevtxq-E?si=igQs3xLSHZnmrVu4)

들어가며: 구술 문화의 귀환? 영상 시대가 불러온 인지의 전환


“중식(中食)을 중국음식으로 읽는다.”

이 짧은 오독이 오늘날 한국인의 문해력 현실을 보여줍니다.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시대. 알쓸신잡 프로그램에서 김상욱 교수는 “문자를 쓰지 않던 구술문화에는 논리 자체가 없었다. 유튜브 같은 영상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져서, 인류가 다시 논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출처: youtube, 이응디귿디귿)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우리의 사고방식은 오히려 활자 이전 시대로 퇴보하고 있는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월터 옹의 고전,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를 펼쳐봅니다. 언어가 인간의 정신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변화의 경계에 서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오늘의 책 📕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출처: 문예출판사)
(출처: 문예출판사)

말로 기억하던 시대, 구술의 세계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의 《트로이에서의 트로이 목마 행진》 (The Procession of the Trojan Horse in Troy by Giovanni Domenico Tiepolo)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의 《트로이에서의 트로이 목마 행진》
(The Procession of the Trojan Horse in Troy by Giovanni Domenico Tiepolo)

글자가 없던 시대, 지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야기는 기억에 오래 남도록 운율과 반복으로 꾸며졌고, 말솜씨 좋은 사람은 곧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좋은 예죠.

“천재지변 같은 아킬레우스의 분노” 같은 상투적 표현은 당시 기준으로는 지성의 산물이었습니다.“

구술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하기 쉬운 방식으로 말하는 것, 그리고 청중과의 즉각적인 공감이었습니다. 말을 잘한다는 건, 군더더기 없는 논리보다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었습니다.

 

하드자(Hadza)어는 구술문화(oral culture)가 매우 발달해 있어, 이야기와 노래, 전설 등을 통해 지식과 전통이 대대로 입으로 전달됩니다. 문자가 없기 때문에 모든 지식과 문화는 구전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쇄 기술이 등장하면서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더는 말로 외울 필요가 없어졌고, 반복은 진부하게 여겨졌습니다. 사람들은 차분히 앉아 글을 읽으며 생각하는 법을 익혔고,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곧 논리와 구조, 간결함을 갖춘 표현력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구술문화가 지배적인 시대에 호메로스 스타일로 말하기는 지성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인쇄문화 이후, 호메로스 스타일로 글을 쓰면 장황하고 허세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지요. 지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책 <교양 고전 독서>, p. 296

 

문자가 만든 뇌의 지도: 인류는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가


문자문화는 사람의 사고를 더 추상적이고 논리적으로 만듭니다. 
문자문화는 사람의 사고를 더 추상적이고 논리적으로 만듭니다. 

문자는 단지 정보를 기록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구조를 바꾸는 인지 도구였습니다. 문자가 도입되며 인간은 언어를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말보다 글이 더 중요한 매체로 떠올랐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듣던’ 지식은 이제 개인이 혼자 읽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죠.

문자문화는 사람의 사고를 더 추상적이고 논리적으로 만듭니다. 실제로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삼단논법 같은 형식 논리조차도, 알파벳 문자문화의 발전 속에서 고대 그리스에서 비로소 등장한 개념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문자에 익숙지 않은 구술 사회의 사람들은 논리가 없는 게 아니라, 애초에 세상을 분류하고 추상화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상황에 맞게 사고했습니다. 즉, 구술문화에 익숙한 사람은 경험과 맥락 속에서 사고합니다.

 

예컨대 러시아 학자 루리야가 글자를 모르는 농민들에게 “눈이 있는 북극지역에서 곰은 모두 흰색입니다. 노바야 젬블라는 북극지역에 있으며 언제라도 눈이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 있는 곰은 무슨 색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까만 곰이라면 본 적이 있습니다만 다른 색 곰은 본 적이 없거든요."라고 답했죠 .  

p.101

종이를 보며 따지는 가설적 질문보다 눈앞의 경험을 중시한 답변인 셈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문자 문화가 등장하며 우리의 두뇌 회로에 얼마나 큰 재구조화가 일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논리보다 말'맛': 감정 중심 설득의 시대 


(출처: unsplash)
(출처: unsplash)

지금 우리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통해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모르는 게 생기면 책보단 영상을 찾고, 긴 글보다 요약을 선호하죠. 영상은 재미있고 빠르고, 구어체로 말해주니 훨씬 편하게 느껴집니다.

유튜브의 말하기 방식은 구술문화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즉각적인 반응, 말투의 리듬, 감정의 호소력. 이건 모두 “함께 듣고 느끼는 문화”의 요소입니다. 실시간 스트리밍이나 댓글창은 마치 과거 마을 광장에서 벌어지는 좌담회 같고, 밈과 짤방은 활자보다 더 직관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깊이 있는 사고는 사라질 위험도 커졌습니다. 한 번 보고 흘려버리는 영상은 기억에 오래 남지 않습니다. 유튜브 요약 영상에 익숙해지면,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며 책 한 권을 읽는 집중력이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를 민주주의의 위기로까지 진단합니다.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은, 복잡한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며 독해할 수 있는 힘에서 비롯되는데, 지금 그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겁니다.

 

기억에서 피드로: 콘텐츠 소비 방식의 대전환


첨부 이미지

소통 방식 역시 바뀌었습니다. 문자문화는 지연된 소통입니다. 글을 쓸 때 우리는 생각을 정리하고, 구조화하며, 말 대신 논증을 통해 설득합니다. 반면 구술문화에서는 설득의 힘이 감정, 억양, 분위기, 그리고 관계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요즘 유튜브나 SNS에서 자주 보이는 “제가 이런 말 하려고 영상을 찍은 건 아닌데요…”라는 말은, 겉으로는 조심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적 설득의 포문을 여는 방식이죠. 이처럼 ‘어떻게 말하느냐’에 설득력이 실리는 구조는 전형적인 구술문화의 특징입니다.

오늘날은 이 두 가지 소통 방식이 충돌하면서도 동시에 공존합니다.

문자문화에 익숙한 사람은 감정에 약하고, 구술문화에 익숙한 사람은 논리에 약하다는 식의 이분법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느 한쪽에만 머무는 사고방식입니다.

 

나가며: 디지털 구술성, 우리는 어디쯤 와 있나


(출처: unsplash)
(출처: unsplash)

월터 옹은 이를 ’이차적 구술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자문화 위에 다시 구축된, 디지털 기반의 구술문화죠. 우리는 여전히 글을 쓰고 읽지만, 동시에 말로 소통하고 밈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살아갑니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은 문자성과 구술성이 얽힌 혼합 문화입니다. 키보드로 쓰면서도 말투처럼 표현하고,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얹고, 짧은 영상으로 긴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전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는 걸까요?

결론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기술이 변할 때, 사고방식도 따라 변합니다. 우리는 지금, 감정과 논리, 관계와 구조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중요한 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지를 스스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태도 아닐까요?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다시 묻게 합니다. 지금 우리의 언어와 사고는 어디에 가까울까요?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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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고 쓰는 일은 줄어들고, 보고 듣는 방식의 소통이 점점 지배적이 되어가는 지금, 이건 과거로의 회귀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진화의 형태일까요?
  • 유튜브 요약 영상에 익숙해진 우리가, 긴 글이나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내는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면, 지성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 당신의 사고방식은 ‘논리와 구조’를 따라가고 있나요, 아니면 ‘감정과 억양’에 더 영향을 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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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채의 프로필 이미지

    금채

    0
    5 months 전

    읽고 쓰는 것을 지나서 영상을 보고 듣고, 영상을 만들기 위해 말하는 소통 방식이 언뜻 보면 구술문화 시대로의 회귀처럼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구술문화 시대에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말로 반복하고 외우고 전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말하고 듣는 소통 방식은 '영상'이라는 매체로 기록할 수 있기에 새로운 형태의 진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현재를 살고 있는 제 시선으로는 요약 영상이나 짧고 자극적인 숏폼에 익숙해지며 긴 글과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이 퇴화되고 그게 깊은 사고를 방해하는 것만 같아 이런 변화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문득 이 생각이 제가 '현재'를 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를 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문자문화가 도입되며 구술문화가 비효율적이고 덜 지성적인 것처럼 여겨졌지만 사실 구술문화 속에서 사고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라는 평가가 있는 것처럼,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디지털 기반의 소통 방식이 또 다른 평가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언어와 의사소통 방식에 따라 생각하는 구조가 바뀐다는 전제가 흥미롭습니다! 책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ㄴ 답글
  • T.drgn의 프로필 이미지

    T.drgn

    0
    5 months 전

    저는 평소 논리와 구조를 따라 사고하고 말하려는 성향이 강한 편입니다. 계획을 세울 때도 이성적으로 따져보고, 타당한 이유를 갖추려고 노력하지만 막상 실제 행동에서는 감정이나 순간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반드시 건강식을 해먹겠다고 마음먹고 퇴근하지만,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도착하면 ‘무슨 건강식이야… 그냥 시켜먹자’는 감정이 앞서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문자문화의 논리 구조를 따르려 애쓰면서도 실제로는 구술문화의 감정과 억양에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 글에서 말하듯이, 오늘날은 문자문화와 구술문화가 충돌하면서도 공존하는 시대이고, 어쩌면 저는 그 경계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아직 익히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거 같단 생각이 많이 듭니다. 결국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ㄴ 답글
  • 준리의 프로필 이미지

    준리

    0
    5 months 전

    굉장히 긴 글을 누군가가 대신 요약해주고 해석해주는거 만큼 내가 생각하고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어느정도 '정답'에 가까운 길을 찾을수 있다는게 사람들이 점점 쉬운길로 가려는 성향을 보인다는 생각이 살짝 드네요. 거기에 현대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는것도 환경적인 요인일수도 있겠죠. 얼마 전 뉴욕타임스 기사에 미국인 10명 중 6명이 책을 1년에 1권도 안읽었기 때문에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내용의 제목을 봤었는데 제목만 보고도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셀프 칭찬을 하였네요ㅋㅋ 뭐든 습관을 들이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이렇게 댓글 남기면서 글을 써보는 습관이라던지 긴 호흡을 가지고 하루 30분만이라도 벽돌책 읽기 도전해본다던지 같이 한숟에 배부를수는 없으니깐요. 그렇지만 구술도 분명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에서는 사람의 감정이 다 읽히지 않고 사람에게 감정이라는 요소는 엄청 중요하니...매번 좋은 레터 읽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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