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믿고, 빠르게 반응할까?
세상에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말하고, 책을 읽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죠. 그런데 왜 그런 이들조차도 가짜 뉴스에 휘둘리고, 군중 속에서는 판단을 잃어버릴까요?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는 1895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너무 생생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개인이 군중이 되면 개인일 때처럼 이성적으로 추론하지 못한다”(p.261)는 문장은, 단체 채팅방, 유튜브 댓글, 릴스 영상 속 리액션 문화까지 그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르 봉은 군중이 형성되는 순간, 개인의 이성은 흐려지고 감정이 먼저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이미지와 반복된 자극이 결합될 때, 그 영향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에조차 ‘혹시…?’라는 마음을 품고 맙니다. 르 봉은 말합니다. 군중은 언제나 진실보다 환상을 더 좋아한다고요.
군중은 언제나 진실보다는 환상을 더 좋아한다
p.121
군중은 불편한 진실을 오면하고 오류가 마음에 들면 그것을 신격화 한다. 군중의 마음에 환상을 심을 줄 아는 사람은 쉽게 그들의 지배자가 되지만, 군중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들의 제물이 된다.
p.132
오늘의 책 📕 <군중 심리>
조용한 감염, 빠른 모방: 알고리즘은 어떻게 똑똑한 사람도 움직이는가
우리는 매일같이 군중이 됩니다. 댓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릴스를 공유하는 그 순간, 스스로도 모르게 반응하는 군중의 일부가 되죠.
“군중은 행동하는 데는 빠르지만, 이성적 추론에는 소질이 없다”
p. 20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반응 속도가 극단적으로 빨라집니다. 감정은 이미지로 전달되고, 판단은 알고리즘에 의해 전파되며, 유행은 10초 안에 복제됩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이들이 ‘왜?’보다는 ‘누가?’, ‘몇 명이?’라는 정보에 따라 움직입니다.
여기에 익명성이 결합되면, 개인은 책임감 없이 감정만을 실행하게 됩니다. “함께 있으니 나도 무적이다”라는 착각은, 내 안의 교양이나 주저함을 잠시 무력화시키죠.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조용히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가짜 뉴스에 휘말리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릅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모방하는 성향을 타고났다. 인간에게 모방이란 하나의 욕구다. 물론 따라 하기가 아주 쉬워야 한다는 조건이 부는다. 모방 욕구 때문에 이른바 ‘유행’이란 것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진다. 여론이든, 사상이든, 무학운동이든, 혹은 단순한 이상이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영향을 거스를 수 있을까?
p. 150
학교는 왜 이성을 가르치지 않는가: 교육이 낳은 ‘군중형 시민’
르 봉은 ‘군중’이 만들어지는 배경 중 하나로 교육의 실패를 지적합니다. 그에 따르면, 현대의 교육은 창의력이나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대신, 공무원이 되기 위한 문제 풀이에 집중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도록 준비시키는 대신 오직 공무원이 되는 데 필요한 교육만 시킨다. 인생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거나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교육제도는 자신의 운명에 불만을 품고 언제라도 반란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는 프롤레타리아가 사회계층 맨 아래쪽에 형성되도록 만든다. 한편, 사회계층 상부에는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도 쉽게 믿는 경박한 부르주아가 위치하게 한다.
p.113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지 않아도 시험에 합격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은 사회계층의 아래에 불만을 품은 프롤레타리아를 만들고, 위로는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도 쉽게 믿는 경박한 부르주아를 양산한다”(p.113)는 대목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이렇게 훈련된 군중은 스스로의 판단을 갖기보다 ‘다수가 믿는다’는 이유로 진실처럼 받아들입니다. 토론을 거친 판단은 받아들이지 않고, 반복된 확언만을 진리로 여깁니다. 정말 필요한 교육은, 왜 믿게 되었는가를 의심하는 감각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은 오히려 그 질문을 제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단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왜 국가는 단어를 바꾸는가?
르 봉은 정치가와 권력이 군중을 다룰 때 가장 먼저 손대는 것이 ‘단어’라고 말합니다. “군중이 싫어하는 옛 명칭을 대중적이거나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지극히 혐오스러운 것도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p.128)는 문장은 단순한 언어 전략이 아닙니다.
인두세는 토지세로, 염세는 소비세로, 상납금은 간접세와 종합세로, 장인세와 동업조합세는 사업면허세로 바꾸었다. (…) 따라서 정치인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는 군중이 싫어하는 옛 명칭을 대중적이거나 적어도 중립적인 단어로 바꾸는 것이다. 단어의 힘은 실로 대단해서 지극히 혐오스러운 대상도 신중히 선택한 새 명칭을 붙이면 군중이 받아들일 만한 게 된다.
p. 128
말을 바꾸는 순간, 개념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고, 결국 판단도 바뀝니다. 그것이 단어가 가진 힘입니다. 군중은 복잡한 설명을 이해하기보다, 간단하고 명료한 ‘이미지화된 메시지’에 더 강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감세’라는 말은 아무 설명 없이도 호감이고, ‘규제’라는 단어는 쉽게 반감의 대상이 됩니다.
르 봉은 말합니다. “군중은 논리적 증명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며, 단어 하나가 전체 여론을 좌우할 수 있다”고요. 이제 단어는 권력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단어에 둔감해질수록, 그 권력은 더 강해집니다.
나가며: 똑똑함은 군중 속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르 봉은 말합니다. 문명을 만든 것은 언제나 ‘소수의 이성적 개인’이었다고요. 군중은 문명을 파괴하는 힘은 가졌지만, 세울 수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같이 군중으로 존재하면서도, 어떻게 개인의 이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비판적 정신이 결여된 군중은 극도의 맹신만 보일 뿐이다.
p. 266
정답은 단순하지만 어렵습니다. 이미지와 감정의 홍수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왜 이 말에 끌렸을까?’를 되물어보는 것. 이 질문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군중 속에서도 스스로를 의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이번 주 댓글에는 ‘내가 군중이 될 때를 막아주는 한마디’를 남겨보는 건 어떨까요? 예를 들면 “그럴듯한 말엔 이유를 두 번 생각하기”처럼요. 지금 이 순간, 내 안의 이성은 얼마나 깨어 있나요?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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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 우리는 언제 ‘내 생각’이 아닌 ‘우리 반응’으로 움직이게 될까요?
- 요즘 나의 언어, 누군가가 설계한 이미지와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건 아닐까요?
- 내가 마지막으로 “왜 이 말에 끌렸을까?”라고 자문해본 건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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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
군중심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지배자가, 깨어나면 제물이 된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ㅎㅎ 나는 지배자가 되고 싶나, 제물이 되고 싶나 생각해보면 또 여러 생각들이 들게 되네요. 내가 군중이 될 때 막아주는 한마디는 “잠깐, 너무 좋게만 생각한 것 같은데?”가 될 것 같아요. 덕분에 인문학을 재밌게 접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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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채
현대의 교육은 공무원이 되기 위한 교육에 집중한다는 데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시험 문제에 '맞는' 답을 골라야 합니다. 잘못된 제도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틈조차 제공하지 않게 됩니다. 저의 청소년 시기뿐만 아니라, 현재 아이들을 교육하는 환경을 살펴보면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편하고 안정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최고다' 혹은 '지위와 명예를 얻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어라'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공무원과 의사라는 직업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저 수단으로서만 직업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렇게 공무원이 된 아이들은 편하게 일하려고만 하고, 의사가 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돈만 바라보며 일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군중들은 공무원과 의사들을 향해 이기적이라며 손가락질하면서, 자신의 자식들 혹은 자식의 배우자가 공무원이나 의사이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너무나 모순적이라고 느끼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순된 지점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끔은 내가 너무 유난스럽게 생각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뉴스레터를 보니, 다수가 되면 비판적인 사고가 어렵다는 것을 보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군중이 될 때 나를 막아주는 한 마디보다는 행동이 있습니다. 뉴스레터에 나온대로, 깨어나면 군중으로부터 제물이 되어 물고 뜯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중들에게 어떠한 말을 던지기보다는 군중들 속에서 빠져나와 잠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 생각을 좀 더 예리하게 다듬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100년 전에 쓰인 책인데도 현재까지도 사람들의 행동 양상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놀랍습니다. 책을 꼭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뉴스레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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