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남긴 기록

끊어진 연결 사이, 여전히 사랑을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2025.11.19 | 조회 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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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해 책추천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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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네이버 포토)
(출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네이버 포토)

들어가며: 사랑이 부재한 시대에, 다시 사랑이라니


오늘은 오랜만에 소설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심지어 단편소설집이에요. 작년 봄 즈음 나왔던 소설이자 주변의 평이 좋아 추천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막 가을을 보내고 있어서 그런지 문득 이 책이 떠오르더군요. 봄과 가을의 분위기는 닮아있어서 괜히 더 떠올랐나 봅니다.

“사랑하고 왔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이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핵심 문장이었죠. 이건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감정을 압축한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짧지만 즐거웠던 휴가를 다녀온 듯,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소설 속 주인공의 이 대사는, 사랑에 상처받아 사랑의 직접 경험보다는 ‘환승연애’, ‘하트시그널’ 같은 프로그램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시원한 펀치를 날려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사랑은 어느새 인생의 중심이 아니라 부차적인 선택이 되었고, 관계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려는 일보다,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 더 우선순위가 된 시대이죠. 그 안에서 우리는 점점 혼자 사는 법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김기태 작가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그런 시대의 감정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소설집입니다. 사랑의 부재, 관계의 피로, 개인화된 삶의 구조 속에서 여전히 ‘연결’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을 읽는 동안 저는,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닮은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오늘의 책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출처: 문학동네)
(출처: 문학동네)

정 대신 거리 두기, 그게 어른스러움이라 믿는 우리에게


(출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출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이제 1인 가구는 너무나 익숙하고, 관계 중심의 사회에서 개인 중심의 사회로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정’을 주는 대신, ‘거리 두기’를 더 잘합니다. 필요한 관계만 남기고, 불편한 감정은 효율적으로 차단합니다. 그게 어른스러움이라 믿으면서요.

그러나 그런 삶의 방식 속에서 이상한 결핍이 생깁니다. 심지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아래층에는 어떤 사람이 사는지도 모르는 채 하루를 마칩니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는 작은 핸드폰 하나로 전 세계 사람들의 소식을 손안에서 실시간으로 접합니다. 단절과 연결이 공존하는 이 모순적인 일상 속에서, 우리는 점점 ‘누군가와 함께 있음’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바로 그 공백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작가는 화려한 서사 대신, 아주 작고 현실적인 순간들을 통해 이 시대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끊긴 대화창, 의미 없는 ‘잘 지내?’로 시작되는 안부 인사, 마음속으로는 아직 미련이 남았지만 굳이 다시 연락하지 않는 침묵의 시간들.

(출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출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이 모든 장면들이 우리의 일상과 너무 닮아 있어서 읽는 동안 ‘이건 소설이 아니라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그 단순한 깨달음 하나가 이상할 만큼 위로가 되었죠.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건, 우리 세대의 ‘고립’을 단순한 외로움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무관심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관계 속에서 지쳐버렸기 때문에 조용히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공허하지만 살아 있고, 단절되어 있지만 여전히 연결을 갈망하는 마음. 그 모순의 진폭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리얼리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출처: 영화 “her”) 
(출처: 영화 “her”)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쩌면 가장 친해지고 싶었던 이웃들의 일상 이야기를 선물처럼 받은 기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먼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지금 내 옆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처럼 느껴졌거든요.

각 단편마다 흘러나오는 대사들은 현실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무력하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았습니다. 모든 에피소드가 해피엔딩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그저 그렇게 끝나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고, 또 누군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하루를 마칩니다. 하지만 저는 그 평범한 결말들 속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원래 그렇게 단순하고 복잡하며,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으니까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그런 불완전한 삶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김기태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다고 느낀 건, 그가 인물들을 평가하거나 설교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비추되, 그 안의 ‘온도’를 포착합니다. 불안하지만 살아 있는, 외로우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체온 말이죠.

(출처: 영화 “her”) 
(출처: 영화 “her”) 

그래서일까요. 책을 덮고 난 뒤 저는 ‘공동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떠올렸습니다. 이 단어는 한동안 너무 낡고, 무겁게 들렸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기존의 공동체는 분명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막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SNS 속 거대한 네트워크가 아닐 겁니다. 대신 ‘사람 냄새 나는’ 아주 작은 연결들,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들일 겁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그런 연결의 가능성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낭만적인 희망보다는, 현실적인 가능성으로서의 연대.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시작점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너도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일. 그 사소한 행동들이 바로 우리가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방식이 아닐까요.

 

나가며: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꿈꾼다


(출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출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속 인물들은 사랑에 실패하고, 관계를 잃고, 혼자가 되어도 끝내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완전히 닫지 않습니다. 그 조용한 끈기가 이 책의 온도이자, 우리 세대가 여전히 품고 있는 희망 같았습니다.

결국 사랑은 거창한 서사보다, ‘내가 즐겁고 행복했으면 됐다’는 짧은 문장 안에서 더 솔직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상처받고도, 다시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입니다. 혼자가 익숙해진 시대를 살면서도 언제나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꿈꾸는 존재들이죠.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오랜만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랑을 믿고 있구나.” 어쩌면 그 믿음 하나면 충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완벽한 사랑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작은 체온을 느끼는 것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혼자가 익숙해진 이 시대에, 당신은 지금 누구를 떠올리고 계신가요?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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