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원하지만, 왜 책임은 피할까?"

자유를 갈망하면서 자유로부터 도망치는 이유

2025.04.16 | 조회 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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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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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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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자유로운데 왜 불안할까?


"지금 뭐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 넷플릭스를 켜고 수백 개의 콘텐츠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잠들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혹은 카페에 갔을 때 수십 개의 메뉴 앞에서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나요? 이른바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현대인의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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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 잼을 판매할 때 선택지가 6개일 때보다 24개로 늘어났을 때 고객의 구매율이 낮아진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사람들이 구매를 포기하거나 결정을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취업 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프리랜서나 자영업자에게 물었을 때는 절반 이상이 "안정적인 월급쟁이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더 많은 자유를 갖게 될수록 오히려 그 자유가 주는 불안감과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봉건제도에서 벗어나 근대로 접어들고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종교적 억압에서 벗어났고, 신분의 제약도 사라졌으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유가 확장될수록 현대인은 더 큰 불안과 고독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책 📘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출처: 휴머니스트)
(출처: 휴머니스트)

에리히 프롬은 1941년 출간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이미 이런 현상을 예견했습니다. 그는 자유가 오히려 인간에게 고립감과 불안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이 권위주의, 파괴성, 또는 자동인형적 순응이라는 세 가지 주요 메커니즘을 통해 자유로부터 도피한다고 설명합니다.

 

도피의 메커니즘


프롬은 ‘자유’를 단순히 긍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유는 인간에게 고립과 책임을 안겨주는 무거운 상태라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존재란, 외부의 명령이나 지시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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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성장하면서 점차 ‘나는 나다’라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프롬은 이러한 과정을 개체화라고 불렀습니다. 개체화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어린 시절 부모는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아이는 어느 순간 부모가 자신의 뜻과 충돌할 수도 있는 ‘타자’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곧, 자신이 독립된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전환점입니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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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롬은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차이를 지적합니다. 개체화는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반면, 자아의 성장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두 과정이 함께 진행되지 않으면 인간은 자유롭지만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결국 외부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를 가지게 됩니다. 프롬은 이러한 도피를 세 가지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1. 권위주의: 자유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더 강한 권위에 종속시키려는 태도입니다. 나치즘이나 파시즘을 지지한 대중들의 심리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2. 파괴성: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때, 오히려 외부 세계를 파괴함으로써 무력감을 제거하려는 시도입니다.

3. 자동인형적 순응: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집단에 무비판적으로 동화되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이처럼 자유는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무력감과 고립감을 부추기며 파괴적인 도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아를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있을까요?

 

자유가 마주한 새로운 적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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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은 말합니다. 자유의 적은 이제 외부가 아니라 내부라고. 왕이 없어지고 법이 느슨해진 세상에서, 우리를 통제하는 건 권위가 아닌 우리 자신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개별적 자아를 포기하고 자동인형이 되는 사람은 주위에 있는 수백만 명의 다른 자동인형과 똑같기 때문에, 더 이상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가 치르는 대가는 비싸다. 그것은 자아의 상실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p.202)

근대화를 통해 우리는 사회적 제약으로부터는 자유를 얻었지만, 적극적 의미의 자유인 개인적 자아실현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자유로 인한 독립성이 오히려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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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현대인의 딜레마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그 자유가 주는 불안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자동인형'이 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처럼 말하고, 입고, 생각하면서 '나만 뒤처지면 어쩌지?'라는 불안을 달래는 것. 같은 표정, 같은 리액션, 같은 소비.

당신은 어떻습니까? 진정한 자유를 위해 불안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도 모르게 안정감을 위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유가 오히려 나치즘을 탄생시켰다?


프롬의 통찰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자유의 확장이 역설적으로 전체주의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입니다. 그는 나치즘의 등장을 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으로 해석합니다.

출처: youtube 교양 Voyage 채널, <차이나는 클라스>

주목할 점은 오히려 소상인, 장인, 화이트칼라 같은 하류 중산층이 나치즘을 더 열렬히 지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심리적 결핍이 작용했다고 프롬은 분석합니다. 경제적 불안정과 심리적 고립감이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기꺼이 자신을 내맡기게 만든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전통적인 계급사회가 붕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소속감 상실과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됩니다. 이것은 소위 '폭민(mob)'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폭민이란 어떠한 계급이나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일종의 잉여 집단으로, 절망과 증오를 품고 있으며 자신들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부여해줄 지도자를 갈망했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공백 상태가 히틀러와 같은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되었습니다.

1938년 10월, 히틀러가 주데텐란트의 헤프(에거)의 군중 속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출처: 위키백과)
1938년 10월, 히틀러가 주데텐란트의 헤프(에거)의 군중 속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출처: 위키백과)

더 흥미로운 점은 많은 독일인들이 개인적으로는 나치즘에 반대했지만, '독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통해 나치즘을 옹호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외톨이로 남느니 독일에 소속감을 느끼는 편이 심리적으로 더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이 자유를 획득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립감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권위주의 체제나 집단에 의존하게 되는 과정은 프롬이 강조한 "자유의 모순성"과 "도피 메커니즘"의 실질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나치즘과 파시즘의 등장은 경제적 배경과 함께 이해해야 하는 심리적 현상인 것입니다.

 

나가며: 중요한 과제,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프롬은 핵심을 찔렀습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p.212)

자유란 무엇일까요? 그저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상태일까요? 우리는 흔히 자유를 ‘외부에서 주어지는 상태’로 오해합니다. 시간이 생기면 자유롭고, 간섭이 없으면 자유롭고, 누가 간섭하지 않으면 자유라고. 하지만 프롬은 더 깊은 곳을 파고듭니다. 진정한 자유는 생각의 내용보다 그 방식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게 꽤 무겁다는 겁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일에는 고통이 따르고, 누군가 대신 정해주는 길은 그만큼 편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자꾸 ‘자유’를 외치면서도, 동시에 ‘자유로부터 도망’칩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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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에 쓰여진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오늘날 우리 삶에 더욱 강력하게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매일 수천 개의 선택지를 마주하지만, 정작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나요? 아니면 그저 남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 안에서 '선택하는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작성자: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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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잉

    0
    18 days 전

    자유가 많아질수록 그만큼 책임의 무게도 커진다는 말, 정말 공감됩니다. 저에게 자유란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땐 꽤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내심 늘 불안했습니다. 남들의 성취에 자꾸 마음이 흔들리고, 제 삶은 늘 작게만 느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선택해온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그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었던 거죠. 최근 모임에서 만난 분들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걸 들으며, 자유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뉴스레터에서 언급하신 자아 성장이라는 개념도 이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다시 정리할 수 있게 해준 글에 감사드려요. 덕분에 요즘, 조금은 더 나다운 삶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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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키

    0
    18 days 전

    자유는 늘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으로 치부되는데, 그 반대로 도피하고 싶은 면도 있었군요. 굉장히 공감이 됩니다… 자유로운 만큼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저에게 진정한 자유란 ‘선택할 수 있는 여유’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약속을 잡고, 하기 싫은 것을 마다할 수 있는 시간적·금전적 여유요. 그래서 프리랜서가 자유롭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먹고살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속박이 되겠죠. 한국 사회는 자유와는 거리가 좀 있죠. 제 식으로 바꿔 말하면, 여유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도피 메커니즘으로 ‘자동인형적 순응’이 나타나기 쉬운 것 같아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려면, 그 사고의 힘을 키울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데요. 사회에 쫓겨 바삐 살다 보면 그런 시간들을 간과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자연스레 생각하는 힘은 성장하기 어렵겠고요. 웬만한 글을 GPT가 다 써주는 지금, 우리는 더더욱 내 생각을 틔우는 일로부터 도피하기 쉬운 세상이 와버린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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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켓빌더

    1
    17 days 전

    저의 paradox of choice 에서 생존 전략을 공유하자면, 저는 어떤 브랜드에서 상품을 선택할때 항상 시그니처 상품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홍수 속에서 ‘결정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발악입니다만, 실은 그 브랜드의 마켓터가, 브랜드 매니저가 고심하여 선택한 시그니처 상품에 대한 존중이기도 합니다. 단지 저의 이런 부분을 아는 친구들은, ‘너는 너의 의지가 없니?‘라고 놀리지만, 선택을 줄여 삶의 효율과 만족도를 높이는 저의 생존 전략입니다. 사업을 하고 있는 저는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개성적인 상품보다는 시그니처 상품을 만들어 많이 팔겠다는 의지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ㄴ 답글 (1)
  • 크리스탈의 프로필 이미지

    크리스탈

    0
    3 days 전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을 볼 때 부러움을 느끼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으면서도, 많은 경우 단순한 대리만족으로 그치고 맙니다. 이는 자유에 수반되는 책임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희소한 인간상이 바로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현상은 사회구조적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개인적 성향이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는 군중심리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개인'으로서는 의견 표명을 꺼리고 회피하는 사람들이, 단 2-3명만 모여도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고 당당해지는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책임이 분산되어 개인의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행태가 상당히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이런 책임 회피형 인간관계가 급증하여 사회적 교류 자체가 피로감을 주는 경험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자유를 외치면서도 개인적 불이익 앞에서는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이중성도 때로는 보이곤 하죠. 본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언젠가 꼭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던 책인데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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