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이 지배한 세상”

헉슬리의 경고가 현실이 되었다.

2025.03.19 | 조회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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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해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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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멋진 신세계, 우리 시대의 거울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한 과학기술이 전체주의적 권력과 만났을 때, 인간 사회가 얼마나 왜곡되고 비인간화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입니다.

1932년에 경고된 헉슬리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오늘날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2025년 초, 여러 바이오테크 기업들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한 임상시험에서 유망한 결과를 보고했죠. 인간 유전자를 편집하는 기술이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살 가치가 있는 생명은 누구인가?"

오늘은 올더스 헉슬리의 고전 소설 <멋진 신세계>를 재조명해보고자 합니다. 1932년 출간된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뉴스레터는 '지금 읽어야 할 고전소설'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독서모임 일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책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출처: 소담출판사)
(출처: 소담출판사)

디자이너 베이비와 맞춤형 인간: 헉슬리의 경고가 현실이 되다


최근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CRISPR(크리스퍼) 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 조작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헉슬리가 상상했던 '보카노프스키 과정'을 통한 인간 복제와 계급 구분이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닌 시대가 온 것이죠.

(출처: ChatGPT Plus)
(출처: ChatGPT Plus)

"하나의 난자, 하나의 배아, 하나의 성인 - 정상이다. 그러나 보카노프스키화된 난자는 싹이 트고, 증식하고, 분열한다. 팔에서 열까지, 열에서 여든, 여든에서 무한대로 - 모든 것이 정상이다." 

<멋진 신세계>

'디자이너 베이비'란 태어날 아이의 특정 유전적 특성을 부모나 과학자가 선택하여 맞춤 제작하는 개념입니다. 질병 예방부터 외모, 지능, 신체 능력까지 원하는 특성을 가진 아이를 '설계'하는 것이죠. 한때는 SF영화 속 이야기로만 여겨졌던 이 기술이 이제는 우리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 첫 사례는 2018년 중국에서 등장했습니다. 허젠쿠이 교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에이즈에 면역력을 지닌 쌍둥이 루루와 나나를 탄생시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윤리적이지 못한 실험'이라 비난했으나, 이는 인간 유전자 편집 시대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중국의 허젠쿠이 교수’ (출처: YTN 사이언스)
‘중국의 허젠쿠이 교수’ (출처: YTN 사이언스)

이런 윤리적이지 못한 실험 이후에도, 2025년 들어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의료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YolTechAccurEdit 같은 기업들은 희귀 유전질환과 고콜레스테롤 치료에서 70%에 가까운 놀라운 효과를 보고했습니다. 질병 치료라는 명분으로 발전하는 이 기술들이 점차 우리 사회를 헉슬리가 경고했던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유전자 기술이 주는 혜택은 명백하지만, 그 이면의 사회적 파장은 깊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멋진 신세계>의 계급 사회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경고를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우리 시대의 '소마': 디지털 쾌락이라는 달콤한 중독


(출처: unsplash)
(출처: unsplash)

소설 속 '소마'는 모든 불쾌한 감정을 없애주는 완벽한 약물입니다. 소마는 진정한 행복이 아닌 현실 도피의 수단일 뿐입니다. 저명한 캐나다계 미국 언론인이자 작가, TV 뉴스 앵커였던 로버트 맥닐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소마soma는 바로 텔레비전이다" 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는데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소마'는 무엇일까요? 소셜 미디어의 끊임없는 알림과 도파민 중독, 넷플릭스의 자동 재생 기능과 *'빈지 워칭', 쇼핑 앱의 무한 스크롤과 충동구매, 실제로 소비량이 증가해 우리나라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마약까지. 

우리는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현대적 소마'에 의존하고 있나요? 오늘도 의미없이 소멸하는 쾌락에 빠져있지 않으신가요?

*빈지 워칭이란? 방송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의 시리즈물 따위를 한꺼번에 여러 편 몰아서 보는 일

 

가족과 사랑의 해체: 헉슬리가 예견한 관계의 종말


"흔해진 만큼 어려워진 게 사랑입니다." 이 문장은 현대 사회의 역설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게 되었지만, 진정한 사랑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출처: unsplash)
(출처: unsplash)

<멋진 신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의 것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가벼운 육체적 관계가 장려됩니다. 오늘날의 데이팅 앱과 후크업 문화가 이와 얼마나 닮았는지요. 최근 문가비와 정우성의 혼외자식 논란이나, 정자은행을 통한 출산 증가 등은 이러한 현상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소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단어가 금기시되는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도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흐려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라고? 아버지라고? 이런 말을 들으니 얼굴이 화끈거리는군요. 이런 음란함이 있다니."

<멋진 신세계>

이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변화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가족 형태의 인정은 우리 사회를 더 포용적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헉슬리가 경고하는 것은 사랑과 헌신에 기반한 관계보다 편의와 개인의 선택만 우선시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인간성의 상실입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사랑’을 바라는 것은 구시대적인 바람일까요?

 

디스토피아인가? 유토피아인가?


(출처: 영화 <서브스턴스> 예고편)
(출처: 영화 <서브스턴스> 예고편)

일부에서는 <멋진 신세계>를 유토피아로 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모든 시민들은 유전자 조작과 조건화를 통해 아름답고 젊은 모습을 유지하는데, 이는 최근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서브스턴스'라는 물질을 통해 젊은 버전의 자신을 만들어내는 설정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두 작품 모두 표면적 완벽함의 이면을 파헤칩니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독특성이 억압되며, 모든 시민들이 '행복'하지만 진정한 감정이나 깊이 있는 관계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서브스턴스>에서도 엘리자베스가 젊은 버전의 자신인 수와 갈등하면서 진정한 자아를 잃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결국 두 작품은 같은 경고를 전합니다. <멋진 신세계>에서 시민들이 소마를 통해 얻는 즉각적인 행복이 진정한 감정과 개성을 희생한 대가인 것처럼, <서브스턴스>에서도 엘리자베스가 젊음을 되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됩니다.완벽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 걸까요?

 

(출처: 영화 <탈주>)
(출처: 영화 <탈주>)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야만인 존과 세계통제관 무스타파 몬드의 대화는 이 딜레마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난 편안함을 원치 않아요. 난 신을 원해요, 난 시를 원해요, 난 진정한 위험을 원해요, 난 자유를 원해요, 난 선함을 원해요. 난 죄를 원해요."
"사실상 당신은 불행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요."
"좋아요, 난 불행할 권리를 요구합니다."

<멋진 신세계>

이 대화는 최근 개봉한 영화 <탈주>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영화 속 규남(이제훈)이 "실패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처럼, 실패할 수 있는 자유, 불행을 경험할 수 있는 권리는 진정한 인간다움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의 우리는, 작은 실패조차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문제라기에는 실패를 패배자, 낙오자로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행복은 고통과 슬픔을 포함한 모든 감정을 경험하는 데서 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가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는?


<멋진 신세계>는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닌, 현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입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성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헉슬리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달리,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에 의해 파괴되는 것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 의해 파괴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경고합니다. 끊임없는 쾌락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인간성의 핵심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죠.

헉슬리는 그의 후속 에세이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1958)에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하고, 진실에 대한 갈증으로 죽어갈 것이다."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이 예언이 오늘날 얼마나 정확히 현실이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불편함 없는 완벽한 안정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모든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온전한 인간성을 원하시나요?

기술의 도약이 가져온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 우리가 소중히 지켜야 할 인간성에 대한 고찰. 헉슬리의 경고가 울리는 지금, 진정한 행복을 찾는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독서모임 안내

  • 일시: 3월 22일(토) 오전 10:00
  • 장소: 보사노바 커피로스터스 잠실점
  • 신청: 아래 '소모임 신청' 버튼을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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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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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소마'를 복용하고 계신가요?
  • 여러분의 일상에서 '현대의 소마'라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해본 방법이 있나요?
  •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편리함과 위험성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더 중요시해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불행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실패나 슬픔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은 깨달음을 얻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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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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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채의 프로필 이미지

    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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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days 전

    보통 미래의 끔직한 모습을 그릴 때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는데 꿈꾸는 유토피아에서 오히려 자아를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이 충격적입니다. 과학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로 수많은 편리함과 쾌락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나의 자아를 찾고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실패나 슬픔, 고통 같은 걸 겪고 싶지 않았는데 지나고나서 돌아 보면 그런 시간들 속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있기에 지금의 '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물론 한없이 주저앉게만 하는 끝 모를 불행은 사람을 무력감에 빠지게 하겠지만, 인생에 있어 적절한 고난과 불행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불행할 권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불행할 권리'란, '경험할 권리'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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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리

    0
    14 days 전

    다른 사람이 피해 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모든 질병에서 자유로운 유전자만큼은 꼭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선택 할수없는 시점의 아이에게 강제로 좋은 유전자를 주입하거나 생각,상상 등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좋지 않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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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잉

    0
    14 days 전

    "진정한 행복은 고통과 슬픔을 포함한 모든 감정을 경험하는 데서 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는 문구가 너무 공감이 되네요. 지금 제 인생을 돌아보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무언가에 도전하고 난 이후가 제일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 실패하고 힘든 시기를 극복했을 때나 일이 어떻게 잘 풀렸을 때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멋진 신세계에서 존은 불행할 권리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 부분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원한다고 느꼈어요. 우리는 힘든 시절을 이겨냄으로써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해요. "소마"처럼 성취감 없이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사실 불행이 아닐까 싶네요. 쉽게 얻은 것의 가치는 정말 가벼우니까요.. 오늘도 좋은 뉴스레터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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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키

    0
    14 days 전

    오은영 박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생산재’가 아니라 ‘소비재’라구요. 옛날 농경 사회에서는 아이는 낳으면 낳을수록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노동력이 되었고, 나를 부양해줄 재원이 되었죠.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는 끊임없이 지원을 해줘야 하는 소비재로 바뀌었죠. 이미 우리 세대부터가 부모님께 많은 것들을 받았고, 여전히 받고 있기도 하구요.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생산재보다는 소비재로 전락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점점 비효율적인 존재로 전락하는 거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의 손발보다 기계를 사용했을 때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니, 인간의 사고보다 컴퓨터나 AI를 활용했을 때 생산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인간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종을 말살시키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인간이 도착한 땅에서는 머지않아 대형 포유류들이 사라졌고, 현재 많은 음식들은 유전자 변이로 인해 인간이 먹고 싶은 종류만 살아남았습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는 현재 단일 품종만 남아 있습니다. 만약 자연재해로 단종이 된다면 우린 바나나를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죠. 그렇게 수많은 종을 말살한 인간들은 기어이 인간이란 종도 멸종시킬 것만 같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는 이 시대가 그 증거인 것 같아요. 번뜩 이런 의심도 듭니다. 인간의 가치를 의심한 적이 없던 과거도 사실은, 인간보다 쓸모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가치란, 쓸모가 없으면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라면,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결말조차 인간 종특인 것 같구요ㅋㅋㅋ 앞으로 인간들이 만드는 미래가 참 궁금하네요ㅋㅋㅋ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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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밀밭의파수꾼

    0
    13 days 전

    저는 저 멋진 신세계의 세계관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개념은 좋습니다. 손실화피 성향이라고 사람은 잃는 것에 더 민감하다고 하는데 저는 슬픔이 싫어 진정한 행복보다 슬픔이 없는 삶을 얻고 싶습니다. 이런 세상이 올 수 없으니 고통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길이라고 생각하려고 하는데 쉽진 않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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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ho+의 프로필 이미지

    junho+

    0
    13 days 전

    사람들이 좋아하는게 팔리는 자본주의가 힘이 세기 때문에 어떻게 멋진신세계 같은 세상이 만들어질수 있을지 잘 상상이 안되요. 또 수만년의 수렵 본능도 잘 안 없어지는게 인간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소설처럼 갑자기 많이 바뀔것 같지는 않아요. 거부되는 기술들을 생각해봤어요. 뛰어난 기술인데 시장에서 외명당해서 사라져버리는 경우죠. 시장의 힘과 인간 본능은 강력하다는게 되려 보호막이 될지도요..? 전체주의도 경제불황처럼 심각한 본능 불만이 있을 때 생길수 있는거 같아요. 근데 저런 디스토피아 오기전에 한국은 없어져있을거 같아요 ㅜ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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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ho+의 프로필 이미지

    junho+

    0
    12 days 전

    저는 디스토피아 소설이 '힝. 이거봐. 무섭지? 대단하지? 이렇게까지 달라질줄은 몰랐지?'라고 독자를 놀래킬 때 특유의 T를 발휘해서 작가에게 '인류 미래사가 여기에서 거기까지 흘러간 경위를 한번 그럴듯하게 설명해봐. 물론 인간과 사회의 기본 동역학 법칙에 근거해 가능한 그림을 소명하는 편이 좋아'라고 말하고 싶어지곤 해요. 왜냐면 어떤 소설들은 단지 극적인 작품으로 인식되고 싶어서 다소 무책임한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있는거 같거든요. 인간의 본성, 사회학의 연구에 따르면 '상상할수 있는 모든 사회'가 전부 현실이 될수는 없을거에요. 그런데도 어떤 작가는 단지 상상의 자유만 누리면서 그것이 현실이 되는데까지 일어나는 인류사 동역학의 제약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여. 헤겔조차 정반합이라고 할때 분명 반동의 힘이 정을 막아선다고 한거 같은데 말이죠. 그렇담 독자는 단지 흥미용 공상과학과 개연성 높은 대체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구분하고, 전자에서 가벼운 흥미를, 후자에서 진지한 논의를 해도 좋겠지요. 멋진신세계는 이것이 인간, 사회, 자본주의의 여러 힘들의 제약 가운데 현재에서 미래에 나타날 한 그림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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