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아트페어의 열기 속에서
최근 서울 코엑스는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들로 북적였습니다. 경기 침체 속에서 관람객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은 오히려 예상보다 더 많은 관람객을 모으며 한국 미술계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섯 날 동안 이어진 전시는 말 그대로 축제였고, 현대미술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세계가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처럼 추상과 실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불과 100년 전, 한 조각 작품은 세관에서 “이건 예술이 아니다” 라는 낙인을 찍히며 법정에 서야 했습니다. 아르노 네바슈의 《이것이 새입니까?: 브랑쿠시와 세기의 재판》은 그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다루며, 예술의 본질을 다시 묻습니다.
오늘의 책 📕 <이것이 새입니까?: 브랑쿠시와 세기의 재판>

1927년 뉴욕에서 벌어진 세기의 재판

1926년 가을, 프랑스에서 온 배가 뉴욕 항에 닿았습니다. 세관원들은 정체 모를 금속 조각을 발견했지만, 그것을 단순한 공산품으로 규정하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작품 〈공간 속의 새〉였습니다. 로댕의 제자로 출발했지만 곧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추상 조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그는, 단순한 외형 재현이 아닌 사물의 핵심을 드러내는 작업을 지향했습니다.
작품이 주방 기구처럼 취급당한 굴욕을 참지 못한 그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예술의 정의를 가르는 세기의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It’s a bird! : 예술임을 증명하라

재판의 쟁점은 단순했습니다. “이것은 과연 예술인가?” 세관은 그것을 ‘공산품’이라 주장했지만, 브랑쿠시는 단호했습니다. “이건 예술이다.” 작품에는 머리도, 날개도, 깃털도 없었지만, 그는 그것을 새의 구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비상의 감각’을 담은 조형물로 제시했습니다.
법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오갔습니다.
- 새와 닮지 않아도 새라 할 수 있는가?
- 예술가의 손길과 노동자의 손길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 작품의 제목이 작품의 본질을 규정할 수 있는가?
결국 판결은 브랑쿠시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법원은 이 조각을 예술로 인정했고, 현대미술사의 상징적인 순간이 되었습니다.
예술인가, 아닌가, 그 경계에서

오늘날 우리는 브랑쿠시의 작품을 고전으로 바라보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NFT 아트, 디지털 창작물, AI가 만든 그림을 두고도 사람들은 여전히 말합니다.
실제로 2022년 미국 콜로라도 주 박람회 미술 대회에서는 Midjourney로 제작된 〈Théâtre D’opéra Spatial〉이 1등을 차지하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사람들은 AI 작품이 예술일 수 있냐며 격렬하게 다투었고, 이는 100년 전 브랑쿠시 재판의 데자뷔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렇다면 100년 전 브랑쿠시 사건처럼, AI로 그려진 그림도 언젠가 법정에서 예술성을 두고 다투게 될까요?

사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순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편해하곤 하지요.
사람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현대미술 앞에서 불쾌해하고, 자기 자신도 모르게 ‘정답’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브랑쿠시가 보여준 건 특정한 형식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익숙한 기준을 벗어나 사물의 본질을 환원하려는 시도 말이지요.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견디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나가며: ‘새’는 무엇인가

브랑쿠시의 재판은 예술이 외형이 아닌 본질을 드러내는 행위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면은 판결보다 더 오래 남습니다.
그는 바닷가에서 조용히 돌을 하나씩 쌓아 올렸습니다. 세상이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는 자신이 믿는 길을 묵묵히 이어갔습니다. 그 모습은 예술이란 결국 타인의 인정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려지는 삶의 태도임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현대미술이 낯설고 어렵게 다가올 때, 우리는 다시 물을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새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되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쌓아올리고 있습니까?”
이 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지,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건 무엇인지. 브랑쿠시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 답을 곱씹어보는 건 어떨까요?
✍️ 작성자: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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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질문
- 현대 미술 작품 앞에서 “이게 뭐지?” 하고 멈칫했던 순간이 있나요?
- AI가 만든 작품도 예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100년 전 브랑쿠시 재판처럼, 오늘날 다시 정의가 필요한 ‘예술의 경계’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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