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오스틴의삶과소설

초턴 마을의 큰 집과 작은 집

제인 오스틴의 신데렐라 오빠 에드워드 이야기

2025.02.26 | 조회 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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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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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편지함

탄생 250주년을 맞는 작가 제인 오스틴의 모든 것

예전에 저는, 제인 오스틴 하면 왠지 꼿꼿하고 까다로운 시골 마을 여자가 떠오르곤 했어요. 제 상상 속에서 제인 오스틴은 작은 목사관에서 수를 놓고 피아노를 치고 언니와 산책을 다녀와서 동네 사람들 뒷이야기를 하다가 ‘시골 마을의 서너 가족’으로만 이루어진 소설을 썼지요. 하지만 저를 비롯해 전 세계 독자들의 상상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이 제인 오스틴의 이미지, 작은 집 안에 갇혀 얌전하게 살림을 거들며 한 번씩 도덕적 훈수를 두는 시골 여자의 이미지는 알고 보니 순전히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가 창조한 허상이었습니다. (영국 제국의 보수주의가 최고조에 달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영문학 전체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요!) 여기에는 제인 오스틴의 남자 조카가 남긴 회고록이 큰 역할을 했는데요, 조카는 고모의 소설이 인기를 끌자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금욕적 성녀의 이미지로 고모의 삶을 재구성해 회고록으로 선보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제인 오스틴의 이미지는 대부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제인 오스틴의 삶에 대한 1차 사료가 워낙 적었기에, 또한 이 회고록이 당시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기에, 결혼하지 않았으나 ‘집안의 천사’로 남은 비혼 고모 제인 오스틴의 고루한 이미지는 아주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인 오스틴의 삶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흥미진진했습니다. 시끌벅적한 사춘기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자랐고, 10대 초반부터 ‘음탕한’ 농담도 서슴없이 던질 줄 알았으며, 전 세계 바다를 누비는 해군 형제들과 편지로 소통하며 세상 소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재미 삼아 연애도 해봤고, 연극에 빠져 덕질을 한 시기도 있고요. 갑부인 남자-사람-친구의 청혼을 받은 적도 있고, 왕세자로부터 (간접적으로나마) 팬심을 고백받은 적도 있습니다. 고료를 받자마자 신이 나서 새 모자를 쇼핑하러 달려 나가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렇게 생기발랄한 제인 오스틴의 모습은 아주 최근, 무려 21세기 들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폴라 번을 위시한 여성 연구자들이 관련 사료들과 작품들을 성실하고 꼼꼼하게 연구해, ‘답답한 집 안에 박혀 머릿속 상상의 삶을 살다 간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미지가 얼마나 날조된 것인지를 밝혀낸 것이지요. 사실 제인 오스틴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곳을 여행하고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나고 훨씬 많은 경험을 하고 훨씬 많은 책을 읽은, 훨씬 주체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지 않나요? 스티븐턴의 목사관이나 초턴의 코티지에만 가만히 앉아 있었다면 어떻게 『오만과 편견』 속 로징스 파크나 펨벌리에서의 삶을 그토록 잘 알았던 걸까요? ‘갑자기’ 신분 상승을 한 제닝스 부인이나 윌리엄 경, 계급적 우월감에 젖어 사는 캐럴라인 허스트나 레이디 캐서린 드 버그, 매력 넘치지만 위험하리만큼 자기 중심적인 메리 크로퍼드, 해군으로 자수성가한 웬트워스 대위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그토록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었을까요? 대답은 하나입니다. 제인 오스틴은 각계각층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입지에 있었으며 이들과 활발하게 소통했고, 각양각색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격변하는 당대 영국의 입체적 면모를 파악하고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

실제로 제인 오스틴은 목사의 딸로 나고 자랐지만 ‘최상층’의 삶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는데요, 그건 다 셋째 오빠 에드워드 덕분입니다. 에드워드는 정말이지 동화 같은 신분 상승을 한 사람이거든요. 어린 ‘네디’가 열두 살이던 1779년, 요정 대모, 아니 아버지의 사촌 토머스 나이트 부부가 집에 놀러 왔습니다. 신혼이었던 나이트 부부는 금발의 사랑스러운 소년 네디에게 반했고 다른 형제들보다 특별히 더 예뻐했다고 합니다. 1781년 나이트 부부는 햄프셔와 켄트의 영지 두 곳을 물려받게 되는데, 이들에게는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습니다. 영지를 상속할 적당한 남자아이를 물색하던 부부는 1783년에 네디, 즉 에드워드 오스틴을 입양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조지 왕조 시대에는 흔히 있던 일이었어요. 아버지 조지 오스틴은 조금 망설였다지만 어머니 커샌드라가 남편을 설득했지요. “여보, 내 생각엔 당신 사촌 뜻대로 우리 아이를 보내줘야 할 것 같아요.” 나이트 씨의 마부가 켄트주 고드머셤에서부터 조랑말 한 마리를 끌고 소년을 데리러 왔어요. 에드워드는 조랑말을 타고 150킬로미터가 넘는 여정을 거쳐 새로운 집으로 떠났습니다. 작은 조랑말을 타고 떠나는 오빠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을 때 제인 오스틴은 다섯 살 반이었습니다.

1794년 토머스 나이트의 전 재산을 물려받은 에드워드 오스틴, 아니 에드워드 나이트는 어마어마한 갑부가 되었습니다. 『오만과 편견』의 그 다아시 씨보다도 재산이 많았어요. 아무튼 제인 오스틴의 가족은 아들이 켄트주 고드머셤에 정착한 뒤 주기적으로 방문해 이 어마어마한 대저택에 꽤 오랜 기간 머물곤 했는데요. 그러니 그곳에서 제인 오스틴이 얼마나 많은 상류층의 사람들을 만났겠어요? 눈빛을 반짝이며 다양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제인 오스틴의 표정을 절로 떠올릴 수밖에 없지 않나요. (덧붙이면, 고드머셤 파크가 맨스필드 파크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

잉글랜드 햄프셔주 작은 마을 초턴에는 지금도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집 두 채가 있습니다. 큰 집은 초턴 하우스라고 하고 작은 집은 초턴 코티지라고 해요. 초턴 하우스는 에드워드의 햄프셔 영지에 있는 별장 저택이었고, 초턴 코티지는 원래 재산관리인이 살던 집인데 나중에 에드워드가 홀로 남은 어머니와 두 여동생을 위해 내어준 집이지요. 초턴 하우스에 방문해 머물던 시절 제인 오스틴의 사회적 ‘위상’은 아마 『에마』의 미스 베이츠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은 정도였을 거예요. 제인 오스틴은 큰 재산을 물려받은 오빠의 대저택에서 가끔 길을 잃으며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요? 그 답은 그의 소설들에 담겨 있을 겁니다.

초턴 하우스는 1990년대에 네트워크 기술, 통신사업, 화장품 사업 등으로 크게 성공한 사업가 샌디 러너가 사들여 교육과 문화 활동을 펼치는 단체의 본부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샌디 러너는 자타가 공인하는 ‘제이나이트’, 즉 제인 오스틴의 ‘찐’ 팬이니 그야말로 성공한 덕후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초턴 하우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름답고 아담한 코티지가 있습니다. 대시우드 부인이 『이성과 감성』에서 조금은 체념한 듯 “아주 아늑하고 소박”하다고 표현했던 것 같은, 바로 그런 집이에요. 제인 오스틴은 1809년부터 이 집에서 어머니, 언니 커샌드라, 가족의 친한 친구 마사 로이드 등 세 여자와 함께 살았습니다. 또 바로 이곳에서 제인 오스틴은 젊어서 써두었던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노생거 애비』의 초고를 퇴고해 출판했고, 이후 『맨스필드 파크』 『에마』 『설득』을 썼어요. 또 바로 이곳에서 영국은행이 2017년 제인 오스틴의 초상이 새겨진 10파운드 지폐의 새 디자인을 발표했고요. 한때는 여행자들의 숙소로, 또 한때는 노동자들의 숙소로 쓰였던 이 코티지는 지금은 제인 오스틴 하우스 뮤지엄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이며 오스틴 순례자를 맞아주고 있답니다.

2025년 2월 26일에

김선형 드림

 

추신. ‘제이나이트(The Janeite)’는 제인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팬/독자를 뜻하는 단어로, 문학비평가 조지 세인츠버리가 1896년에 만들어낸 용어입니다. 이 말을 유명하게 만든 건 지난 레터에 소개했던 러디야드 키플링의 단편소설이고요. ‘제이나이트’는 지금도 세계 각국의 오스틴 팬들이 자랑스럽게 사용하는 호칭이랍니다.

 

에드워드 오스틴의 입양을 묘사한 실루엣
에드워드 오스틴의 입양을 묘사한 실루엣
켄트주 고드머셤에 위치한 에드워드 나이트의 영지 고드머셤 파크
켄트주 고드머셤에 위치한 에드워드 나이트의 영지 고드머셤 파크
고드머셤 파크의 전경ch
고드머셤 파크의 전경ch
초턴 하우스의 전경
초턴 하우스의 전경
제인 오스틴 하우스 뮤지엄이 된 초턴 코티지
제인 오스틴 하우스 뮤지엄이 된 초턴 코티지

반가운 회신이 여러 통 도착했어요. 정말로 우체통에서 기다리던 편지를 받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가끔 생각날 때, 편안하게 답장 주세요. 당신의 답장이 제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선물이니까요. 

 

"번역하며 고민하고 생각한 걸 이렇게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이번 편지는 특히나 감동이었어요. 이제서야 제인 오스틴의 매력을 발견하고 있었는데 더 알고 싶어지네요."

"너무 재밌어서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네요. 이렇게 정성스럽고 재밌기까지 한 글을 매주 메일로 받을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정말 즐겁습니다. 레터 항상 잘 읽고 있어요."

힘과 용기를 샘솟게 하는 따뜻한 답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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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L

    0
    about 1 month 전

    제인 오스틴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하게 재미있게 써서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혼자만 읽기 아까워서 많이 공유 해보려고 합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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