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영국은행은 10파운드 지폐의 새 디자인을 발표했습니다. 지폐에는 제인 오스틴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제인 오스틴 돈이라니, 그 자체로도 아이러니하지만 이 지폐 디자인을 본 ‘제이나이트’들은 여러모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와! 제인 오스틴 돈이다!” 하며 즐거워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좀 이상한 거예요. 무엇보다 커샌드라가 그린 수채화를 채택해 디자인한 것부터 정부가 저작권료를 아껴보자고 그런 건 아닐까 하는 매우 그럴싸한 의혹을 자아냈습니다. 게다가 언니가 집에서 쓱쓱 그린 스케치가 국가 공식 화폐 디자인으로 채택되는 바람에 제인은 그만 ‘집 안에서나 쓰는 캡’을 쓴 모습으로 박제되었는데, ‘밝은 코트를 입은 남자라니 촌스러워서 탈락!’이라고 선언했던 오스틴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이미 창피해서 기함할 일이었을 테지요. 설상가상 젊고 예쁘고 조신한(!) 얼굴로 미화되기까지 하고 말았고요.
또 지폐를 장식한 배경에는 제인이 소설을 써나갔던 스티븐턴 목사관이나 초턴 하우스가 아니라 지난 레터에서 소개해드린 대저택 에드워드 나이트의 고드머셤 파크가 그려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폐에는 “어쨌든 난 독서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고 장담해요!(I declare after all there is no enjoyment like reading!)”라는 인용문이 함께 새겨졌는데,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근사하지만, 이 말을 한 캐릭터가 엘리자베스 베넷도 앤 엘리엇도 심지어 에마 우드하우스도 아니고 캐럴라인 빙리라는 것을 알고 나면 좀…… 그렇고 그런 마음이 됩니다. 한 가지 위로(?)라고 한다면, 아끼던 이동식 책상에서 글을 쓰는 제인의 모습이 워터마크로 찍혀 있다는 것일까요?
제인이 살아서 이 화폐를 보았다면 얼마나 웃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요. 그에게 소설 쓰기는 돈의 힘과 인간의 품격을 저울의 양쪽 추로 놓고 균형점을 섬세하게 타진하는 작업이었잖아요. 그런데 바로 그 '돈'에 자기 얼굴이 새겨지게 되다니요. 그의 소설들에는 1년에 ‘1만 파운드짜리’ 상품에 그치기 싫은 남자와 현금 없는 딸부잣집의 떨이 상품으로만 존재하기 싫은 여자, 사람을 물건처럼 격과 품으로 따져 서로 따박따박 맞춰 주려다 그래서야 마음의 허기가 달래질 리 없음을 깨닫는 철없는 부잣집 딸, 부잣집 자제지만 자기 돈은 없어 버젓이 출세하지 않으면 상속권을 박탈하겠다는 부모/권력자의 위협 속에 꿈을 체념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남자, 가진 돈보다 자기를 한껏 부풀리려는 사람들, 돈 앞에서 초라하거나 작아지지 않으려고, 또 돈 때문에 옹졸하거나 잔인하거나 더러워지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인물들로 가득합니다. 제인 오스틴의 세상에서, 돈이 아닌 무언가를 삶에서 갈구하는 열망,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내면에 품고자 하는 열망은 곧 인간다움의 척도입니다. 이를테면 『이성과 감성』의 에드워드 페러스가 꿈꾸는 “안온한 가정과 고요하고 사적인 생활”처럼요.
에드워드 페러스는 자신감이 없는 나머지 본연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는 남자였어요. 하지만 타고난 수줍음을 극복하고 나면 하는 행동마다 꾸밈없고 다정한 품성이 묻어났어요. 뛰어난 지성도 교육을 통해 탄탄하게 잘 성장했고요. 다만 능력으로 보나 성정으로 보나 모친과 누나의 기대에는 부응할 수 없었지요. 그들은 에드워드가 뭔가 고명하고도 저명한 존재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랐거든요. 뭐가 되어야 할지는 자기들도 모르면서 무작정 어떤 식으로든 에드워드가 크게 출세하기를 바랐던 거예요. 어머니는 정치 쪽으로 아들의 관심을 돌려보려 했어요. 국회에 입성하거나 당대의 저명인사와 인맥을 쌓기를 바랐어요. 누나인 존 대시우드 부인의 바람도 같았고요. 그래도 동생이 이런 고상한 축복을 먼 미래에 받기 전 일단 바루슈라도 한 대 몰아주었다면 누나의 야심은 금세 달랠 수 있었을걸요. 그러나 에드워드는 위인이 되거나 바루슈를 모는 데에는 관심도 재주도 없는 사람이었답니다.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의 중심에는, 안온한 가정과 고요하고 사적인 생활이 있었어요.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1권 3장 중에서, 김선형 옮김.
이것은 아이의 취향이나 적성과 무관하게 의사나 변호사가 되라고 등을 떠미는 우리의 세계와 그리 멀지 않은 장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상류층 멋쟁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컨버터블 마차 "바루슈"를 최고급 스포츠카로 바꾸기만 하면 바로 어제 한국의 서울에서 쓴 글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거예요. 돈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삶을 좌우하고 있고, 돈 앞에서 작아지거나 돈 때문에 졸렬하거나 잔인해지지 않으려고, 돈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삶에 분명히 있다고 꿈꾸고 그 무언가를 지키고자 우리는 여전히 날마다 사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요. 그러니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잘 읽으면 읽을수록 10파운드 지폐에 새겨진 제인의 얼굴은 통쾌하면서도 아이러니해서 자꾸 (쓴)웃음이 날 수밖에요.
오스틴과 돈의 문제를 남달리 통렬하게 간파한 후대 작가가 있으니 바로 20세기 영국 시인 W. H. 오든입니다. 오든은 「바이런 경에게 보내는 편지(Letter to Lord Byron)」에서 뜬금없이 “제인 오스틴한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예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보내면 그가 기함해서 자기를 멸시할까” 무서워 시인인 바이런 경한테 보내는 편지에 쓴다면서, “소설 창작은 시 쓰기보다 한 단계 수준이 높은 예술”이라고 제인 오스틴을 찬양하기 시작하는데요. 편지의 발상이며 수신자, 내용 모두가 웃기지만—특히 바이런 경과 제인 오스틴은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둘의 인연은 나중에 다른 편지에서 말씀드릴게요—정점인 대목은 바로 다음의 신랄하고 유명한 마지막 연이에요.
당신[바이런 경]이 아무리 충격적이라도 내겐 그[제인 오스틴]만 못해요.
오스틴 옆에서는 조이스가 풀잎처럼 순진해 보이지요.
영국 중산층 독신 여자가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황동[돈]'의 힘을 묘사해서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이토록 솔직하게 이토록 정신 번쩍 나게 폭로하는 걸 보면
난 심기가 말도 못 하게 불편해지거든요.
W. H. 오든, 「바이런 경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김선형 옮김.
황동의 힘―저는 이 지점에서 제인 오스틴과 박완서가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황동’의 힘”이 도래하는 세계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라는 걸 자생적으로 간파한 예술가의 통찰이라는 면에서요. 이 통찰은 가장 사적이고 가장 범속한 영역, 문화 예술의 권력이 오래도록 무시한 불모지에서 피어났지요. 오스틴이 비혼 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았다면, 박완서의 경우, 바로 ‘가정주부’가 이 예리한 의식의 초점이 됩니다.
박완서의 단편 「맏사위」에는 이제나저제나 ‘과년한’ 첫딸이 시집을 잘 가기만 바라면서, ‘의사 사위’를 바라다가 ‘웬만큼 부자’면 된다고 기대하다가 ‘남편을 닮은 남자’를 좋아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중년 여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흡사 ‘노고와 내핍의 지긋지긋함’을 철부지 딸에게 가르치는 게 자기 의무였다고 말합니다. 엄마의 잔소리에 진저리를 치던 딸은 어느 날 미대 조소과 졸업생을 사윗감으로 데려오지요. 그러자 이 여자는 “가난뱅이라도 어떤가, 의초만 좋으면 되지”라며 황급히 로맨티스트로 돌변합니다. 그런데 딸이 사랑에 빠졌다고 덩달아 로맨스의 단꿈에 잠시 젖었던 그는 방문 밖에서 들은 딸의 말에 소스라치고, 그 딸에게서 자기 모습을 거울처럼 보게 됩니다. 돈 앞에서 흉하게 일그러진 자기 모습, 그런 자기가 다시 흉하게 일그러뜨린 딸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부끄러워‘집니다.
우리 엄마 ‘유’가 마음에 들었나봐. 엄만 순진하기가 꼭 애기 같다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자 사위 타령을 그렇게 하드니 언제 그랬드냐야. 그렇지만, 난 달라. 난 애초에 신데렐라의 꿈도 안 꿨지만, ‘유’가 마음에 쏙 들어서 결혼하려는 것도 아냐. 나는 내 분수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분수에 맞는 사람을 찾다 보니 ‘유’가 걸린 거야. 나라고 부자 싫어하고 예술 좋아한다고 오해하진 마. 그러니 결혼하면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약속한 대로 취직 운동에 발 벗고 나설 것. 알았지? 뜨내기 수입 가지고 어떻게 생활 설계를 해? 안 그래? 나도 계속해서 직장 안 고만둘 거야. 애기도 당분간 낳을 수 없어. 둘이 열심히 벌어 집 사고 최소한의 문화시설은 갖춰얄 게 아냐. 부자는 안 바란다 치더라도 남들이 다 갖춘 최저한의 생활 조건은 갖춰얄 게 아냐. 나 같은 여자 만난 거 고맙거든 예술이고 나발이고 집어치워.
박완서, 「맏사위」 중에서
어때요, 오든은 ‘한국의 가정주부’가 쓴 이 단편에도 충격을 받았을까요?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던 오스틴의 영국과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던 박완서의 한국은 너무나 닮았습니다. 양반입네 하는 계급의식도, 먹물의 자긍심도, 점령군처럼 무자비하게 세상을 장악하는 돈 앞에서 초라하고 졸렬해졌습니다. 부동산 투기나 식민지 사업으로 하루아침에 떼부자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송사로 사업을 잃거나 터무니없이 영지에서 쫓겨나 삽시간에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한 불안과 희망이 교차했습니다.
오스틴과 박완서는 돈이 휘젓는 그 불안과 희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습고도 짠하고, 초라한 와중에 여전히 다정과 사랑을 꿈꿉니다. 돈을 넘어서서 사람이 되고 사람끼리 연결되고자 하는 이 뜨거운 열망을 포착하는 글쓰기를 발명했고, 이는 향후 영국과 한국의 소설 ‘신(scene)’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저는 이 두 작가의 엄밀하고도 다정한 마음, 세계의 진짜 갈등을 알아보는 혜안, 철두철미하게 독창적인 작법에 늘 감탄하고 감탄하고 또 감탄합니다. 가장 범속한 장소에서 자생적으로 발화한 이 목소리들은 기적 같습니다. 과연 번역에 반영될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제인 오스틴을 번역하는 틈틈이 계속 박완서를 읽고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제인 오스틴과 박완서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가교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가온 미래, 즉 우리가 지금도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진짜 투쟁을 알아보았습니다. 바로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황동’의 힘”이라는 문제였지요.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발표한 건 제인 오스틴이 세상을 떠나고 정확히 50년 후였습니다.
2025년 3월 5일
김선형 드림
추신.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제 편지가 여러분께 잘 가 닿고 있는지, 가끔은 답장을 보내 주세요. 그리고 우리 레터 많이 많이 알려주세요. 부탁합니다!
정정. 지난 주 레터에 오류가 있었어요. 캐럴라인 빙리와 허스트 부인이 줄여져서 그만 "캐럴라인 허스트"가 되었지 뭐예요. 제가 그만 캐럴라인 빙리를 형부와 결혼시켜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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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황동의 힘을 간파한 제인 오스틴과 [맏사위]에서 "예술이고 나발이고 집어치워"라며 황동의 힘을 보여주시는 박완서 작가님 두 분다 천재적이고 유머러스 하십니다. 이 두 작가의 천재적인 면모를 포착해서 연결시켜주시는 번역가님의 혜안에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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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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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개숲
매번 감탄하고 감탄하고 감탄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레터를 읽으면 얼른 제인 오스틴 완역본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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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미쇼
너무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인사이트를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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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화잇
화폐에 그려진 오스틴도 익숙한 모습이라 비판적 시각을 갖질 못했습니다. 번역가님의 설명으로 보니 굉장히 아이러니하고 웃픈 일 맞네요. 최근에 박완서 작가님의 산문집 총 10권을 읽었는데 두 작가의 문체의 연결성 정말 공감해요. 적나라하며 때론 읽는 독자의 얼굴이 화끈거리게 하는 화법이요. 매번 이리도 흥미로운 글을 써주시니 레터 읽는 날이 늘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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