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기43] 탁월함은 어디에!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시인이기]의 연정모입니다. 

점몽님, 안녕하세요. [시인이기]의 연정모입니다. 

요즘의 저는 날씨 이야기만 합니다. 날씨 이야기만 하고 싶습니다. 공기가 너그럽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비가 내렸는데요. 바람이 시원하니 비도 꽤 괜찮더군요. 

최근 제가 꽂혀 있는 키워드는 '탁월함'입니다. 훌륭한 작품을 만났을 때는 어안이 벙벙해지지요. (세상엔 대단한 시집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요) 저는 그 앞에서 아주 단순한 생각밖에 못합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리 탁월한가. 무엇이 탁월함을 만들까. 

질투는 아니고, 그저 부럽습니다. 제가 그것을 가지고 싶어한다는 걸 아니까 쉽게 인정할 수 있어요. 너무 부럽습니다. 

어젠 학부 시절 교수님을 뵙고 식사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누구나 85까지는 다다를 수 있다. 시간과 성실성만 있으면. 그러나 85에서 90까지는 다르다. 뭔가 대단히 깨어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 자리에 있던 저와 민 언니(시각예술가입니다)는 상당히 감응했는데요. 어떻게 하면 90을 넘을 수 있나, 그게 최근 저희의 테마였던 것이죠.

"선생님께는 그 시기가 언제였나요?" 여쭤보았는데, 어쩌면 당연하게도 박사 논문 쓸 때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려면 역시 하나의 빅 이벤트가 있어야 하는 걸까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밀어부쳐야 할 강한 필요가 있지 않으면 밀어부치지 않게 되지요. 그러니 그 계기가 주어지는 것 역시 인생의 운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겪어 보지 않은 자의 속 편한 소리 같네요... 학위논문 쓰고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께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해야 해? 라고 물으면 꼭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90이 넘어가면 100과 그 이후는 또 쉽다. 그때부터는 다 재밌거든. 

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참 부럽고 또 멋지게 느껴졌어요.

참, 가장 중요하게 당부하신 것은 동료의 필요성이었는데요. 90까지 가는 길목에서는 옆에서 쓴소리하고 술도 사 주고 하는 동료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며, 얘들아 잘 만나고 의미있게 교류하렴... 이라는 의중을 성공적으로 전달하셨습니다. 

자, 저는 용기 내어 말해 봅니다. 저의 동료가 되어 주세요!

차재신

차도하의 ⟪미래의 손⟫

평생 한 권의 시집만 읽어야 한다면 나는 아마 ⟪미래의 손⟫을 고를 것이다. 시집을 두 번째 읽을 때 그 생각이 들었다.

시집을 읽다 보면 간혹 삶이 곧 시인 것 같은 시인이 있다. 시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질 때. 자기를 드러내는 것에 망설임이 없어 보일 때. 내 삶을 걸고 쓴다는 느낌이 들 때. 자신이 겪는 모든 것을 도저히 시가 아니고서는 발설할 수 없어서 시로 삶을 뱉어내는 것 같을 때. 이 시집이 그렇다. 그런 시집을 볼 때마다 부럽고 반갑다. 나는 그렇지 못해서.

삶이 뭘까? 내 시에는 삶이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내가 삶을 느끼는 감수성이 부족해서 그럴까. 내 삶은 별 볼 일 없어서 시로 쓸 말도 별로 없다. 시 안에서도 나는 멀리 떨어져 있다.

여러 번 시도는 했는데 다 잘 안 됐다. 풍파라면 어디 가서 뒤지지 않을 만큼 겪었는데, 그게 시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상처받지 않으려다 보니 나조차도 나 자신을, 내 삶을 대상화한 채 바라보게 된다.

언젠가 엄마가 말했다. 내가 쓴 시는 다 우울하고 어둡다고, 행복한 시를 쓰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때 시는 원래 우울한 거라고 얘기하고 넘겼는데, 시는 왜 원래 우울한 거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행복한 시를 본 적이 없어서 모르는 걸지도.

생각해 보면 언어는 그 자체로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지시 대상과의 불일치, 도달 불가능성, 나아가 상실이 결국 슬픔과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이상한 말이지만 ⟪미래의 손⟫은 상실이 가장 ‘상실답게’ 표현된 시집 같다. 문장 곳곳에 상실이 있다. 그것이 마음을 슬프게 한다.

나는 슬픈 시를 잘 쓰지 못한다. 삶에 슬픔이 별로 없어서 그럴지도. 어떻게 보면 슬퍼지고 싶어서 시를 읽는 것 같다. ⟪미래의 손⟫을 읽을 때 가장 슬펐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어떤 삶은 중단되고 어떤 삶은 지속된다. 간혹 나는 내 삶이 지속되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삶의 대부분을 형편없게 보내는데 ‘왜 나지?’ 싶을 때. 무엇을 짊어진 것도 아닌데.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났다. 언젠가는 할 수 있는 말이 영영 없어질 것 같다.

연정모

김승일의 《나 우는 연기 잘하지》

십 대 때 내 모습을 싫어한다. 잊고 싶다. 사실 내가 잊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잊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몇몇 친구들은 너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았어 말해 주지만(아주 고맙다), 사실 내가 어떤 순간에 얼마만큼 형편없었는지 낱낱이 기억나기 때문에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불량한 학생이었다거나 비행 혹은 기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친구들에게 몹쓸짓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널뛰는 감정을 다 티내고 다녔을 뿐이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어리둥절한 채로. 뭔가 대단히 중요한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교실 한복판에서 운다거나, 좋아하는 친구들은 영혼을 다해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은 친구들은 끔찍하게 미워하게 된다거나.

뭐 그런, 알 만한 일들. 

김승일의 《나 우는 연기 잘하지》는 청소년 시집이다. 청소년 시집이, 청소년 시가 무엇인지는 사실 잘 모른다. 다만 처음으로 읽은 청소년 시집인 이 책이 무진장 좋다는 것은 쩌렁쩌렁 말할 수 있다.  

김승일 시인의 팬 된 입장으로 구매했지만 아주 큰 기대를 하진 않았는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쓴 시라면 나와는 좀 멀리 떨어져 있을 거라 추측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시집을 친구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고, 피식피식 웃으면서도 울고 싶은 마음이 됐다. ‘울고 싶은 마음’은 ‘우는 마음’과는 전혀 다른데, 깨끗한 슬픔 놓치고 싶지 않은 슬픔 내게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슬픔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 ‘우는 마음’은 대부분 지긋지긋하고 끈적끈적한 진짜 슬픔 때문에 발생한다)  

‘울고 싶은 마음’이 가장 강렬하게 들었던 작품 두 편의 일부를 첨부한다.

(정말 좋지 않나요? 웃기고 슬픈 시가 최고다)

나는 평소 내가 어떤 시를 어떤 점에서 좋게 읽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편인데, 이 경우에는 정확히 말할 수 있다. 그냥 제가 딱 저랬거든요... 그리고 그때의 내가 최대한 정확히 마음을 꺼내놓는다면, 딱 저렇게 말할 것 같거든요. "그냥 뭔가가 다 마음에 안 들고/ 나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차에서 내리지 않고 울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름' 나의 청소년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속성을 들여다보고 언어화할 수 있었다면 좀 달랐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에겐 불가능한 과제였을 것. 그때의 엉망이 있었기에 내 이상함의 한계와 멀쩡함의 구간을 알게 되었을 것. 

열일곱의 나는 언제나 간결하고 담담하게 말하고 싶었다. 이 시집의 화자들처럼. 그것을 대신 해 주어서 고마웠다. 

🚶생활기

차재신: 헬스와 시의 공통점 - 스스로에 대한 불만 때문에 지속하게 된다. 마음에 들게 되는 순간 더 하지 않을 것이다.

연정모: 복귀 일주일 차입니다. 생각보다 싫지 않습니다. 이 역시 날씨 덕일까요?

🌿✨

9월은 너무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