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기52] 샌드위치 먹으며 쓰고 있어요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시인이기]의 연정모입니다. 

우선 저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밝히며 시작합니다. 하나, 연정모는 단골 카페 만들기에 대한 특별한 애호가 있다. 둘, 연정모는 샌드위치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즐겨 먹는다.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건 지금 제가 단골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원고를 마무리했기 때문이고요, 제가 무척 아끼는 이 가게가 다음 주로 영업을 종료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점심을 대충 해결하려 했는데, 인스타그램에 이별 글이 올라온 것을 보자마자 자전거를 탔어요. 

그리고 멋진 그릴드머쉬룸샌드위치와 커피 덕인지 며칠째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던 원고를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점심시간이 30분이나 남아 있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먹고 마실 것과, 글 쓸 공간을 제공해주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느끼게 돼요. 제가 비용을 지불하여 얻은 것이라 해도 그렇습니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때때로 그 가게의 주인장들이 친구나 동료보다도 친밀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은 제 외로움이 이상한 형태를 가졌기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이 가게의 제목으로 된 시를 써보려 한 적도 있는데요, 당시엔 제목만 써두고 빈 화면 앞에서 한참 딴짓 했습니다. 사라진 후에야 쓸 수 있다는 것을, 무의식 중 알고 있던 걸까요?

그동안 너무나 감사했답니다. 또 만나요.

차재신

임승유 ⟪그 밖의 어떤 것⟫

‘오래 기억하게 되는 시’의 조건은 무엇일까. 내 기준에 ‘이미지가 선연한 시’ 혹은 ‘구조든 형식이든 다 필요 없고 문장 자체가 기깔나는 시’도 있지만, ‘사유가 독특한 시’ 역시 빠질 수 없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기] 초창기에 언급하기도 했던 ⟪그 밖의 어떤 것⟫.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시집 중 하나다.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장점 하나, 시들이 짧아서 읽기 편하다)

사유가 독특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마치 내가 예상하지 못한 세계를 마주칠 때와 같다. 갑자기 맞이한 국면이 나의 인식과 감각에 충격을 주는 것. 말하자면 ‘익숙했던 장면이 새롭게 구겨지는 것’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런 작품들을 볼 때 새삼 시인의 시선과 관찰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시의 매력에 다시 한번 매료된다. 무엇보다 독자로서도 눈이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라는 장르 특성상, 짧은 텍스트만으로 독자에게 새로움을 전달함과 동시에 설득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용한 부분들에서처럼, ⟪그 밖의 어떤 것⟫의 문장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인위적이거나 억지로 비틀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부분을 굉장히 높이 산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문장으로 시작해, 나만 바라보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 내는 것.

시만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어쩌면 그런 건 이제 없을 수도 있다. 특히 요즘 세상에서는. 진지하게 생각하면 재미없는 답변만 나온다. 나는 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쓰는 순간만 진지하다. 더 이상 시만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시가 주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연정모

환기미술관 다녀와서 씀

추위가 지나간 주말에는 환기미술관에 갔다. 십대 때부터의 친구와 함께 갔는데, 생각해 보니 얘랑 밥 먹고 술 마시는 것 외의 약속은 처음이었다. 친구가 알려주기로는 우리 둘이서만 만난 것도 처음이라 한다. 누구에게도 중요치 않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적는 이유는, 아마 글을 끝까지 읽으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 

이틀 전 내린 대설로 부암동 곳곳이 희끗했다. 토요일인데 이 동네 왜 이렇게 한적하지, 했는데 눈 때문인 것 같았다. 원래도 교통이 불편한 데다 길이 아직은 미끄러울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하루가 다 지난 후 또 다른 친구의 메시지(‘헉 부암동 갔어? 눈 다 녹았어?’)를 보고 깨달았는데, 하루종일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즐거워한 것이 그렇게 우습거나 바보같이 느껴지진 않았다. 

우리가 본 전시는 〈심상의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김환기의 뉴욕 시절, 그러니까 후기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획전이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커다란 점묘화들을 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압도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귀한 전시였다. (정말 좋았음. 큰 그림은 정말 좋아)

그림 외에도 전시에서 인상적인 점이 있었는데, 각각의 작품 아래 작업 노트 일부를 옮겨두었다는 것이었다. 우선 작업한 캔버스의 크기와, 사용한 물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으며(예: 19”×58” #222Gray로 시작) 작업하는 동안 있었던 일이나 본 것, 스튜디오를 찾아온 사람 등을 짤막하게 기록해두었다. 이런 식이다.

서세옥 군 와서 저녁하고 심야까지 여행담 듣고, 미술론 듣다.

구름끼다. 미 중 미는 청춘.

밤까지 #331하다. 

공원에는 능금 꽃이 한창이다.

능금나무 정원수도 괜찮은 것 같다.

제작 부진.

또 마음이 떴다 가라앉았다. 눈길 강가에 나가 강을 바라보다. 

돌아오는 길 허공에 반달을 보다. 섣달 여드레쯤 되는가?

밤에는 그림이 안 된다. 

아침부터 백설이 분분…

종일 그림 그리다. 점화가 성공할 것 같다.

미술은 하나의 질서다.

그림에 압도됨과 동시에, 작업 노트를 읽으며 인간성을 느끼게 되는 관람 경험. 기획자의 애정이 느껴졌다. 관람객이 하나의 그림 앞에 서서 그 작품을 천천히 본 후에 노트까지 읽었을 때에, 어떤 감정을 느낄지 미세하게 고려했을 것이 분명하군. 그런 생각이 드는 전시였다. 그걸 확신하게 된 이유는 내가 전시의 어느 지점에서 친구에게 무슨 말인가를 속닥하면, 친구가 곧장 “어 나 딱 그 생각 중이었어” 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 미술관 전체가 커다란 덕질 장소 같아서 좋았다. 이 사람을 좋아하게 해주지! 하고 결심한 느낌이었다면 얼추 맞다)

위에 인용한 글을 보면 느끼겠지만, 작업하기 고되다는 글이 많다. 이렇게 대단한 작업물들을 남긴 사람도 매 작업 힘겨워했구나, 살을 깎는 듯 했구나, 생각하며 전시장 안을 천천히 산책했다. 우리는 완성된 작품의 모습을 알지만, 점을 찍기 시작한 그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물감을 세심히 고민하며(#222Gray이랄지) 이 그림을 끝낼 수 있을지 불안했을 것이다. 비범인도 그렇게 한다. 탁월한 자도 그렇게 한다. 그렇다면 나는 아무 불평불만도 없이 나의 고됨을 받아들일 수 있다.

*

매달 14일의 메일에는 시집을 추천하곤 하는데, 김환기와 그림 얘기만 잔뜩했다. 이렇게 마무리하기는 머쓱하니 환기미술관에서 사온 책을 한 권 소개하려 한다. 

환기재단에서는 꽤 많은 책을 펴냈다. (아마 일반 서점에는 유통이 안 되는 것 같다) 그중 내가 구매한 것은 『그림에 부치는 시』라는 작은 책으로, 김환기의 짧은 글과 그림이 담겨 있다. 물론 시집은 아니고, 일기와 짧은 산문 중 리듬감과 이미지가 느껴지는 몇 편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알고 싶은데 따로 적혀 있지는 않다. 아는 분 연락 바람!)

이 전시에서 느낀 기묘한 감동, 나를 파괴하지도 뒤흔들지도 울게하지도 않으나 고요히 맑아지게 하는 감동을 오래 느끼기 위해 사왔다. 김환기의 글 중 이런 것이 있더라.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다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울리는 미술을 하고 싶으셨다 하니, 바로 위에 적은 저 감상이 좀 죄송스럽게 느껴지지만… 선생님 저는 그림 앞에 서서,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이런 그림과 비해 시는 얼마나 하잘것없는가 생각했답니다. 

그렇지만 시를 계속 써볼게요 지금의 점이 어떤 그림으로 완성될지는 

지금의 나에게 달려 있으나 지금의 나로선 결정할 수 없는 몫이므로.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메모장에 옮겨 적다

🚶생활기

차재신: 해야 할 게임과 읽어야 할 책들이 늘어나는 건 설레는 일입니다. 덤으로 만나야 할 사람도요. 아침에 참았다가 점심에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저는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는 사람입니다.

연정모: 지난 주는 정말 한가했는데요, 저는 한가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죽을 맛이더라고요. 친구들을 열심히 불러대도 예전처럼 번개에 응하는 이들이 없고요. 바쁘다고 징징대는 것이 그저 하나의 취미란 걸 깨달았습니다. (이번 주에 귀신같이 다시 바빠져서 아 지난 주가 즐거웠던 것이로구나 거의 울 지경되기는 했습니다)

🙇‍♀️🌿

나의 샌드위치 장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