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기26] 얼기설기한 삶에 이름 붙이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시인이기]의 연정모입니다. 

연일 어두운 소식만 들려 옵니다. 뉴스를 틀어 두고 이 글을 쓰는 중인데요. 화면에 불길이 가득합니다. 시시각각으로 다른 제보 영상이 스쳐 지나가요. 하나같이 처참합니다. 비 예보를 보고 내내 오늘만을 기다렸지만 아침에 창을 여니 실망스럽게도 땅이 말라 있더군요.

이번 호에 저는 국립과천과학관에 다녀온 이야기를 썼는데, 마침 어제 이정모 관장님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과천과학관 관장을 역임하셨더군요) 기후위기와 멸종과 테라포밍을 넘나드는, 정말 멋지고 매력적인 강의였는데요. 그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멸종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구의 역사에서 대멸종기는 몇 차례 반복되어 왔다, 우리는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기를 지나고 있다. (으악!) 그러나 그것을 무력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전까지 더 제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이전에 살았던 존재들을 돌아보면서, 그들의 죽음 아닌 삶을 보면서.

오늘 저녁,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는데 세상이 참 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시에 모든 것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세상의 종말이 있다 해도, 염원처럼 깨끗하고 정확한 방식은 아닐 겁니다. 그러므로… 포기 않고 잘 사는 수밖에 없겠죠.

좋은 소식들을 바라 봅니다.

차재신

나에게 시 과외 수업을 받는 학생이 있다. 학생이라고 하기엔 친한 예술-동료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나에게 시를 배운다. 이번에 내준 과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시 쓰기. 시의 혈을 뚫기 위한 시도 중 하나다. 그런데 그녀에게 미안한 사실이 있다. 사실 나도 시에서 ‘사랑’을 쓰는 것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싫다기보다 다루기가 어렵다. 시에 사랑이 들어간 순간 그저 그런 서정시가 되는 것 같아서. 나는 그런 시를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번 시에는 사랑이 들어간다. 남한테 시키기만 하고 내가 안 하는 것은 치사한 짓이니까.

내 시를 오랫동안 봐준 명 박사님은 내게 “너는 시에서 멋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동안 나도 몰랐던 내 시의 추구미가 뭔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멋진 시를 쓰고 싶었던 것이었다. 정말 그렇다.

이후 시를 쓰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여전히 대부분 힘들긴 하다). 나는 내 상태와 정서에 충실하게 몰입한 시도, 독자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시도 쓰지 못한다. 다만 추구하는 것을 쓸 뿐이다. 시의 ‘멋’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멋있는 시’는 분명히 있으니까.

연정모

지난 달에는 과천과학관에 다녀온 일이 있다. 친구 다솜으로부터 그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티라노 사우르스의 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발견한 가장 거대한 육상 육식동물

이라니 너무 멋지다. 공룡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큰 호기심을 가져 본 적 없으면서도, 왠지 곧바로 매혹되었다. ‘과학관에 공룡을 보러 가기’. 주말을 할애하여 그런 약속도 일찌감치 잡아 두었고, 공룡을 보러 가게 될 것을 기대하며 일기도 썼다. 대충 이런 말이 쓰여 있다. 

토요일의 과천은 멀었고(토요일이라 그런 건 아니겠지만) 추웠다(이것 역시 토요일이라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나는 시작부터 아주 지쳐 있었다. 사실은 시작 전부터 지쳐 있었다고 해야 맞는 것이, 동행한 이와 나 사이에 편치 않은 공기가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밝혀 보자면 그는 나의 연인이고 연인 관계란 원래 갑작스레 불편한 구석이 생기기 마련) 대공원역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상승할 때, 흐린 날 특유의 불쾌한 눈부심이 나를 압도했다. 구름이 하늘을 두텁게 가렸는데도 사방에 빛이 있었고, 서늘하게 스며드는 추위가 있었다.

그럼에도 공룡을 보러 온 것이었다. 공룡의 이름은 스코티, 1991년 캐나다 내륙에서 발견된 이 골격은 2019년에 복원이 완료되었다. 인류가 발견한 티라노 사우루스 중 가장 큰 개체라고 한다. 정말 멋지잖아… 고백한다. 나는 〈박물관은 살아 있다〉나 《클로디아의 비밀》 같은 신비로운 공간을 기대했던 것 같다.

과학관은 전형적인 과학관이었다. 층고가 높고, 소리가 울린다. 아이들이 로비를 뛰어다니고 그들을 데려온 어른들은 표면이 벗겨진 인조가죽 소파에 앉아 저들끼리 생활 얘기를 한다. 눈만은 애들을 쫓음. 박물관이나 미술관과는 다른 부산스러움이 있다, 부드럽지 못한 구석이 있다. 

고대 동물의 뼈는 전부 2층 자연사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우주 탄생 과정을 소개하는 컴컴 퀴퀴 복도를 지나(왜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과학관에서는 같은 냄새가 난다. 아주 차갑고 난데없는 냄새다) 화석이 진열된 공간에 진입했다. 돌덩이와 뼈로 가득했다. 이 종(種)이 세계에 존재했음, 표본들은 오로지 그것만을 증명하고 있었다. 

스코티는 자연사관의 중앙에 서 있었다. 

그냥 공룡이었다. 책과 기사와 영화에서 보아 온 공룡.

아름답거나 비장하지 않았다. 심지어 구슬프지도 않았다. 애초에 과학관에 아름답고 비장하고 구슬픈 것을 찾으러 간 것이 잘못이었나? 나는 그저 죽은 것들 사이에 있단 사실이 으스스할 뿐이었고, 이 차갑고 난데없는 냄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반면 나의 동행은 이 관람이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돌에 새겨진 고생대의 생물을 스윽 지나친 나와 달리 그는 확대경을 통해 그들의 디테일을 관찰했다. 내가 흥미 잃은 눈으로 포유류와 인류의 진화 섹션까지 한 바퀴 휙 둘러보고 온 후에도 그는 아직 백악기에 머물러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 다시 그의 곁으로 갔을 때 우리 머리 위에 있던 것은 고대 거북의 뼈. 

아 너무 이상해. 

거북이 골격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보게 되다니. 그것도 진짜 나이 많은 거북 아닌가. 거북이가 내 머리 위를 유유히 헤엄쳐 지나가는 것, 상상한 적 있지만 적어도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고개를 들면 배의 골격 사이로 등껍질까지 고스란히 보였다. 

이것은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거북은 신령한 존재 아닌가. 이렇게 손쉬운 방식으로 그를 관람해도 되나. 아무리 조각조각난 생이라도 그건 그에게 속한 것인데, 맘대로 상상하고 조립하고 구경거리로 만들어도 되나.

그날 과학관에 꽤 길게 머물렀지만, 거북 뼈 아래서 느낀 기이함에 압도된 탓인지 다른 기억은 크게 남아 있지 않다. 동행과 나는 적당히 관람을 마친 후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제껏 느낀 적 없는 어색함 속에서 하루를 마쳤다. 그러나 그는 아직 나의 연인이다. 내가 아직 그의 연인인 것처럼. 

그로부터 몇 주 후 다솜이 한 편의 시를 써서 나에게 보여 준다. (스코티의 존재를 내게 알려 준 그 친구다) 제목은 자연사박물관으로, 진짜 멋진 시였다. 섬세하고 정직하고 아름다운 시를 썼다. 같은 돌과 뼈를 보고 와서도 내가 전혀 만들 수 없는 골격을 세웠다.

아무튼 그녀가 나에게 알려 준 사실이 있다. 그곳의 뼈는 전부 복제품이야. 진짜는 먼 나라의 수장고에 있대. 사람들이 보는 것은 전부 실물을 본따서 만든 거야. 어쩌면 당연하다. 수천만 년 된 조각조각을 이렇게 공개된 곳에 두었을 리 없는 거였다. 그래? 그러면 마음이 좀 편해지는군… 이라고 말은 했지만 왠지 나는 내가 본 것이

진짜 고대의 거북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고 온 거북의 속명은 ‘프로토스테가’로, 최초의 지붕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p.s.

실은, 몇 개의 파편들 겨우 쥐고서 얼기설기 삶을 편집하는 일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 엉성함과 비루함과 서글픔에 대해서.

p.s.2

재신이 이 글과 파도가 무슨 관계냐고 묻는다. 그야… 거북은 파도 속에 살기 때문이다.

🚶생활기

차재신: 삶이 개 같아서 실제로 개가 되는 시를 썼는데 시가 너무 개 같아서 새로 쓰게 됐습니다. 언젠가 내보이는 날이 있?길 

연정모: 어제는 야근하다가, 조금이라도 이완하고 싶어서 잠시 요가원에 다녀왔습니다. 당연히 요가한 시간만큼 퇴근이 늦어졌는데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만 있어도 많은 것이 버텨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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