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캠퍼스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공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학관’이 내게 떠오른다. 학관이 적응하기 쉬운 공간이 아니라는 데에는 다들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알기로는) 5층까지 있는 구관 건물과 8층까지 있는 신관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구관의 1층과 신관의 2층이 특이한 형태의 경사로로 이어져 있어 새내기들에게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건물이다.

이 복잡한 건물을 처음 만난 건 23년 12월 수시 논술을 보러 온 날이었다. 이젠 기억이 많이 흐려지긴 했지만 다른 학교들에 비해 입실 시간이 빠른 편이었고, 내 일정상 논술 시험 마지막 날이었다 보니, 김밥 같은 롱패딩 속에 둘둘 파묻혀서 춥고, 졸리고, 피곤하다는 생각만 하며 학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입실 시간이 되어 조교분들의 안내에 따라 경사로를 몇 번 올라가니 시험장에 도착해버린 게 전부이며, 사실 이 건물에 대한 당시 기억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추운 곳에 있다가 히터가 빵빵한 강의실에 들어오니 노곤하고, 잠이 몰려왔을 뿐이다. 나의 또 다른 자아가 계속 나를 졸음에서 깨우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정말이지 이상하게 너무나 졸렸고!!! 시험을 보다 졸까 무서워 아예 엎드려 쪽잠을 자며 대기했다. 그 뒤에 글을 어떻게 써서 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정신없이 글을 쓰고 나니 감독관이 시험지를 걷어갔고, 카페에서 엄마가 사준 케이크를 우물거리며 여기는 붙기 좀 어려울 것 같다고 은근슬쩍 밑밥을 깔았더랬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가 없다. 나는 다음 해 3월 4일에 ‘한국현대문학의이해’라는 1학년 전공 수업을 들으러 다시 학관에 오게 됐다. 인문대 수업은 주로 학관에서 열리기 때문에 학기를 거듭할수록 학관에 올 일은 많아졌지만, 이상하게 나는 계속 이 건물이 어려웠다. 신관 엘리베이터에서 2층을 눌러야 하는지, 1층을 눌러야 하는지 매번 검지를 어중간하게 허공에 띄운 채 망설이게 됐고, 지난 학기까지도 강의실 위치를 착각하고 지각 위기에 처해 계단을 두 칸씩 오르거나 경사로를 마구 뛰어다녔다. 학관에서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따라서 ‘정의숙 홀’이나 ‘기린 라운지’처럼 특정한 이름을 지닌 구역이 아닌 이상, 층수 외에도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는 편이 좋다. 부끄럽지만 2학년 2학기를 마친 지금에도 누가 나한테 학관에서 길을 찾는 법에 대해 물으면, 확신에 차서 답해줄 자신이 없다.

원래도 나는 길 잃은 표정을 자주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방향 감각이 좀 어설펐다. 수학을 배울 때도 도형 단원을 가장 어려워했고, 내 오른쪽에 있던 동쪽이 몸을 반 바퀴 돌리면 왼쪽으로 옮겨간다는 게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면 방금 내린 이 정류장이 아니라, 그 반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는 사실 또한 고역이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자꾸만 반대로 탔다. 잘못 탄 버스에서 한 정거장만에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해 봤다. 한 번은 내가 매일 통학을 하는 지하철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는 곳을 물어본 외국인이 있었다. 수십 번은 왔다 갔다 해본 곳인데도 막상 어떻게 가야 하는지 설명해 주려고 하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물론 언어의 장벽도 한몫했겠지...) 괜히 미안한 마음에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결국 환승 위치는 그분이 스스로 찾아내셨지만 감탄하는 내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하셨다.


한 해, 한 해 자랄수록 쉽게 길을 잃고 잘 헤매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왜 자꾸 친절하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고, 선명하게 나를 증명하거나, 단정하게 나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1층인지 2층인지 분명하게 알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자꾸만 커지는 그 마음이 나를 더 깊이 헤매게 만드는 것 같다. 학관 강의실에서 무언가를 배우면 배울수록 내 안에 지식이 쌓인다기보다, 그간 내 안이 얼마나 비어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것만 같다. 아는 게 늘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겁이 날 때면 발이 바닥에서 붕 뜨는 것만 같다. 나는 강의실에 앉은 상태에서도 머릿속으로 둥둥, 발을 허공에 띄운 채 이곳저곳 길을 잃고, 버스를 반대로 타고, 헤매고 다닐 수가 있다.

나만큼이나 자주 헤매고 다니는 화자들이 등장하는 시집을 안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지 않”(38)은 채로, “빗방울과 빗방울 사이를” “서성거리”며, “가뭄”에 머무르는 사람. “가는 아이들의 속도에 가끔 겁나기도 했지만”(63) “담담하게 담배만 피우”는 사람. “한 일이라곤 증발하는 것뿐”(64)이라고 느끼는 “눈송이”와, 그렇게 “시간이 눈처럼 자꾸 내리”(21)지만 “아무것도 하얗게 덮지 않고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이 시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
진은영 시인의 첫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을 때면 왠지 모르게 무한히 헤매고 다닐 용기가 생긴다. 길을 잘 잃는 나는 늘 내가 서있거나 앉아있는 곳이 과연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맞는지 의심스러워한다. 하지만 시집을 읽다 보면 애매한 “빗방울과 빗방울 사이” 그 자체가 지금의 ‘내 자리’인 것 같고, 꼭 어딘가에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해도 괜찮을 것만 같고, 다들 그렇게 사는 것만 같아져 곤두세웠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든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고, 그 무엇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가끔은 뜨거운 히터 바람에 못 이겨 스르르 잠에 들어버리다가, 내가 가야 하는 방향과 층수를 헷갈려 하는 채로 끊임없이 뛰어다니는 것. 그 두루뭉술하게 붕 떠있는 모든 상태가 나의 위치이자, 좌표일지도 모른다고.
3학년이 되어도, 4학년이 되어도, 나는 계속 학관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학관은 헤맴 속에서도 내가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리하게 된 곳이 그저 “사이”일지라도, 매번 조금 이르거나 늦기 때문에 딱 알맞지 못할지라도, 가야 하는 곳이나, 가고자 하는 곳이나, 가보고 싶은 곳은 아주 작고 희미하게라도 존재해왔다. 그러니 내가 자꾸만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이만을 헤매고 다니는 것은, 자꾸만 어딘가로 ‘가고자’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시은입니다. 어느새 '캠누문'의 마지막 메일을 쓰고 있네요.
이 프로젝트는 다소 충동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가론 수업을 듣던 중 딴짓을 하던 제가 (교수님 죄송합니다) 함께 수업을 듣는 동기들에게 공지 링크를 공유하고, '우리 글 좀 하나 써보자.'하는 조촐한 목표로 아이데이션을 해나갔습니다. 메일링 플랫폼을 서치하는 것부터 우여곡절이 많았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이메일 계정을 구글이 잠가버리는 바람에 긴급회의를 진행했던 사건도 있었네요.
팀원들 모두 공감할 테지만, 처음 저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값진 것들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국문과는 글을 쓰는 과제가 많은 편이긴 해도 동기들의 글 여러 개를 읽어보고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기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열심히 눌러 담은 마음과 생각을 매주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참 즐거웠습니다. 특히나 구독자분들께서 매주 구글폼으로 보내주시는 답신들을 읽을 때마다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보내주신 이야기와 마음들은 저희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아요.
마지막 메일까지 함께해 주신 구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또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P.S. 마지막 메일까지도 도서 증정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12월 31일까지 보내주시는 답신들 중 추첨을 통해 진은영 시인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보내드려요. 여러분의 것이라면 어떤 이야기든 좋아요. 답장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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