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는 새 학기가 정말 싫었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학급 운영 방식에 적응하는 게 피곤했던 것은 물론, 낯을 많이 가리는 탓에 새 친구 사귀는 걸 어려워했다. 나는 매번 학기 말이나 학년 말, 심지어는 다음 학년으로 넘어가는 방학 즈음에야 몇몇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고, 이 낡은 패턴은 비단 초등학교 시절뿐만이 아니라 이후 나의 모든 인간관계 앞에서 어렴풋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만남이 늦은 편이니, 헤어짐이 빨리 찾아오는 건 당연한 순리일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순간들이 있다.
헤어지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줄 것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이 좋았다. 공간 리모델링을 할지 언정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 반전동화 시리즈는 들어가자마자 왼쪽 서가, 가장 아래 칸에 항상 있었고, 셜록 홈즈 시리즈와 어린이 과학 형사대 CSI는 오른쪽 서가 안쪽에서 떠날 리가 없었다. 작년 혹은 재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방과 후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는 것 또한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대학에 와서도 습관처럼 ‘내 공간’을 찾아 헤맸다. 이 낯설고 커다란 캠퍼스 안에서 내가 아는 곳, 익숙한 곳, 쉽게 변하지 않는 곳이 필요했다. 도서관이 그러한 공간이라고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건 사후적인 것이다. 그냥 나는 본능적으로 안정감을 느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도서관과 똑같이 가지런하게 규칙적으로 십진분류법에 따라 배치된 책들, 익숙한 종이 냄새. 아, 여기였구나.
1학년 봄, 시험공부를 위해 처음 도서관에서 밤을 새웠던 날 밤, 본래의 목적은 잊은 채 1층부터 5층까지 혼자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자고로 ‘내 공간’이란, 지도나 층별 안내도를 보지 않고도 길 잃을 걱정 없이,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 거니까. 지난겨울에는 3층 문학 서가를 한두 시간 동안 누비고 다니기도 했다. 어떤 책을 빌릴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채 그냥 ‘꽂히는’ 책을 찾아다녔다. 계획하지 않았을 때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목적 없이, 더 천천히 걷게 되니까. 이날은 도서 배치의 세부적인 규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문학 서가의 앞쪽에는 주로 시집이 있구나, 희곡집은 생각보다 진짜 몇 개 없네, 소설은 뒤쪽이구나, 하면서. 느낌이 가는 대로 5권의 책을 빌렸다.

도서관을 비롯하여 익숙한 ‘내 공간’을 자꾸만 찾아다니고, 하나 둘 늘려가려고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안다. 나는 도망칠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나는 매일매일, 차곡차곡 도망칠 준비를 하고 다니는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일상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아주 낯설고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럴 사람은 되지 못한다. 낯선 공간은 무섭고, 내가 발붙이고 있던 공간은 지겹다. 적당히 익숙하지만 지겹지 않고, 왜 그곳에 가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학교 도서관, 캄캄하고 고요한 극장, 10개의 쿠폰 도장을 다 채워 음료를 얻어 마셔 본 카페 정도가 내게 그러하다.

또 도망친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 있다. 집 밖에 나가는 게 힘들 정도로 무기력했던 시기였는데, 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합정에 있는 중고서점에 갔다. 계획대로 필요한 책들을 다 찾은 뒤 계산대로 향하다가 파스텔 톤의 노란색, 주황색, 하늘색이 뒤섞인 어떤 책의 표지가 예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제목은 ‘새벽과 음악’, 저자는 이제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니 시인의 ‘기린이 그린’이라는 시를 참 좋아하기 때문에.
시인이 쓴 산문집은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는데, 꼭 시를 읽듯 자꾸만 문장들을 곱씹게 됐다. 씹고 음미할수록 새로운 의미가 생겼다. 내가 사랑하는 시가 그러하듯이. 따라서 이 책은 시간에 쫓겨 완독을 향해 질주하기보다는, 내가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처럼 우연의 힘을 기다리며, ‘읽고 싶은 느낌’에 무책임하게 의존하며 천천히 읽어보길 추천한다. 제목이 ‘새벽과 음악’인 만큼 작가는 수많은 음악들을 글에서 언급하고, 독자는 필연적으로 그 곡들을 찾아 들으며 읽게 된다.(나처럼 음악을 들으며 책 읽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글을 읽다가도 잠시 멈춰, 음악만을 듣게 되는 순간이 생기면 그 여백의 시간 또한 즐겨보면 좋을 것 같다. 특히 메탈리카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Nothing Else Matters’를 듣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모든 책을 이렇게 읽기를 권하지는 않지만 그냥 가끔은 뜨거운 드립 커피를 마시듯, 주먹만 한 스콘을 떼어먹듯, 야금야금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그렇게 책이, 도망칠 나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순간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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