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순간에도 머뭇거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의 직감을 믿고, 과거를 돌아볼 때면 그때의 나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다독였다. 천진난만한 열아홉은 마지막 원서를 어느 학과로 넣을지보다 오늘의 급식을 어떻게 두 번 받아먹을지가 더 고민인 법이다. 오동통하게 살이 올라 대학에 온 나는 한두 해가 지났다고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과제에 담을 소재보다는 마라탕에 넣을 채소를 고르는 게 중요했다. 딱 스무 살까지, 나는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처럼 머뭇거릴 대상도 없고, 머뭇거리지도 않는 사람으로 살았다.
나의 첫 머뭇거림은 한 사람을 만나고부터였다. 내가 처음으로 잘 보이고 싶었던 사람. 아주 작은 티끌이라도 하얀 솜털로 포장해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러한 꾸밈에는 머뭇거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신촌 기차역 앞에 있는 아담한 공원은 나의 머뭇거림에 유일한 목격자가 되어주었다. 녹은 얼음에 남은 음료가 뒤섞인 플라스틱 컵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것 같은 까만 고양이, 과자 두세 봉지를 펼쳐놓고 "나는 걔가 그래서 어렵더라"로 운을 떼는 사람들, 벽에 기대앉으면 딱 발만 튀어나오던 애매하게 큰 나무 의자. 나는 날 머뭇거리게 한 친구와 함께 그 공원의 여름과 겨울을 빼곡히 지켜보았다. 그 공원이 고망고 앞에서 머뭇거리던 여름의 나를, 등촌 앞에서 머뭇거리던 겨울의 나를 지켜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뿐이었을까, 그 공원은 새벽의 편의점 의자처럼 숨겨온 이야기를 술술 불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 나의 머뭇거림도 사르르 녹여버린 적이 있다.
타인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내 약점을 먼저 쥐여주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그 친구를 알게 된 후로 나를 얼마나 풀어내도 괜찮을지 끝없이 담금질하는 중이었다. 헤어지기 아쉬워 통금 시간까지 골목을 몇 번이나 돌았을 때도 '슈붕 좋아해, 팥붕 좋아해?' 같은 시답잖은 얘기만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 공원은 기어코 사람을 들어 올려 초라한 속마음까지 털어낸다. 하루는 끝없는 뺑뺑이 때문에 통금 시간을 넘겨버린 적이 있다. 다음 셔틀 시간까지만, 또 다음 셔틀 시간까지만 미루고 미루다 결국 새벽 두 시가 되었다. (이화여대는 거의 자정까지 정문에서 기숙사로 향하는 교내 셔틀을 운영한다)
까만 고양이가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고, 걸쭉하게 취한 사람들은 쪽지 모양으로 접힌 과자 봉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떠났다. 남은 사람은 우리 둘뿐이었던 그 새벽. 아, 이상하게 가족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K-장녀로서 떠받치는 부모님의 기대와 나의 볼품 없는 인정 욕구 같은 것들 말이다. 정말 오래 머뭇거렸고 말하다가도 솎아낸 단어들이 많았지만, 결국 내 약점을 토로해버렸다. '너만 알고 있어'로 시작하는 비밀들은 언젠가 방 안의 코끼리가 되기 마련이라고, 속으로는 이불을 백 번이나 걷어 찼지만 이미 술술 불어버린 후였다. 내가 이렇게 옹졸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친해질 수 있냐는 고백이었다. 다행히 공원의 재주에 홀린 게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과묵한 그 친구는 작게 다독이는 손길을 내밀었다.

태어나서 처음 펑펑 내리는 눈을 맞은 날에도 그 친구와 그 공원에 갔다. (고향이 경상도라 그렇게 많이 내리는 건 진짜 처음 봤다!) 사뿐히 내리는 눈을 보며 어쩌면 눈은 비의 머뭇거림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닿은 사람들을 질척하게 적시지 않으려고 눈으로 둔갑한 것이다. 녹은 눈도 결국 비처럼 흔적을 남길 테지만, 우습게도 사람들은 비를 맞으면 짜증을 내고 눈을 맞으면 활짝 웃는다.
나는 비를 닮았다. 고망고에 갈지, 등촌에 갈지, 내 이야기를 들려줄지 머뭇거렸지만 결국 망고 스무디를 마셨고, 고슬고슬한 볶음밥을 먹었고, 그 친구의 포용을 받았다. 머뭇거림은 하고 싶다는 의지와 예측이 불가해서 생기는 두려움의 합성어로, 어쨌든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에 머뭇거리는 사람은 내지를 수밖에 없다. 보통은 내가 내지른 직선과 그 사람의 직선이 평행할 확률보다 어느 먼 곳에서라도 만나 교점이 생길 확률이 더 높다. 그 교점을 중심으로 우리의 닮음비를 구하는 것이 바로 머뭇거림의 목적이다.

"너를 만지면 내가 만져지는 것 같아서 좋다" 김종연 시인의 『검은 양 세기』는 이 한 구절에 꽂혀 빌려온 책이다. 나는 가끔 너무 좋은 글을 보면 머리카락이 뒹구든 말든 바닥에 누워 가장 낮은 곳으로 흡수되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이 시가 그런 녹아내릴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위 구절을 따온 시 「빵집이 사라진 자리」에는 빵집 하나로 온 동네의 냄새가 변하기 때문에 빵집은 죽어서나 살아서나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너'가 등장한다. '나'는 그런 '너'와의 동질성을 사랑한다.
반면 「같다」에는 둘 사이에서 애써 구한 닮음비가 더 이상 무용해지는 걸 지켜보는 '나'가 등장한다. 사실 직선이니 닮음비니 온갖 수학적인 용어로 나름의 머뭇거림을 정의 내렸지만, 사람은 틀 안에 넣는다고 그대로 구워 나오는 빵 같은 게 아니라서 가끔은 덜 익은 반죽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흐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과거에 집착한다. "모든 잔향은 종이의 냄새를 닮아 가는 것 같다"고 말하며 '나'가 알던 '너'를 그리워한다. '나'는 네 가방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지만 '너'가 떨어뜨린 것들을 주워 들고 슬퍼할 뿐이다. 제목과 달리 '나'와 같지 않은 '너'가 등장하는 게 참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당신은 아직 머뭇거릴 수도 있고, 광활한 직선이 교점을 만나기 전일 수도 있고, 서로 마음의 길이를 측정하는 중일 수도 있다. 이 시집은 당신이 어느 단계에 머무르고 있든 당신과 똑같은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해결책을 제공하진 않는다. 이 시에 한눈에 빠져버린 나조차, 여지껏 아무리 작거나 커져도 절대 닮아질 수 없는 누군갈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닮음을 추구하는 당신과 똑 닮은 '나'를 읽는 것은 잠깐의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누군가와 닮음비를 구한다면
부디 당신이 소수(小數)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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