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은입니다. 무척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 두 달 만에 여러분에게 메일을 보내려니, 처음 메일을 쓰던 때처럼 괜히 긴장이 되네요. 오늘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10월에 시작한 이 메일링 프로젝트가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듯, 시험도 하나둘씩 끝나가고, 욕심껏 시작했던 여러 일들도 매듭을 지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끝’을 낼 일이 많은 연말에는 꼭 억지로 내몰린 사람처럼 마음이 갈팡질팡합니다. 그간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레고리력에 의해 반드시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한다는 게 억울할 때도 있고요. 사람 마음이란 것이, 다 끝날 때가 되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2025년에 나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너무 밋밋하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올해가 지나면 아무도 내 궤적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나, 내년이라고 해서 갑자기 선명하고 뚜렷한 사람이 될 수 있긴 한가, 두려운 마음인 거겠죠.
모순적으로 자꾸만 다음을 기약하고픈 마음도 한 편에 생깁니다. 내년엔 꼭 꾸준히 운동을 해야지, 요리를 시작해야지, 더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해야지……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아 막연히 들뜨다가도 금세 씁쓸해집니다. 매년 무언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게, 재수 시절 매일 쓰던 오답노트처럼 나의 한 해를 점수 매기고, 틀린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찾아 메꾸고자 한다는 게 말이죠.
성취한 것들과 실패한 것들로 한 해를 조각조각 낼 때마다 마음이 쓰라리곤 합니다. 물론 시간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심한 속도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지만, 그 흐름을 부단히 쫓아가며 한 해를 완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두 시간 동안 클래식을 들어도 잠에 들지 못하던 밤과, 벼랑에 서듯 일기장 앞에 앉았던 새벽과, 무엇이든 제발 놓아버리고 싶었던 아침들이 분명 있었는데 말이죠.
그러니 시간은 꼭 바다 같지 않나요. 그 모든 순간들이 잔상만 남은 채, 한곳에 마구 뒤섞여 있게 되니까요. 소중한 일 년을 조각내는 대신, 바다 같은 시간이, 우리가 지나온 궤적들을 전부 차곡차곡 기억하고 보존해 주는 것이라고 기대해 보고 싶습니다. 설령 잃어버린 것이 있었을지언정, 그 ‘잃어버림’만은 잃어버리지 않는 시간의 바다가 있고, 지나가면서도 기억할 준비가 된 내가 꿋꿋하게 살아있는 것이라고요.
연속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해의 끝에 설 때마다, 파도에 휩쓸리는 것과 같이 ‘내몰린’ 느낌을 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작년과 다를 바 없는 그 맹한 바다가, 실은 올해 지나온 모든 순간들을 머금은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라면, 그 다정한 파도의 흐름이 나를 다음 해로 이끌어가는 것이라면, 또 다음 해海의 나는 어떤 시간을 지나가게 될지, 몸에 힘을 뺀 채 흘러가 볼 용기가 생기는 듯 합니다. 지나가는 중인 2025년도, 다가오는 중인 2026년도, 누가 뭐래도 믿음직한 나의 해海니까요.
시간의 바다에서,
또 다른 시간의 바다들로,
시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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