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벚꽃 보러 가자!!” 우연히 던진 한 마디에 동기들과 교내 벚꽃 명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정문 앞 벚꽃나무엔 긴 줄이 늘어서 있어 포기하고 돌아오던 차에 교육관 벚꽃나무가 예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교육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때, 무작정 교육관을 찾아 발걸음을 돌렸다. ECC와 학관을 지나 가장 구석에 있는 교육관에 도착했을 때, 아주 웅장하고 화려한 벚꽃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보자마자 헉 소리가 절로 났던 그 아름다움은, 그 때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매년 보던 벚꽃 나무였음에도 유난히 분홍빛이었고, 유난히 반짝였다. 마치 기적처럼. “예쁘다”를 내내 외치며 동기들과 사진을 찍고 시험기간 속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1주일쯤 후에 벚꽃나무의 아름다움이 계속 아른거려서 쉬는 시간에 잠시 혼자 교육관으로 향했다. 고작 일주일만에 벚꽃은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다. 사진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넘치는 장소에서, 그저 수업을 들으러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하나의 길에 불과한 곳으로 변했다. 바닥에 눌러붙은 꽃잎과 더이상 흩날리지 않는 나무를 보며 아쉬움에 큰숨을 들이켰다. 그때 깨달았다, 기적은 피어있는 동안이 아니라 사라지고 난 후에야 드러나는 것이라는 걸.
떨어진 벚꽃잎을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꽃잎이 사라진 자리엔 푸른 잎이 조금씩 나고 있었다. 분명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꽃이 아니라나무를 자세히 보니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더이상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지만, 꿋꿋하게 새 잎을 돋우며, 늘 그렇듯 자신의 속도대로 자라고 있었다. 문득 잠깐 피고 지는 꽃이 아닌, 나무가 새 잎을 돋우고, 커가는 이 모든 과정이 기적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기적은 화려하게 피어있는 순간만이 아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기다림 속에 있다는 걸 말이다. 나는 문득 나무에게서 나를 보았다. 대학 합격에 얽매여, 숱한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 예전처럼 다시 빛나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했고, 계획을 완벽히 수행하지 못한 날엔 나의 노력을 탓하기도 했다. 꿋꿋하게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나무를 보며 빛나는 순간만을 애타게 찾았던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늘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희생하곤 한다. 그러나 꽃이 피지 않은 날들도 이미 기적의 일부이지 않을까. 꽃은 봄에 잠깐 피고 지지만, 나무는 나이테를 늘려가며 더 단단해지듯이. 우리는 반짝 빛날 한 순간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적 속에서 평범한 나날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나무는 이미 자라고 있으니.

벚꽃나무와 함께 최혜진 작가의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라는 책을 살포시 두고 간다. 이 책은 벚꽃나무처럼 우연히 내게 도착했다. 과외학생 어머니가 아이를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며, 선생님께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선물해주신 책이다. 그림책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책은 일등이 되는 법이 아닌 넘어지는 법을 배우던 어린아이의 때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21개의 챕터 중 ‘제 젊음은 이렇게 끝나는 걸까요: 일상의 의무가 나를 짓누를 때‘라는 20번째 제목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다. 서커스를 해야 했던 코끼리가 요정의 도움으로 자신의 본성에 맞는 일을 경험하는 이야기의 동화책 소개와 함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매일의 고군분투 안에서 문득 진짜 내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이 동화책에 마음을 기대보길 바랍니다. (중략)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해보세요. 꼭 어딘가로 훌쩍 떠나야만 가능한 일은 아니니까요. 매일 치열하게 가꿔온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의 생활 가운데서도 나의 본성을 보살피는 일은 가능하니까요.“
일상이 버거울 때마다 난 이 책을 찾곤 한다. 나도 모르게 성공에 대한 조급함을 가질 때, 이 책이 다시 나의 속도를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반드시 꽃이 필거라는 위로가 아닌, 오늘 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며 안아주어 나의 호흡을 고르게 만든다. 나는 이 담담한 위로 덕분에 평범한 일상도 가치 있다는 걸 되새기곤 한다. 잠시만이라도 자신을 돌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통해 ‘일상’이라는 기적을 만끽하게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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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1호팬
안녕하세요 혜진님 요즘 제가 하던 생각을 혜진 님도 하고계신 것 같아서 반가워요! 저도 제가 참고 인내한 시간 끝에 있는 대학 진학 그 이후가 딱히 그전보다 불행하지도 행복하다는 걸 깨달은 후 모든 현재에 충실히 존재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타인의 글을 읽을 때면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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