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수필

캠퍼스에 누운 문장들, 4.나무의 기적

2025.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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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 누운 문장들

문학이 머무는 공간을 소개합니다.

교육관 앞 벚꽃나무 / 사진을 클릭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튜브 링크로 이동합니다
교육관 앞 벚꽃나무 / 사진을 클릭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튜브 링크로 이동합니다

“우리 벚꽃 보러 가자!!” 우연히 던진 한 마디에 동기들과 교내 벚꽃 명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정문 앞 벚꽃나무엔 긴 줄이 늘어서 있어 포기하고 돌아오던 차에 교육관 벚꽃나무가 예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교육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때, 무작정 교육관을 찾아 발걸음을 돌렸다. ECC와 학관을 지나 가장 구석에 있는 교육관에 도착했을 때, 아주 웅장하고 화려한 벚꽃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보자마자 헉 소리가 절로 났던 그 아름다움은, 그 때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매년 보던 벚꽃 나무였음에도 유난히 분홍빛이었고, 유난히 반짝였다. 마치 기적처럼. “예쁘다”를 내내 외치며 동기들과 사진을 찍고 시험기간 속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1주일쯤 후에 벚꽃나무의 아름다움이 계속 아른거려서 쉬는 시간에 잠시 혼자 교육관으로 향했다. 고작 일주일만에 벚꽃은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다. 사진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넘치는 장소에서, 그저 수업을 들으러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하나의 길에 불과한 곳으로 변했다. 바닥에 눌러붙은 꽃잎과 더이상 흩날리지 않는 나무를 보며 아쉬움에 큰숨을 들이켰다. 그때 깨달았다, 기적은 피어있는 동안이 아니라 사라지고 난 후에야 드러나는 것이라는 걸.

 

 떨어진 벚꽃잎을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꽃잎이 사라진 자리엔 푸른 잎이 조금씩 나고 있었다. 분명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꽃이 아니라나무를 자세히 보니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더이상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지만, 꿋꿋하게 새 잎을 돋우며, 늘 그렇듯 자신의 속도대로 자라고 있었다. 문득 잠깐 피고 지는 꽃이 아닌, 나무가 새 잎을 돋우고, 커가는 이 모든 과정이 기적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기적은 화려하게 피어있는 순간만이 아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기다림 속에 있다는 걸 말이다. 나는 문득 나무에게서 나를 보았다. 대학 합격에 얽매여, 숱한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 예전처럼 다시 빛나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했고, 계획을 완벽히 수행하지 못한 날엔 나의 노력을 탓하기도 했다. 꿋꿋하게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나무를 보며 빛나는 순간만을 애타게 찾았던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늘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희생하곤 한다. 그러나 꽃이 피지 않은 날들도 이미 기적의 일부이지 않을까. 꽃은 봄에 잠깐 피고 지지만, 나무는 나이테를 늘려가며 더 단단해지듯이. 우리는 반짝 빛날 한 순간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적 속에서 평범한 나날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나무는 이미 자라고 있으니.

 

첨부 이미지

 벚꽃나무와 함께 최혜진 작가의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라는 책을 살포시 두고 간다. 이 책은 벚꽃나무처럼 우연히 내게 도착했다. 과외학생 어머니가 아이를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며, 선생님께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선물해주신 책이다. 그림책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책은 일등이 되는 법이 아닌 넘어지는 법을 배우던 어린아이의 때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21개의 챕터 중 ‘제 젊음은 이렇게 끝나는 걸까요: 일상의 의무가 나를 짓누를 때‘라는 20번째 제목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다. 서커스를 해야 했던 코끼리가 요정의 도움으로 자신의 본성에 맞는 일을 경험하는 이야기의 동화책 소개와 함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매일의 고군분투 안에서 문득 진짜 내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이 동화책에 마음을 기대보길 바랍니다. (중략)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해보세요. 꼭 어딘가로 훌쩍 떠나야만 가능한 일은 아니니까요. 매일 치열하게 가꿔온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의 생활 가운데서도 나의 본성을 보살피는 일은 가능하니까요.“

 

 일상이 버거울 때마다 난 이 책을 찾곤 한다. 나도 모르게 성공에 대한 조급함을 가질 때, 이 책이 다시 나의 속도를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반드시 꽃이 필거라는 위로가 아닌, 오늘 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며 안아주어 나의 호흡을 고르게 만든다. 나는 이 담담한 위로 덕분에 평범한 일상도 가치 있다는 걸 되새기곤 한다. 잠시만이라도 자신을 돌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통해 ‘일상’이라는 기적을 만끽하게 되길 바라며. 

 

 

 

안녕하세요, 채원입니다. 어느새 네 번째 메일을 발송하네요.

날이 참 쌀쌀해졌어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저는 가을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한 채 겨울 옷을 꺼냈답니다. 시험도 끝났겠다, 야외 벤치에 앉아 가을냄새 물씬 나는 소설을 읽는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려 했는데 참 안타까워요. 대신 포근한 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며 지난 여름에 미처 완독하지 못한 책을 읽어보려 해요.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무슨 일을 하시든 꼭 옷 따뜻하게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시길 바라요! 지난 한 주보다 조금은 여유있는 일주일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 기획 수필은 교육관 앞 벚꽃나무터를 소재로 적어보았어요. 누군가에겐 그저 ‘아름다운 벚꽃나무’가 있는 곳으로만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이 공간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여러분에게 저의 글이 어떻게 다가갔을지 궁금해지네요.

지난 기획수필과 마찬가지로 도서 증정 이벤트를 진행해요. 저번처럼 답장을 보낼 수 있는 구글 폼 링크를 첨부하며, 일주일 동안 답장을 보내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 이번 글에서 소개한 최혜진 작가의 에세이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를 선물로 드려요.
참, 지난 기획수필 도서 증정 이벤트 당첨자에겐 오늘(10/29) 문자가 갈 예정이니,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구독자분들은 문자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가 듣고싶어요! 답신 기다릴게요:)

채원 드림.

P.S. 지난 자유수필에 대한 답장 모두 읽어보았어요.
사랑하기에 참 좋은 날씨가 된 것 같다는 답장도,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는 답장도 기억에 남네요.
학창 시절 서툴렀던 사랑을 고백해주신 분이 있었어요. 서툴게 행동한 자신에게 마음을 써주었던 사람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문득 궁금해진다는 마음, 그 상대에겐 이 마음 자체가 위로이자 고마움으로 남을 것 같아요. 사랑이란 그 사람의 기억 속 일부가 되고 싶은 거니까요. 언젠가 이 마음을 꼭 전하시길 바랍니다.
꼭 인간만이 아닌, 세상의 여러 가지 것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보내주신 분도 생각납니다. 맞아요, 어쩌면 사람을 향한 사랑은 아주 일부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걸을 때, 학관 앞에서 늘 자고 있는 고양이를 볼 때, ECC에서 흘러나오는 벗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 사랑을 느끼곤 합니다.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그 삶은 더욱 가치있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요 우리.

따뜻한 답장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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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1호팬의 프로필 이미지

    김**1호팬

    0
    3 months 전

    안녕하세요 혜진님 요즘 제가 하던 생각을 혜진 님도 하고계신 것 같아서 반가워요! 저도 제가 참고 인내한 시간 끝에 있는 대학 진학 그 이후가 딱히 그전보다 불행하지도 행복하다는 걸 깨달은 후 모든 현재에 충실히 존재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타인의 글을 읽을 때면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서 기뻐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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