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부모님과 함께 처음으로 ECC에 올랐던 날이 생각난다. 날씨는 어찌나 맑던지, 그간 꿈꿔온 대학은 정문에서부터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ECC는 멀리서 보아도 독특하게 생긴 건물이었다. 엄마와 아빠도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나만큼이나 들뜬 표정을 짓고 계셨다. ECC 정상에 올라가선 아빠가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여전히 그 때 찍은 사진을 보면, 그 날 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느껴진다. (얼마 전까지도 ECC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아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었다ㅋㅋ) 부모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에, 나는 더 높은 정상에 오르는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엄마가 언젠가 스쳐가듯 하신 말씀이 있다. “나는 이렇게 큰 그릇이 아닌데, 왜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까.” 이 말은 새삼 아주 낯설게 다가왔다. 엄마는 나에게 언제나 큰 존재였다. 친구와 다투고 씩씩거리며 집에 오면, 엄마는 내 편을 들어주시면서도 친구에게 먼저 손 내미는 법을 알려주셨다. 알량한 꾀를 부리며 머리 쓸 때면, 손해보더라도 모든 일에 성실하고 우직하게 임하라고 알려주셨다. 내게 엄마는 언제나 가장 지혜로운 해결사였고,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그들과의 관계를 아끼는 큰 그릇을 지닌 어른이었다. 그런 엄마도 스스로 작다고 느낀다니, 엄마가 말하는 ‘그릇’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생각의 끝에 ECC가 놓여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홀로 멍하니 ECC를 바라보다, 문득 이 공간이 마치 커다란 그릇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ㄷ자로 펼쳐진 건물 사이의 넓은 공간은 텅 비어있으면서도, 동시에 오가는 사람을 맞이하는 듯했다. 그 안을 오가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옷차림과 다른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학잠을 입고 ECC계단에 앉아 피크닉을 즐기는 벗들, 저 멀리 뛰어다니는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교수님으로 추정되는 정장차림의 중년 여성.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ECC가 “사람을 담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을 계속하여 바라보다보니 나는 엄마가 말하는 ‘그릇’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ECC는 비어 있을 때보다 오히려 사람이 드나들 때 더 아름다웠다. 나는 어릴 적부터 ‘높이 올라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성공‘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뾰족한 산의 꼭대기였다. 그런데 ECC를 그릇처럼 바라보는 순간,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난 찢어질 듯 마음이 꽉 차도, 조금씩 비워내고 다시 담아내며 버티는 사람이 결국 더 단단해진다는 걸 엄마를 통해 깨달았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어떤 그릇이 되고 싶은지 자연스레 떠올려 보았다. 나는 절대 깨지지 않는 단단한 그릇이 되고싶은 건 아니다. 오히려 넘칠 때는 넘치고, 깨져도 다시 깨진 틈을 메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행복한 기억만이 아니라 아팠던 기억도 함께 녹여, 나와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도 부드럽게 품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ECC의 ㄷ자 형태처럼, 누구나 편안히 기대어 숨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얼마 전, 아빠가 다시 한번 ECC에 올라가자고 하셨다. 처음 올라갔던 그날의 설렘은 여전하지만, 이 건물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달라졌다. 2년 전 나는 그 정상에 서서 더 높은 곳으로 가고싶어했다. 하지만 이젠 세상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통해 스스로를 연단하고, 그렇게 만든 그릇으로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을 포용해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정상만 바라볼 땐 보지 못했던 오름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면서 김이나 작사가의 <보통의 언어들(나를 숨쉬게 하는)>이 유난히 생각났다. 고등학생 때 선물로 받아 읽게 된 책이었는데, ‘좋아한다’, ‘미안하다‘, ’겁이 많다‘ 등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보는 단어 두 개를 소개하자면, 먼저 ‘공감‘이다. 작가는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덜 구체적이고 넓은 테두리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건 공감의 오류라 말했다. 공감은 오히려 디테일에서 나오는 것이고, 비록 나의 경험치가 아닌 일임에도, 진심으로 내 마음속의 서랍을 열면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 있다는 용기를 건넨다.
또 다른 단어는 ’사과하다‘인데, 작가는 ‘사과‘를 ’기다림이 필요한 시간‘이라 정의한다. 전쟁은 끝나자마자 바로 평화인 게 아니라 오히려 그때부터가 아픔의 시작임을 예로 들며, 이렇게 말한다. “사과를 받은 사람 쪽에서 필요한 겸연쩍은 시간이란 게 있다. 마지못해 내민 손을 잡아주고, 다시 웃으며 이야기 나누기까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몹시도 무겁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나역시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장 친한 친구와 잠시 멀어졌던 기억이 있다. 내 잘못으로 인한 멀어짐이었지만, 그 당시 난 오히려 나와 거리를 두고 내 사과를 받지 않는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끼곤 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다행히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어준 덕분에 화해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을 읽을 때면 여전히 그 때 나의 미숙함으로 인해 아파했을 친구가 떠오른다.
공감과 사과는 소중한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마법의 감정같다. 나와 다른 모습의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우린 상대의 언어와 행동 등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다가가야 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해서 머뭇거리는 게 아니라, 경험하지 못했어도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며 다가간다면 상대방에겐 이또한 환대로 느껴지지 않을까. 또 우리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갈등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 때 어떻게 사과하느냐에 따라 그 관계의 깊이가 결정된다. 여러 사람을 담는 그릇이 되기 위해선 우리의 언어인 ‘감정‘을 잘 알아야 하기에,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건넨다.
여러 어려움 속 연단의 길을 걸으며 더 큰 그릇이 될 준비를 하는 당신에게
세상을 담고자 하는 부푼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당신에게
채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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