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편. 왜 맥주 효모는 달콤한 과일향을 만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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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50년 전까지 누구도 효모가 뭔지 몰랐다. 하지만 인류는 효모가 거기 있는 줄도 모른 채 효모에 의지해 살아왔다. 완전한 무지 아래 우리는 효모를 파트너로 삼았다. 효모가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발효 과정은 기적으로 보였다.
- 아담 로저스 'PROOF'
효모가 발견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달콤한 술을 '신의 선물'이라 여겼습니다. 정성스레 곡물과 과일을 빚어 술이 되기를 신에게 기도해야 했죠. 하지만 1680년, 레벤후크가 현미경을 통해 효모를 발견하고 19세기에 접어들어 테오도르 슈반과 루이 파스퇴르가 발효 과정에 미생물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미생물과 발효의 관계가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마치 인류가 정착하며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던 미생물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미생물은 식품 산업에서 널리 활용되며, 치즈, 와인, 초콜릿, 맥주 등 다양한 발효 식품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발효 과정에서 형성되는 복합적인 풍미는 식품의 맛과 향을 더욱 풍부하게 해줍니다. 그중에서도 효모는 대표적인 발효 미생물입니다. 효모는 맥주와 빵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며, 바이오 연료인 에탄올 생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죠.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효모는 조금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에탄올' 때문이죠. 효모가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에탄올은 많은 미생물에게 치명적입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미생물은 에탄올 내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효모가 만들어낸 에탄올은 일종의 '화학 무기' 처럼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효모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에탄올을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효모가 생성하는 달콤한 과일향(에스테르) 역시 같은 원리로 진화한 것은 아닐까요?
2014년 학술지 Cell Reports에는 효모가 다양한 향미 성분을 만드는 이유로 초파리를 유인하기 위함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초파리는 숙성된 과일 주위에 몰려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연구진은 효모가 발효 중에 생성하는 에틸아세테이트(배 향), 아이소아밀 아세테이트(바나나 향), 페닐에틸 아세테이트(꽃 향)가 초파리를 끌어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효모가 이런 과일 향을 만들기 위해서는 ATF1(Alcohol Acetyl Transferase)라는 효소가 필요합니다.
* 효소는 특정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단백질로, 효모가 에스테르를 생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연구진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정상적인 효모와 ATF1 유전자가 제거된 효모를 각각 배양했습니다. 실험 결과, 두 효모 모두 발효가 진행되어 알코올을 생성했지만, 정상 효모에서는 풍부한 과일 향이 나는 반면, ATF1이 제거된 효모에서는 과일 향이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초파리들은 과일 향이 풍부한 정상 효모 쪽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즉, 효모가 만드는 향은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곤충을 유인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효모가 초파리를 유인하여 '곤충에 의한 효모의 분산'(다른 환경으로 널리 퍼져 이동)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곤충이 효모를 섭취하거나 몸에 묻혀 다른 환경으로 이동하면, 효모는 새로운 장소에서 번식할 기회를 얻을 수 있죠.
* 효모가 생성한 과일 풍미(에스터)가 초파리의 더듬이를 더욱 자극하여, 효모에 대한 매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초파리가 주요 신호 분자로 두 가지 아세트산 에스터, 에틸 아세테이트와 아이소밀 아세테이트를 식별한다는 점도 확인되었습니다.
** 에틸 아세테이트(배 향)와 아이소밀 아세테이트(바나나 향)가 숙성된 과일에서 흔히 나타나는 전형적인 향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효모가 초파리를 유인하기 위해 이러한 과일 향 에스터를 생성하는 능력을 진화시켜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영양이 부족한 환경에서 효모가 저산소 상태일 때 ATF1 발현을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할 필요성이 커질수록 더 강한 과일 향을 만들어 곤충을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이죠.
또한, 곤충이 효모를 먹으면 일부 효모는 곤충의 내장에서 살아남아 포자를 형성하며 생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말벌과 같은 특정 곤충이 겨울 동안 효모의 저장고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곤충이 특정 향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현상이 효모에만 국한될까요?
실제로 다양한 효모가 자연환경에서 초파리의 체내에서 발견되었으며, 대부분이 에스테르(과일 향)를 생성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꽃에서 강한 향을 내는 효모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미생물과 곤충 사이의 상호작용이 생각보다 훨씬 일반적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곰팡이가 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마치 식물과 꽃가루 매개 곤충(예: 벌) 사이의 관계를 모방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Yeasty Letter 에서는 효모가 만들어내는 향이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곤충을 유인하고 스스로를 확산시키기 위한 진화적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자연 속에서 효모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이 특별한 전략을 보면, 미생물도 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다음 편부터는 효모의 에스테르 생성 원리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할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Written by. SB
참고 문헌.
1. Christiaens et al., 2014, Cell Reports 9, 425–432 October 23, 2014 (http://dx.doi.org/10.1016/j.celrep.2014.09.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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